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마음 인류학

.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1)]유인원의 문화

작성자
강평
작성일
2024-09-23 16:55
조회
50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1)/240924/강평

 

유인원의 문화

 

문화란 무엇인가

인문세 화제 세미나 <일본 철학>에서 이번 주 이연숙 선생님은 근대를 빛/어둠, 문명/야만, /, 과학/미신, 정신/신체로 이분화한 시기라고 말씀하셨다. 생과 사만 해도 그 중간에는 로병이 엄연히 있는데 생/사로 이분화하는 근대는 중간의 수많은 스펙트럼이 사라져 여운, 침묵, 기다림의 세계가 분쇄되었다고 평하셨다. 이연숙 선생님의 말씀은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에서 제기하는 인간/동물, 문화/자연이라는 이분법의 문제와 연결되었다. 이 책 제목은 모방, 연습이라는 행위를 통해 문화를 배우는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라는 인간의 유사성을 뜻한다. 한편 동물 중 원숭이를 들어 주로 설명한 것은 원숭이 등 유인원이 뇌의 작동 등에서 인간과 가장 비슷하고 박쥐, , 고래 등은 움벨트(Umbelt)의 차이로 지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연/문화로 무 자르듯 자르기보다는 원숭이가 자연에, 인간이 문화에 더 가까운, 스펙트럼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란스 드 발은 생각보다 원숭이로 대변되는 유인원이 문화를 많이 가지고 있고(인간적이고), 반면 인간도 본능적인 면이 많다(동물적이다)고 말한다. (사전적으로 유인원은 인간을 포함한 원숭이,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등을 뜻하지만, 인간은 유인원 중 유일무이한 문화를 가진 존재로 분리되어 설명되고는 한다)

이 책은 우리(인간)가 다른 동물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1), 문화란 무엇인가(2), 우리는 스스로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3)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동물이 동물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답은 들을 수 없기에 우리가 동물을, 우리 스스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문화가 무엇이며 자연 속에 존재하는지만 질문할 수 있다. 이 책은 과연 동물에게 문화가 있느냐 여부를 다루고 있다. 문화를 만약 포크, 나이프로 식사하고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으로 한정한다면, 원숭이는 문화가 없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러한 정의는 인간만이 유일무이하게 문화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전제로 한, 하나마나 한 정의이다. 포크, 나이크, 클래식 음악과 상관없는 수많은 인간도 문화가 없는 셈이 된다.

프란스 드 발은 문화란 타자로부터 얻는, 반드시라고는 할 수 없지만 대개는 구세대로부터 습득하는 지식과 습관을 의미할 뿐이다. 문화는, 같은 종이더라도 집단이 다르면 행동도 달라지는 까닭을 설명해준다”(19페이지)라고 한다. 같은 원숭이 이라도 고구마를 바닷물에 씻는 집단에 속해야, 그 행위를 모방하고 배울 수 있다. 만약 문화의 정의를 이렇게 넓힌다면 동물에게 문화가 있다는 입증 근거는, 차고 넘치게 많아진다. 그는 유인원들을 그들 자신만의 풍부한 지모와 존엄성을 가진 우리의 먼 친척이다”(46페이지)라고 한다. 유인원들은 생각도 있고 감정도 있는 존재로서 불과 500~600만 년 전만 해도 조상이 같다는 의미이다. 결국 유인원에게 문화가 있느냐 여부는 문화의 정의와 결부된다.

 

문화의 증거

1930년대 미국 연예계를 주름 잡던, 인간의 옷을 입고, 담배를 피우며 인간을 흉내 내는 유인원 만찬회 프로그램이 있었다. 침팬지의 롤은 옷을 입고 담배를 피우며 인간처럼 보이려고 애쓰지만, 결국 비참하게 실패하는 것이다. 그들의 롤이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하는 것이 롤이다. 그들의 실패는 역시 인간만이 가능한 문화라는 영역을 입증하기 위해서인데, 여기까지가 연기라는 점에서, 이 전체는 대중을 향한 기획자의 사기극에 가깝다.

