종교 인류학
[기말에세이수정] 초월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종교인류학 1학기 순례기 “내 안의 신을 찾아서” 2025년 4월 15일 김유리
초월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주제문: 분리된 두 세계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가 열릴 때 벌어지는 일은 대칭성의 회복이다.
1학기에 배운 것
종교인류학 세미나 1학기에 배운 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본래부터 있던 것들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음악과 언어로 보는 인류의 진화』(스티븐 미슨, 김명주 옮김, 뿌리와이파리, 2008)를 읽으면서 말이 아직 없던 때 썼던 의사소통 방식(일명 “Hmmmmm”)이 여전히 남아 사용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인류는 후두에서 발성하는 허밍 음에 선율, 리듬, 높낮이를 담았고, 몸짓과 표정이 더해지면 이것으로 썩 훌륭하게 의사를 주고 받을 수 있었다. 이 방법은 소통하는 무리들을 하나로 녹여내는 능력이 말보다 월등했다. 여기서 노래와 악기가 진화하기도 했다. 음악과 춤은 말을 사용하면서부터 불가피하게 생겨난 분리감을 메우고 전일함을 회복하는 능력을 지금도 잃지 않고 있다.
다음으로 나카자와 신이치의 『신의 발명』(김옥희 옮김, 동아시아, 2005)을 읽어 보니 종교가 힘을 잃은 현대에도 현생 인류의 뇌 구조는 여전히 그 내부에 초월의 영역으로 통하는 통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성의 국경선이라고 할 만한 곳에 도달해 그 너머와 접촉할 때 인간의 뇌는 흥분 상태에서 이해되지 않는 형상들을 수없이, 그리고 다양하게 출현시킨다고 한다.
책의 종장에서 두 저자가 남긴 메시지는 스타일만 다를 뿐 동일한 것이었다. 스티븐 미슨은 그저 ‘노래합시다’라고 하며 책을 마무리하고, 나카자와 신이치는 ‘형이상학적 혁명’을 예비하자고 한다. 이들의 공통된 제안은 노래와 영성과 같이 현대인에게 남아 있는 현생 인류의 유산을 “옹호”하고 사용하자는 것이다(영성의 옹호에 대해서, 『신의 발명』, 14쪽). 노래와 영성을 ‘사용’한다는 것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단순하게 표현해 본다면, 내가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그것에 맡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나를 넘어선 것과 접촉하는 일이다.
두 개념: 초월과 스피리트
초월이란, 나를 넘어서는 것을 뜻한다. 초월이라는 개념이 현생 인류의 뇌에서 생겨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아직 신도 국가도 발명되기 전, 오랜 시기 동안 인류에게 세상은 스피리트(영)로 가득한 곳이었다. 이승과 저승, 자연과 초자연, 생물과 무생물이 겹쳐 있고 연동되어 있었다. 스피리트의 차원에서 만물은 연결되어 있다. 나를 둘러싼 모든 사물들이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매번 그들에게 청하고 감사하고 보답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스피리트와 함께 하는 세상 속에서 인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향을 주고받게 될지 몰라 조심해서 살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스피리트들는 물질 세계에서 어떤 식으로 감지되고 작용하는가? 나카자와 신이치는 영적 차원이 물질적 차원과 닿을 때 그 접촉면에서 무리지어 연달아 발생하는 형태들에 대해 알려 준다. 북미 인디언들이 말하는 “위대한 영”이 대륙의 초원을 마치 바람처럼 훑으며 지나갈 때, 그곳으로부터 수없이 많은, 그러나 전부 다른 형태들이 “스피리트들”로 출현한다. 스피리트란 어떠한 고정된 형태도 갖지 않는, 형태 형성 이전의 에너지 같은 것이지만, 세계와 접촉하는 순간 자기 표현 양식을 채택한다. 이를 테면, 영들이 탄소질 껍질을 걸치면 각종 곤충들이 되고, 관념의 형식을 취하면 추상이 되거나 낯선 이미지들로 찾아온다. 특히 많고 다양한 스피리트들이 집중 서식하며 생멸하는 곳은 우리가 경외감을 느끼는 야생의 장소들이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사람의 뇌 역시 스피리트가 출현하는 숲과 같은 장소라고 말한다. 영적 차원이 뇌라는 물질 차원에 접촉해오면 우리에게 있는 줄도 몰랐던 마음의 한 갈피가 열리면서 이제까지 없던 상상, 환상, 아이디어, 영감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것은 모두 스피리트들의 출현이다. 현생 인류의 뇌는 스피리트를 원형으로 하여 신을 발명하고 종교를 만들었다.
