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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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사고] 구체의 과학
구체의 과학
문명인의 사고와 대립되어 원시적이라고 간주되는 야생의 사고나 ‘추상의 과학’에 비해 일반적 개념들이 결여되어 있다는 평가과 함께 감각적이라는 ‘구체의 과학’, 비이성적이라고 여겨지는 신화적 사고나 주술적 사고는 정말 비논리적이며 비과학적인 것일까? 『야생의 사고』의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 과학적 사고나 원시적 사고 모두 인간이 무질서를 없애기 위해 우주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요구와 노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자신을 둘러싼 사물들을 철저히 관찰하고, 연관성 있는 것끼리 분류하는 작업은 또한 인간의 감각으로 수용된 것을 조직화하는 고차원적인 예술적 작업의 일환이므로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간에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학적 인식과 주술적 인식은 같은 성질의 지적 작업을 요하지만 하나는 감각적 직관에 매우 가깝고, 다른 하나는 멀다는 차이를 가지는 인간의 생존에 유리한 합리적 질서를 부여하기 위한 지식 습득의 두 가지 양식이다.
서구인들의 편견에 의하면 미개인은 경제적, 본능적 욕구에만 충실한 존재로 그들은 주술적이며, 비과학적, 비논리적이다. 미개인의 언어는 구체적인 사물에 대한 명칭은 있어도 그것을 범주로 묶는 추상명사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사고는 단순하며 사물을 객관화시키는 지적 활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야생의 사고』에서 레비–스트로스는 동실물에 관한 지식은 쓸모와 가치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선 지식이 있기 때문에 유용하거나 흥미롭다고 간주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종류의 과학은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레비–스토로스는 과학의 최우선 목적은 실용성이 아니라 지적 욕구의 충족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반박한다. 주변 동식물과 사물에 대한 철저한 관찰과 연관성 있는 것끼리 조직적으로 분류하는 구체의 과학은 경제적, 본능적 욕구에만 충실한 사고법이 아니라 인간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세계를 철저하게 이해하며 관계 맺기 위해 작은 차이점도 놓치지 않으려는 야만인들의 고차원적인 지적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