동물은 모방할 뿐이라고 하지만 일회성 흉내 내기로는 도달할 수 없이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한 영역이 많다. 손흥민의 경기를 많이 본다고 축구를 잘할 수 없다. 훈련해야 공을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나 동물이나 매한가지이다. 또 직접적인 지도를 받지 않더라도 집단의 노출된 환경 자체가 중요한 경우가 많다. 저자는 아프리카의 한 아이를 기르기 위해서는 마을 하나가 있어야 한다는 격언을 인용한다. 단순히 당대뿐만 아니라 긴 시간 많은 이들의 흔적이 축적된 환경이 아이 하나가 성장하기 위해 전부 필요하다는 뜻이다. 모방, 직접적 훈련, 간접적 체험(환경 노출)까지가 동물과 인간의 공통점이라면, 인간이 더 문화에 가까운 것은 이 과정의 정도 문제일까, 아니면 동물에게는 없는 지식의 축적이었을까?

 

동물 연구의 자세

저자는 동물 연구의 자세를 말한다. 동물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의인화가 필요한데, 이때 의인화는 내가 필요한 선물을 살 것이냐, 상대가 필요한 선물을 살 것이냐의 문제처럼 인간 입장과 동물 입장으로 나뉜다. 뇌만을 중심으로 하면 박쥐처럼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시각, 청각이라는 감각을 가진 동물이 있으니 이 부분은 동물 입장이라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영역이 있다는 점도 염두해야 한다. 동물 입장의 의인화라고 해도 인간은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 입장에서 오해해버릴 우려가 항상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다 보면 저절로 얻게’(54페이지)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며, 어느 동물이나 마찬가지라는 태도대신 동물마다의 전형적인 행동에 대해 조금은 알아두고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이 책을 읽다가 침팬지의 마크 테스트나 아이를 구한 고릴라 등 인지 능력, 감정에 대해 의심할 수 없어 보이는 증거에도 반박하는 학자들이 흥미로웠다. 드 발은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올렸던 침팬지 폴리틱스침팬지가동맹, 권모술수로 가득한 복잡한 사회에 살고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 이는 인간 사회를 비치고 있다는 취지로 썼다고 한다. 하지만 출판사는 정치가들이유인원이나 다를 바 없는 행위를 하고 있다고 해, 저자의 취지와는 다른 홍보를 했다고 한다. 이를 보면 어떻게든 유인원과는 차원이 다른 유일무이한 인간을 수호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정서가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동물농장>같은 TV 프로그램은 개도’, ‘새가인간이나 할 법한 일을 한다며 개와 새의 특별함에 감탄하는 장면이 많았던 것 같다. 또 많은 경우 인간의 감정과 사고를 동물에, 근거 없이 주관적으로 중첩시키는 의인화의 오류를 보여주기도 한다.

 

동물과 우주를 보는 자세의 연결

1부가 우리가 다른 동물을 어떻게 보는가라는 점에서 이 챕터에 <대가들의 운명>이라는 동물학자들의 이야기는 조금 생경하다. 다른 동물들과 대가들은 무슨 관계란 말인가. 프란스 드 발은 자기 발상의 90%는 앞사람으로부터 받았으면서도 나머지 10%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면 기뻐 어쩔 줄 몰라, 그것을 미처 생각 못 했던 전임자들을 비판한다”(104페이지)라며 이른바 학계의 흉한 부친 살해를 비판한다. 그는 구체적으로 그 비판의 피해자인 콘라트 로렌츠, 니코 틴베르헨, 이마니시 긴지라는 동물학계 부친들의 공적에 대해 감사함을 표한다. 앞서 인용한 아프리카 격언처럼 프란스 드 발 같은 학자들이 있기 위해서는 동물학자들의 마을, 즉 물론 아쉬운 면이 있더라도 그런 학자들이 모두필요한 것이 아닐까.