상품이 된 스피리트
그런데 현대인에게 스피리트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유일신을 신봉하는 현대의 거대 종교들은 초월과 통하는 문을 지키는 역할을 저버렸다. 초월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영들이 드나드는 좁은 문을 성역처럼 잘 관리하는 것이 종교의 본연의 기능이었다. 특별한 신앙이 없이 영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일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은총’으로 ‘충만’하고 날마다 ‘기적’이 일어나는 세계란 동화 속 이야기로만 여겨진다. 그렇다면 현실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 우리가 사는 곳은 상품 세계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자는 상품이란 스피리트가 물질화한 것이라고 말한다.
경제 영역에 들어온 스피리트의 원리는 다음과 같이 작동한다. 우리 시대의 ‘위대한 영’인 화폐 가치는 온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이 두루 존재한다. 화폐 가치가 국경 너머로, 가정 안으로, 사람의 마음과 자연에 이르기까지 스치는 자락마다 많고 다양한 스피리트들이 생겨나 상품들로 물질화한다. 그렇다면, 상품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상품이 된 “망령”(217쪽)을 먹고 입고 마시며, 자본주의라는 ‘유령’(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자본주의를 유령에 비유했음)에 떨며, 화폐라는 단일 가치를 유일신으로 숭배하고 있는 셈이 아닌가?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유일신 종교는 최근에 스피리트를 억압하며 성립했고, 그 종교의 죽음 이후 스피리트가 자본주의적으로 부활했다는 것이 나카자와 신이치의 설명이다.
그런데 저자는 상품이란 본래의 스피리트와 다르게 사람의 영혼을 멀리 데리고 가는 능력이 없다고 덧붙인다. 상품은 화폐 가치가 흐르는 상품 사회 회로의 외부로 영혼을 데리고 나가지 못한다. 종교가 새로워지길 기다려야 할까? 종교를 억압해온 과학의 내부에서 낯선 과학의 얼굴로 초월로 통하는 통로들이 열리는 것에 기대를 해야 할까? 그런데 ‘초월’해가는 사고는 마음의 원리이므로, 특정 분야에 국한되어 생겨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개구리와 책의 중대함
양서류인 개구리 등을 가르고 신생아의 얼굴이 출현하는 순간을 포착한 조몬 토기가 있다. 저자는 이것을 삶과 죽음이 구분되지 않는 영역에서 에너지가 솟아나와 새 생명을 낳는 장면이라고 해석한다. 분리된 두 세계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가 열릴 때 벌어지는 일은 대칭성의 회복이다. 이 토기는 “스피리트와 함께 하는 고대”(113쪽) 사회에서 대칭성 개념을 담아 보낸 편지 같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책이라는 ‘상품’도 꼭 조몬 개구리 토기와 닮았다. 상품의 등을 가르고 아직 상품이 생기기 전에 있었던 사고로 통하는 길을 열어 보이니 말이다.
책은 돈을 주고 산 상품이지만, 책을 통해 돈과 상관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화폐 없이는 얻을 수 없는 물건인데, 화폐 가치를 교환하고 증식하는 일이 아닌 다른 가치를 생성하는 일들이 발생한다. 책은 상품이면서 상품이 아닌, 중간적인 존재다. 중간적인 존재는 그 자신이 접경선 양쪽으로 통하는 통로가 된다. 책은 접촉해오는 이들과 함께 화폐 가치와 화폐 가치 너머를 연결하는 새 회로를 생성해간다.
그렇다면 너머로 통하는 통로를 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책을 사는 일, 읽는 일, 토론하는 일 모두가 화폐 가치 바깥을 이곳과 매개하는 많고 다양한 중간적인 활동들이다. 실컷 책을 읽고 나도 남는 것도 없고 잘 이해가 되지 않아 회의감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 우정과 자신감을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얻었는지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저 읽는 일 그 자체가 영적 차원에서 더 중대하다. 왜냐하면 읽는 행위는 통로를 여는 일이기 때문이다.
1학기 동안 우리가 한 일
상품으로 꽉 막힌, 초월 영역으로 통하는 통로를 다시 여는 길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책을 펼치는 것만으로 너머의 세계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은 온도차와 기압차 같은 차이들의 접경 지대에서 생긴다. 책을 펼치면 죽은 선생님들의 입에 숨이 돌아와 소리를 낸다. 책을 열기만 해도, 상품도 문자도 없고 말조차 쓰이지 않았던 때로 돌아간다. 책을 펼치는 행위는 너머로의 통로를 여는 일이다. 너머가 연결되면 이쪽 세계에 치우쳤던 저울추가 대칭을 회복한다. 이번에 두 권의 책을 펼쳤던 우리 세미나 구성원들이 눈에 띄게 바뀐 것은 거의 없어 보이지만, 우리가 한 일은 우주적인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