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종교 인류학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3)]인간, 문화적인 생물과 공존하다

작성자
강평
작성일
2024-10-07 17:01
조회
244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3)/241008/강평

 

인간, 문화적인 생물과 공존하다

 

동물원과 TV속 권력 투쟁

프란스 드 발은 인간을 설명하기 위해서 동물의 행동을 수단으로, 그것도 표피적인 면만 갖다 쓰는 것을 경계한다. 에이브리햄 매슬로는 원숭이의 세계에서 지배의 하위자가 진정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호시탐탐 권력을 노리는 것처럼 인간도 그렇다고 주장한다. 드 발은 이에 대해 동물행동학자가 아니라 인간의 심리를 연구하는 심리학자, 게다가 인간은 동물과 다르다고 단언하는 사람이, 인간의 심리를 설명하면서 동물의 행동을 그 논증의 수단으로 하는 것이 의외라고 한다.

매슬로가 주장한 자존심이라는 개념은 1930년대 미국 사회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문화의 심금을 울렸다고 한다. 또 그는 타고난 생물학적 우수성이 있는 개체가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를 사회가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가 주장한 자존심 개념이 구석구석 문화적 심금을 올렸다는 것은, 실제로 그런 자존심이 있는지에 상관없이 약자들이 그래 너에게도 자존심이 있어라는,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은 것에서 비롯되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생물학적으로 우수한 엘리트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자는 주장은 약자들의 심금을 올렸을 자존심문제와는 다소 배치되는 것 같다(이 부분은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드 발은 자존심은 그냥 생기는 아니라 타인의 인정, 그 인정이 만드는 특권으로의 변형을 통해, 사회적으로 구축되는 것으로서, 그럴만한 매력이 있어야 생긴다고 한다. 붉은 원숭이 미스터 스피쿨즈의 사진(335페이지)이 전하는 매력을 생각해본다. 문자 그대로 이빨과 털이 다 빠지고 눈도 침침한 것 같은 왕년의 리더를 혈기 왕성한 젊은 수컷들이 감히 치지 못하는 심리적인 억제가 그 매력에 대한 힌트를 준다. 수컷들의 심리적 억제는 암컷들의 스피쿨즈에 대한 단단한 지지때문인데, 그 지지는 단순한 옛정 때문이 아니다. 어쩌다 한방을 보여준 신예보다는 예측 가능한 행동 즉, 신뢰감 있는 안정감이 집단을 지켜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권력이란 타자로부터 분리하여 독자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대인관계의 기술, 사회적 맥락 속에서 찾아야 한다. 현실 정치에서 국회의원도 국민 입장에서는 청문회,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사이다 발언을 하는 저격수를 선호하지만, 적을 향한 타격감만으로는 부족하고 당내에서 절충과 화해 등 일종의 내부 영업도 필요한 맥락인 것 같다. 회사도 마찬가지이다.

드 발은 워터게이트로 낙마한 닉슨 대통령과 아넴 동물원에서 비슷한 처지에 놓인 침팬지 이에론의 반응이 비슷하다고 한다. 둘 다 억울해하고 짜증낸다. 침팬지 이에론은 신예 강자에 밀리자 갑자기 낙엽처럼 떨어지며 가련한 소리를 내는 를 한다. 일명 권력으로부터 젖떼기를 맞아 주위의 위로와 응원을 이끌어내려는 교묘한 사회 조작의 예이다. 권력이 흔들릴 때 인간이나 침팬지나 비슷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동원해서 쇼든 하든 지푸라기를 잡든 해서 위로와 힘을 얻으려고 한다. 동물원에서 벌어지는 일이 TV, 회사에서 자주 벌어진다. 사회 이야기, 남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왜 권력이 좋다고 말을 못하니?

침팬지 사회, 인간 사회에서 드 발이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강이 흐르는 것처럼 안정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라고 한다. 권력 주변을 맴돌며 언제든 빈틈을 노리고 있다가, 치고 들어오는 것 때문에 긴장, 경계, 충돌이 다반사라는 것이다. 현실은 침팬지나 인간이나 권력을 두고 투쟁을 한다. 언제나.