로렌츠는 나치에 대한 암묵적 협력으로 비판을 많이 받은 학자이다. 프란스 드 발은 로렌츠에게 관찰의 비결로 구체적인 답을 얻고자 하는 구체적이고 정확한 질문을 던지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 로렌츠는 일부 새가 자기 종을 자동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보수와 징벌 없이, 어미가 아니더라도, 움직이는 것을 자신의 종으로 자발적으로 인식하는 각인(imprinting)이라는 학습 과정을 발견한 학자이다. 또 뛰어난 대중적, 철학적 글쓰기를 한 열정적인 학자이다. 프란스 드 발은 매사 진중한 학자로 인정받는 틴베르헨도 과학계에 필요하지만, 동시에 틴베르헨은 하기 어려운, 동물 학대의 대명사 스키너와 대적할 수 있는 전투력이 있으며, 생소한 동물행동학을 대중화한 입담 있는 로렌츠도 필요하다고 한다. 프란스 드 발은 자신들에게 노출되었던 수많은 선물에 약간의 흠이 있다는 이유로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그 선물들이 쏟아부었던 무수한 시간과 애정의 관찰을 알기는 하는지, 그걸 모르는 사람이 과연 동물이나 자신의 기준에 미달한 다른 인간을 제대로 보기는 할지를 묻는 것 같다.

 

침팬지와 다른 보노보

프란스 드 발은 침팬지 폴리틱스에서 침팬지 집단의 암투과 폭력과 꼼수가 난무하는 권모술수, 합종연횡이라는 관찰 결과를 발표한다. 그런데 그가 이후 연구 관찰한 유인원의 하나인 보노보는 공격 대신 섹스, 화해로 평화를 만든다. 보노보는 번식과 무관하게 싸움에 임박해서, 혹은 싸움이 끝나면 화해의 시도로서 섹스를 한다. 침팬지들이 무리들간 경쟁으로 피가 낭자한 반면, 보노보는 우호적 교제를 우선으로, 다른 집단의 상대와도 섹스와 털고르기를 통해 평화를 도모한다. 청교도적인 미국 정서로는 툭 하면 섹스하는 보노보가 맘에 안들었던 것 같다. 근본이 없고 본능에만 충실한, 진짜 짐승이라고 생각했을까. 프란스 드 발은 보노보 암컷의 회임 기간이 긴 것을 이용 먹이를 통제하고 있는 수컷을 섹스로 통제하며 진화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는 보노보에게서 무조건 섹스만 볼 것이 아니라고 한다. 다른 유인원들이 수컷이 공격적, 암컷이 수동적이라는 기존 관념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고 한다.

애니멀 아트

유인원이 생각하고, 대응할 수 있다 치고, 인간처럼 예술도 할 수 있는가. 프란스 드 발이 지적한대로 원시인들의 예술도 예술로 받아들이기를 꺼려하는 학계가 동물에게는 열려 있을까. 프란스 드 발은 새가 지저귀는 것, 그래서 우리가 숲에서 무료로 한없이 듣게 되는 소리는 새가 음악가가 귀를 기울여 소리를 익혀서 내는 것이라고 한다. 모차르트의 찌르레기에 대한 찬사나 미야자와 겐지의 <첼리스트 고슈>에 나온 새와 고슈 사이의 교감도 생각난다.

미술 분야는 어떠한가. 콩고라는 침팬지의 그림은 작품 구성이나 대담함에서 인간 아이의 수준을 넘어선다고 한다. 그의 신체 자체가 힘과 근력이 있어서 필체가 힘찬 표현의 직구로 나타난다고 한다. 피카소는 그렇게 그려진 콩고의 그림을 벽에 걸었다고 한다. 침팬지의 그림은 직설적이고, 표현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작업의 종료 감각이 확실히 있기 때문에 중간에 뺏겼다가는 강력한 저항을 하기도 한다. 또 제작이 끝난 다음에는 그림을 찢어버려, 남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분야는 정혜숙, 조재영샘에게 물어보고 싶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