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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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와 초밥 요리사] 1부, 문화의 재정의
문화의 재정의
지난 시즌 인류학 세미나에서 『빙하 이후』를 읽으며 우리의 선조인 현생인류가 거대한 자연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온갖 고군분투와 선조들의 고도의 기술력과 예술, 문화의 발전상을 탐구하며 지금까지 전승되어온 인류의 저력에 혀를 내둘렀었다. 파면 팔수록 끝을 알 수 없고 무수하게 얽혀있는 만물의 상관관계에 한 존재의 시각과 사유의 편협함을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덕분에 개인적으로 시간의 흐름과 축적된 공부량에 따라 실력이 향상될거라는 근대의 단선적 시간관에 여전히 예속되어있음을 깨달았지만, 늘지 않는 글쓰기 실력과 시간이 부족하다는 조급함,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내려놓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깨달음은 얻었지만 한 줄 한 줄 책을 음미하며 글쓰기를 해보자는 다짐과 새로운 공부 방식의 변화와 실천이 쉽지만은 않다. 한 명의 습관의 변화가 이리 지난하고 어려울진데 집단 사이에서 지식, 습관, 기능의 체계적인 변화인 문화가 형성, 유지, 전승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고 새로운 인과의 고리가 발생할지, 얼마나 많은 구성원 간의 시도와 노력이 요구될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에 프란스 드발도 문화와 자연이 대립한다는 서양의 이분법적 사고에 의한 인간중심주의 사고방식에 의문을 던진다. 인간과 가장 유사한 동물인 유인원 연구자인 드발은 호모사피엔스 이전의 진화론적 인류 친척인 영장류를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그들에게도 문화가 있음을 발견했고, 문화적 편견에 의한 유인원과 동물에 대한 인간의 성급한 판단을 경계했다. 동물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수박 겉핥기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판단을 해야한다면, 선입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유인원을 직접 경험해보거나 동물에 대한 관찰과 탐구라도 하고 구별해보자고 말한다. 언어와 교육, 가치관, 제도 등의 유무와 세련됨을 기준으로 자연과 문화를 구분하고, 자연을 벗어나 문화의 영역에 발을 내딛은 생물은 인간뿐이라는 생각은 만물의 연결성을 잃어버린 단절적 사고에서 기인한 자기 비하, 왜소화 등의 자기인식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자로부터 배우는 것이 제2의 천성임을 잃어버렸다. 이에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은 다른 동물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자신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 문화의 본질이란 무엇일지 숙고해보자고 말하며 문화를 재정의한다. 문화는 우리가 관계 맺는 자연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며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환경이자 인간 본성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프란스 드발은 문화란 한 집단의 구성원이 공유하는 생활양식이라고 말한다. 다만 문화는 같은 종일지라도 집단이 다르면 반드시 공유되지 않으며, 집단 사이에서 지식, 습관, 기능의 체계적인 변화가 있고 그 원인을 유전이나 환경의 요인으로 돌릴 수 없는 경우 그것을 문화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정의에 의하면 문화는 서로에게 배우는 것이 필수조건이며, 개체가 독자적으로 획득하는 지식이나 습관, 기능은 문화라고 부르지 않는다. 또한 동물도 타자로부터 얻은 아이디어와 상당량의 개별적 연습을 쌓아서 이루어지는 모방을 통해 생존력을 높인다고 한다. 인간만이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상대를 조롱하거나 평가하기 전에 계통수에서 위아래 구분 없이 동등하게 위치해 있던 인류 조상의 뿌리를 탐색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
질문) 1. 드발은 동물을 이해해보기 위한 방식으로 의인화의 거부보다는 의인화가 낫다는 주장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의인화에도 인간의 시점과 동물의 시점에서 보는 차이를 말한다. 동물 중심의 의인화와 인류 중심의 의인화의 차이가 선명하게 와닿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주체적 환경, 동물에 의해 지각되는 환경이라는 ‘움벨트’는 무엇일까?
2. 드발은 행동 연구를 성숙한 과학으로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관점에서 발상을 끌어낼 것과 영장류나 그 밖의 동물이냐 하는 연구대상별로가 아니라 주제영역(인지, 진화적응, 문화, 유전과 같은)별로 조직해갈 것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연구대생별 조직이 아니라 주제영역별 연구를 조직해야 하는 이유는 무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