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마음 인류학

. 

[야생의 사고] 쓸모와 관심

작성자
콩새
작성일
2024-10-14 17:27
조회
51



   쓸모와 관심

                                                           

                                                                                                                                                                                                                                                           2024. 10. 14. 정혜숙


  주제: 야생의 사고_물질적인 것과 언어적인 것의 브리콜라주

  

  책의 제목 ‘야생의 사고’가 주는 강한 인상은 글을 읽으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동의하거나 저항해야 하는지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하게 했습니다. 서구의 사고가 원시인들의 사고를 무시했지만 결국은 그들의 문명도 서구의 문명 못지 않게 때로는 더욱 구체적 관찰과 기억을 가지고 있음을 연구를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둘 중 어느 것이 더 우월한 것이냐를 따지는 내용이 아닌데 하나를 선택하거나 옹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에 저항하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목적이라는 것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봅니다.

  세상을 이해하거나 분류하는 방식에서 서구의 문명과 원시인의 차이를 만드는 이유 중에 하나는 쓸모와 관심이라고 합니다. 실용적 차원의 쓸모와 지적 차원의 관심은 두 문명에 확연한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수십 수백종의 생물의 특징을 구분해 분류하지만 ‘나무’ 라는 분류를 하지 않는 문화를 서구는 열등한 것으로 재단합니다. 하지만 원시인의 삶속에 질서는 서구가 기대하는 구조와는 다르기에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할 지도 모릅니다. 책속의 어느 사려 깊은 인디언은 세상의 성스러운 것들은 제자리에 위치해 있으며 그렇지 않았다면 우주의 질서는 무너질 것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그 사고의 구조를 이해 할 수 있을까요. 

  한 분류학 이론가는 무질서를 없애려는 노력은 생명의 기원과 함께 저차원에서 무의식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현대사회의 모습은 질서를 세우기 위한 역사라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질서는 쓸모, 효율성과도 꽤 가까워 보입니다. 과학을 통해 근본적인 우주의 질서를 찾아내려고 하는 노력도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지요. 하지만 관심에서 시작된 분류는 조금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관심은 호기심에 뿌리를 두고 다른 것들과 연관되거나 순서보다는 개별성에 더 집중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차이가 야생의 사고와 문명의 사고를 구분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원시인의 분류 기억법은 ‘손재주꾼’ 부리콜뢰르(bricoleaur)의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방법은 신화적 사고로 쓸모가 있을지 모르는 부분을 따로 떼어 놓았다가 다른 것들과 결합시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는 변형을 거칩니다.

  저자 레비-스트로스는 브리콜라주로 새로운 기호를 만들어내는 ‘손재주꾼’의 작업을 신화적 사고의 한 지적인 형태라고 말합니다. 새로운 사고방식의 형태는 새것과 헌것을 이어 붙이고 각각이 가진 물질적 언어적 의미를 결합해 새로운  분류체계와 사회적 의례를 만들어 냅니다. 

  이런 방법으로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분류 방법은 부족들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남성으로 분류된 식물은 우기에, 여성으로 분류된 식물은 건기에 대응시키거나 생물이 언어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분류하고 다시 동물과 식물로 나뉘며 세분화 되어가는 분류체계가 나름의 규칙을 찾아갑니다. 게임과 의례의 예로 제시된 뉴기니의 가후쿠-가마족은 게임인 축구를 의례로 받아들여 동점이 될 때까지 경기를 이어갑니다. 두 팀으로 나누어진 경기는 한쪽으로 기울어진 차이를 만드는게 아니라 어떻게든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보여집니다. 먹는 자와 먹히는 자,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입장과 경쟁하게 만들고 어느 한쪽이 우위를 점하고 내어주기를 반복합니다. 이런 임의적인 사고는 ‘손재주꾼’의 부리콜라주 작업과 유사해 보입니다. 임의적인 결합은 때로는 불완전해 보이기도 하지만 또다른 시간과 공간에 의미와 결합을 창조하고 새로운 부품, 부속을 낳아 사고를 생산해 갑니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