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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인류학


 

[종교의 풍경들] 나와 우주의 거리

작성자
이달팽
작성일
2025-05-04 02:43
조회
54

길가의 힌두교 신전 사진을 올리겠다고 했는데, 한 번 밖에 찍지 못하였네요. 분명 2주동안 두세 개 정도는 더 지나쳤을 겁니다. 사진의 빨간 색 네모가 힌두교 신전입니다. 신전이 이렇게 길의 가에 덩그러니 세워져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그 신전에서 오른쪽’ 이런 식으로 길을 설명하기도 하는데, 제 눈에는 참 잘 안 들어온답니다. (그렇지만 지난 번 원숭이 신을 만나고 나서는 원숭이 신 타일을 더 잘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신전들과 사람들이 관계 맺는 방식을 보게 된다면, 앞으로 더 잘 찾을 수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렇게 신전들이 길가와 구석에 흩뿌려져 있는 것을 보면, 인도 사람들에게 일상생활과 종교생활 사이의 거리가 정말 가까우리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신전이라고 어디 물좋고 산좋은 깨끗한 곳에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화려하고 대단하게 지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반대로 길 가는 데에 방해된다고 치워버리지도 않고요. 그냥 있어야 하면 있는 건데, 그 기준은 잘 모르겠습니다. 몇 킬로미터마다 하나씩은 있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특정 개인이 세우는 것인지. 물론 크고 많은 상을 모시고 있는 힌두교 신전들도 있습니다. 그런 신전들은 많은 사람들이 멀리서도 찾아가곤 합니다. 브라흐만 신 신전은 인도에 딱 한 군데 뿐이라, 그를 기리는 기념일에는 근방에 무지막지하게 사람들이 몰려든다고 합니다.





이 사진 둘은 작년에 바라나시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작은 기둥에도 꽃을 둘러주는 이 마음이 참 신선하다고 생각합니다. 인도 아저씨가 머리에 이고 있는 이 노란 꽃도 모두 신에게 바쳐질 꽃입니다. 어딘가에 바쳐지는 어마어마한 양의 꽃을 생각해봅니다. 내가 먹을 밥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신에게 드릴 꽃을 사는 마음을 생각해봅니다. 이 어마어마한 낭비, 그리고 나를 초월한 어떤 것까지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풍요로움과 너비를 생각해봅니다. 






첫 번째 사진은 원숭이를, 두 번째 사진은 다람쥐를 찍은 것인데요, 두 사진의 배경에 모두 오색 깃발이 걸려있었습니다. 다람살라에서는 건물 바깥에서, 티벳사람들이 사는 곳을 금방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사는 건물이나 방 밖에 이렇게 오색 깃발이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티벳 사람들은 깃발이 색이 바래고 닳도록 걸어둡니다. 깃발에 적힌 불경이 바람을 타고 널리널리 퍼져나가리라고 바라기 때문입니다. 

어떤 마음이 특정한 물건으로 드러나는 형식이 있다는 것이 재밌습니다. 불법에 대한 신심과 많은 이들의 평안을 기원하는 마음이 오색 깃발을 거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종교는 형식과 떨어질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보면 ‘형식’을 만드는 것 자체가 무질서하게 퍼져있는 일상과 분리되는 순간을 만드는 것인 듯합니다. 정신없이 나의 생계를 위해 살다가 오색깃발을 보며 우주를 떠올리는.. 특정한 날에 특정한 물건들을 가지고, 특정한 순서로 특정한 행위를 하는 예식은 특정한 마음 상태를 불러일으키는 일이겠지요. 힌두교 신전이 길가에 많은 것은 어쩌면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한 노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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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3

  • 2025-05-06 10:56

    꽃을 머리에 이고 가는 아저씨의 모습이 성스럽게 느껴지네요. 종교가 발생시키는 문제도 많지만,,, 성스러움에 꽃 한다발을 바치는 마음은 낭비를 해도 아름다운 낭비인 것 같습니다. 만국기와 태극기보다는 지혜의 깃발을 휘날리며 중생의 무고를 비는 티벳의 마음이 너무 좋습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 2025-05-09 09:16

    형식이 일상에서 벗어나는 마음을 만든다는 달팽 선생님의 정의가 참 좋습니다.
    요즘엔 실질적 필요나 의미를 따지며 형식을 터부시하는데,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도 됩니다.
    일상과 종교가 늘 같이 하는 풍경 이야기 고맙습니다.


  • 2025-05-13 08:49

    일상과 종교의 ‘거리’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평범한 거리거리에 꽃을 두는 마음. 저마다가 지나치는 모든 풍경에 헌화하는 마음. . .
    참된 영성의 모습에 대해 생각합니다.
    다람살라가 가깝게 느껴져서 좋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