드 발은 인간은 이들 경향을 온갖 완곡어법으로 덮어 가린다고 지적한다. 국가와 결혼을 했다느니, 책임이라느니 하는 말로 이라는 말이 금기어라도 되는 것처럼, 대놓고 권력이 좋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TV 정치가들을 보면 침팬지가 대놓고 권력 투쟁을 하는 것과 하등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TV에 나오는 정치가들이 수세에 몰릴 때, 드 발이 볼륨을 줄인다는 부분이 재미있었다. 그럴싸하게 그들이 내세우는 말을 빼면, 그들의 몸짓, 자세, 시선은 권력을 쥐기 위해 온힘을 다해 연기하는 침팬지와 그대로 겹치기 때문이다.

드 발은 매슬로가 원숭이들의 행동 이면의 그들이 속한 사회에 단단히 뿌리 내린 모체를 주목했으면 어땠을까 질문한다. 지배 욕구는 인간이나 침팬지나 오랜 전통의 산물이고, 이를 부인할 수 없다. 드 발은 동물의 행동을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편의대로 갖다 쓸 수 없다고 한다. 인간은 동물과 같이 고상하면서 사악하기도 하고 온갖 모순을 가지고 있으니 간단하지 않다. 선입견을 뒷받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잡하고 다양하고 다층적인 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친절함이 살아남는다

동물원에서 맹수인 호랑이를 양육하고 있는 개, 이 동물원에 있는 호랑이와 독수리의 대결 조각상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드 발은 결론적으로 조각상은 경쟁구도를 이론적으로 형상화한 것이고, 현실은 동물원에서의 이론과는 다른 양상이 펼쳐진다고 한다. 그 어미 개가 바보가 아니기에 호랑이 새끼와 강아지를 모양과 냄새로 구분하지 못할 리도 없고, 보상 때문도 아니라면 도대체 우리 안 어울리지 않는 두 개체의 공존을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드 발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개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거미줄 치는 거미, 견과류의 저장 위치를 기억하는 다람쥐는 본능적으로 그 행동을 한다. 그들이 목적이라는 의도, 자신의 행동이 의미하는 바를 인식한 뒤에 이기적으로 움직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간도 태아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는 목적으로 많이 먹는 것이 아니라 식욕이 당기기는대로 할 뿐이라도 한다.

드 발은 보상이라는 목적에 의한 것보다 감정 이입에 따른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침팬지가 공격의 희생자에게 털고르기 등으로 위로한다. 같은 유인원이라도 원숭이는 그런 희생자를 위로하지 않고 피한다. 모든 동물이 동일하게 감정이입에 뛰어나지는 않은 것 같다. 한편 인간이 요나라는 침팬지를 지붕에서 내려오게 하는 방법은 감정에 눈을 감고 우는 시늉을 함으로써 감정에 호소하기이다. 출산 자세를 바로 하지 못해 난산을 하는 박쥐에게 산파 박쥐가 손짓 발짓에 시연을 하며 갖은 시도를 하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출산 박쥐와 산파 박쥐를 응원하게 된다. 더 이상 구조자를 찾지 못하고 시체만 찾는 구조견의 우울증, 구조견들의 지친 모습을 단순히 시간 경과에 따른 결과로 보지 않고 우울이라고 진단하고 수의사가 극적으로 구조되는 연기를 통해 구조견에게 활력을 되찾게 해주는 장면은 뭉클했다. 동물의 이런 행동을 두고 목적, 인식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행동들은 즉각적이고 충동적이다. 그렇다고 어쩌다, 우연히 이 행동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주 오랫동안 집단 사회내에서 감정이입을 한 행동들이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 유전적으로 새겨진 것도 있겠지만 동시에 이유를 알 수 없이 즉각적인 반응(response)을 보이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여기에는 단순하지 않고 복잡한 인과가 엮여 있다.

 

다층적인 인간과 동물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레비 스트로스가 말하는 문화로서의 근친상간 금기는 근친상간 본능을 말한다. 하지만 웨스터마크가 실시한, 친남매처럼 자라다가 결혼한 대만의 사례를 통해 천연실험은 근친상간을 본능적으로 꺼려한다는 상반된 결과를 보인다. 또 일본원숭이 수컷은 많은 암컷과 교미하지만 어미와는 교미하지 않았다. 섹스로 많은 것을 하는 보노보도 모자간 교미는 강력히 억제한다. 이렇게만 두고보면 근친상간 금기를 인간 문화의 특징의 하나라고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도덕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싶은 본능을 누르면서 말이다. 인간만이 도덕이나 맹자의 측은지심을 갖는다고 보기 어렵다고 한다. 또한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럴려고 애쓰거나, 목적을 가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충동으로 도덕을 향하기도 한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