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인류학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 (2) 동물과 ‘친구’ 되기
동물과 ‘친구’ 되기
인류학을 공부하면서 자연과 문화가, 동물과 인간이 선명히 경계 지워져있다는 기존 인식들이 해체되어 가는 중이다. 마찬가지로 문화가 인간만의 것이라는 것도 우리들의 잘못된 통념이자 오만이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인간과 동물 모두 자연의 일부로, 변화하는 자연의 흐름 속에 살며 각자의 문화를 형성해 간다. 다만, 그 문화를 이루는 내용이나 방식이 다를 뿐이다.
동물은 자신들만의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을까? 인간 문화와의 차이를 들여다보면서 다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고민해보고 동물과 인간이 ‘생명’을 가진 존재로 공생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계속 생각해 보게 된다. 이때 동물과 인간 사이의 차이에 주목한다면 인간과 생명에 대한 사유의 폭이 더 깊고 넓어지게 된다. 저자 프란스가 말하듯 동물들의 문화를 통해 ‘예기치 않는’ 상황들을 대면했을 때가 바로 그런 때이기도 하다.
‘인간’이라는 렌즈 내려놓기
우리와 다른, 예기치 않는 동물들의 문화를 들여다볼 때, 들여다보는 렌즈를 ‘인간’의 시선으로 고정해둔다면 그들을 이해하는 데 번번이 실패하고 말 것이다. 예컨대, 동물의 ‘유아 살해’를 인간의 시선으로 보고, 여기에 인간 문화 내의 ‘도덕’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동물은 즉시 미개한 존재로 규정되어버린다. 인간의 세계와 ‘다르게’ 동물 세계에서 유아 살해는 드문 일이 아니다, 1967년 영장류학자 스기야마 유키마루는 인도 마른원숭이 수컷이 옛 리더를 몰아내어 암컷의 하렘을 뺏은 뒤 무리의 새끼를 죽이는 것을 보고했다.(206)국제 회의에 참석한 많은 학자들에게 이 상황은 자신들의 즉, 인간들의 상식에 맞지 않았던 것이었고 이들은 원숭이들의 ‘병리적’ 상황으로 여겼다. 그러나 스기야마는 출산 후 암컷이 새끼를 잃으면 곧 교미가 가능할 것이므로 다른 수컷 새끼를 제거하고 암컷과 교미하여 자신의 새끼를 많이 만들려는 수컷의 번식 전략이라고, 수컷 원숭이의 입장에서 설명했다.
동물, 관찰 대상에서 교감의 대상으로
‘인간’-렌즈를 내려놓고 동물을 들여다보는 일에는 서양보다 동양이 한층 능숙하다고 프란스는 말한다. 이는 동양 세계, 삶의 기반을 이루는 철학과 관련이 있다. 저자는 연구 대상인 원숭이에게 ‘먹이’를 줌으로써 유대관계를 쌓아갔던(교칸 수법) 일본 연구자들에 대해 언급한다, ‘서양 연구자들이 연구 동물에 대해 엄밀한 중립을 고수’(215) 했던 반면, 중립 경계선을 허물고 무리 내부로 적극 끼어들어가 원숭이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는 동양 연구자들은 ‘모든 것이 사회를 축으로 하여 회전하고 있고 그 안에 개체가 존재한다고 생각’(214) 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는 인간은 물론, 동물, 식물 등 모든 존재들이 포함된다. 인간과 다르지 않게 동물도 ‘사회’를 구성하며 그것을 축으로 혈연, 우정, 경쟁, 지위를 만들어간다고 믿었으며 해서, 이 믿음을 바탕으로 원숭이 세계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에 집중했다. 서양 연구자들이 원숭이를 관찰 대상으로 여겼다면, 동양 연구자들은 감정이입하는, 교감의 대상, 친구로 원숭이들이 대했다.
문화적 존재라면 사회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해가는 공동의 관습, 도덕, 지식 등이 이번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학습되어 전승되어가는 과정 또한 포함된다. 프란스는 동물에게 문화의 전승이 어떻게 이뤄지는가, 또 인간과 그 방식이 얼마큼 비슷한가 질문한다. 물론 이에 대해 완전히 알려진 바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동물들 역시 인간이 그렇듯, ‘타자에 융합되고 타자와 똑같이 행동하고 싶어서’ 타자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모방한다는 것이다. 초밥요리사의 수습생이 그러하듯이.
그런데 이 ‘모방’이라는 것이 재미있다. 모방이라 하면 별 생각 없이 타자를 따라 하면 되는 수동적 활동이라 여겼다. 인간을 따라하는 원숭이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익숙한가. 프란츠는 이 ‘모방’에서도 모방을 하려면 ‘동일시’, ‘목표의 이해’, ‘배경지식’ 등의 사고 훈련이 수반되어야 한다. 모방을 하려면 모방하려는 ‘나’를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나와 타자의 구분이 없다면 모방의 개념은 성립하지 않는다. 타자를 인식한다는 것은 때로는 동지로, 때로는 낯선 자로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 낯선 자를 경계하며, 불안과 의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를 모방하고 싶다는 욕구가 일어나지 않는다. 또 모방하는 행동, 모방할 때 따라오는 물건에 대한 이해, 그 물건을 어디에 쓰는 것인지, 왜 쓰는 것인지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한다. 모방은 매우 복잡한 행동이자, 상황을 종합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프란츠는 모방이야말로 ‘최상급의 인지 기술’(243) 중 하나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