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인류학
.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 가부장이 아닌 사회
마음 인류학 /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1) / 2024.9.23 / 손유나
가부장제가 아닌 사회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대다수의 사회가 남성이 중심이 되는 가부장제 사회구조를 갖고 있다. 농경으로 인해 잉여생산물이 생기고 분업이 뚜렷해지면서 위계와 계급이 존재하는 ‘부권사회’로 접어들었다는 게 일반적 설명이다. 그러면 농경 이전의 시기는 어떠했을까? 구석기 시대의 성별에 따른 분업고 사회 위계 구조는 상상과 추론의 영역이다. 침팬지, 오랑우탄의 집단처럼 강한 수컷이 지배했을 것이라는 모델에서부터 출산 할 수 있고 채집을 통해 안정적인 먹거리를 제공하는 여성이 주도권을 쥐었으리라는 모권 사회 가설, 혹은 남녀가 함께 사냥하고 공동 육아를 하는 이상적인 평등사회라는 가설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구석기 시대를 살아 간 사람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던 <빙하 이후> 책을 읽으면서 당시에도 현재와 같은 여성차별이 있었는지 궁금했었다. 내가 현재 가부장제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이어서, 오랜 과거에라도 여성이 중심이 되는 사회가 있었기를 바랐다. 하지만 구석기인들이 나와 다르지 않다는 전제를 두고 생각을 하다 보니, 구석기 시대는 ‘차별이 없는 사회 혹은 여성의 권위가 더 높았던 사회‘라는 가설을 내려놓게 되었다. 구석기인이 현대인과 다르지 않다면 성별에 따른 위계만이 지금과 달랐을 것이라는 가정은 타당치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물행동학자 프란스 드발은 문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문화에는 사물을 바꾸는 강한 힘이 있다. 문화는 인간 존재의 중심에 깊이 스며들어 우리의 행동과 존재에 영향을 미친다. 단 그것은 인간 본성과 관련된 경우에 한한다. 문화는 인간 본성을 부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구부려본다.(21)”
그러자 가부장제가 현재 대다수의 사례를 차지하기 때문에 과거에도 부권사회였으리라는 가정에 의문이 들었다. 문화도 종이 가진 본성의 일부라면, 드물지만 여성의 권위가 더 높은 사회도 존재하고, 남성과 여성이 함께 사냥을 나가는 사회도 존재한다.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행위였다면 모권 중심의 사회는 존속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결국 가부장제가 아닌 사회도 인간의 본성이 발현되 문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과 가까운 친척이라는 보노보와 침팬지 집단을 보면서 인간 본성이 부권을 향하고 있다는 생각에 더욱 의심이 들었다. 침팬지와 보노보는 어느 동물이 그렇듯 수컷이 힘이 세고 송곳니를 가졌다. 하지만 침팬지가 강한 수컷 중심의 사회인 반면 보노보는 암컷끼리의 밀접한 유대를 맺고, 어미가 자식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면서 암컷이 주도적인 문화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갈등이 생기면 폭력을 통해 해결하기보다는 성적인 접촉을 통해 긴장을 해소한다. 그렇다고 수컷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수컷들은 아주 활기차게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보고했다. 이 두 동물집단의 차이를 보면서 인간이 긴장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무엇을 택하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회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부장 구조가 다수의 사례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인간의 본성은 부권 사회로 향하고 있다는 생각은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다수의 사례가 부권 중심이라고 하여 인간 본성이 부권 중심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으며 언제나 5:5의 가능성에 문화가 결합하여 가부장 사회가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가부장과 가부장이 아닌 사회로 나뉘게 하는 특성은 무엇일까? 아니면 대다수가 그러하다는 경향성은 역시 인간 본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