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인류학
[세계종교사상사] 수업 후기 “건널 수 없는 간극”
종교인류학 『세계종교사상사1』4-23 수업 후기 2025-4-29 김유리
구석기와 신석기 사이
『세계종교사상사』를 읽기 시작했다. 세미나를 이끄는 달님은 ‘기초공사’를 잘 해두어야 한다고 하셨다. 첫 시간이 며칠 지났다고 잊어먹기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공부할 수 있어서 내심 좋아하고 있다.
〇성스러움의 경험
인간은 성스러운 경험을 하면서 인간이 되어 간다. 인간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되어가는 존재다. 성스러움의 경험을 통해 인간 정신은 속된 것으로부터 성스러운 어딘가로 들어간다. “실재하고 강력하고 풍요롭고 의미로 가득한” 세계에 자기를 담그는 존재가 성스럽다.
〇초월성
초월이란 지금 이곳이 아닌 상태를 말한다. 지금 여기 아닌 것의 극한, 또는 전체를 신이라고 한다.
무문자 사회의 수렵민은 인간은 동물로, 동물은 인간으로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몸을 바꿀 수 있다는 변신 모티프는 초월의 느낌을 담고 있다.
〇상보성의 원리
완전히 다른 두 개가 맞물려야 하나의 세트가 된다. 차이가 맞물리면서 생성과 변화가 일어난다. 차이나는 것들이 동등성 속에서 맞물리는 관계를 상보적이라고 한다.
〇구석기와 신석기 사이
엘리아데는 희생 제의 개념으로 구석기와 신석기를 연결한다. 동물을 가축으로 대체했을 뿐 희생 제의는 같다면서 연속성을 지적한다. 하지만, 달님은 두 시대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다고 한다. 신성과의 대칭성이 깨지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동물과의 신비로운 연대감은 동물과 인간이 서로 몸을 바꾸는 변신 관계, 또는 친족 관계로 표현된다. 하지만 우주목과 인간은 마주설 수 없다. 인간은 엎드려 경배하게 된다.
구석기의 신상은 반인반수형이다. 사람의 하체에 동물의 머리가 얹힌다. 구석기의 사람다움은 걷는다는 것에 있다. 잘 걷는 것이 사람이다. 그리고 자연의 힘들이 종합되는 장소가 머리다. 사자와 표범처럼 최고 포식자로, 사슴처럼 신비로운 생명력과 치유력으로, 자연의 힘과 교감하고 관련을 맺는다. 인간은 우주를 구성하는 상보적인 힘의 한 부분으로 맞춰 들어간다.
한편 중석기에 이르면 동물의 머리가 놓일 신성한 자리에 조상의 두개골이 온다. 조상의 두개골은 주기성 자체를 상징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묻으면 그들과 같은 남자와 여자가 다시 나오고 이 과정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이렇게 자연의 힘은 끝없이 같은 장소로 돌아온다. 공동체가 안정되면 지고신과 조상신이 결합하고 왕 개념이 출현한다.
그렇다면 사람다움의 소재처였던 다리는 종교적 창조 과정에서 어디로 간 걸까? 동물처럼 이동하는 수렵민이 정주하면서 다리는 식물의 뿌리처럼 땅에 묻힌 것일까? 구석기 수렵민은 걸어서 이동한다. 기후적으로나 계절적으로 음식과 거주 환경을 찾아 이동한다. 이들의 신은 동물의 얼굴을 하고 있다. 농경민은 식물과 가축을 길들인다. 기후와 계절에 변화에 맞추어 동식물을 바꾸어가며 심고 새끼치게 한다. 사람은 식물처럼 한 곳에 뿌리내린다. 장구한 세월 한 곳에서 삶을 이어가는 나무와 조상이 신이 된다. 수렵 인간의 사람다움은 농경 인간의 집에 파묻힌 것 같다.
캬.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