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인류학
.
[야생의 사고] 7장 종으로서의 개체 _ 분류체계의 끝에 위치한 고유명사
분류체계의 끝의 위치한 고유명사
페낭족의 인명체계 – 개인명, 친명(親名), 상명(喪名)
개인명(직계존속 중 누가 죽을 때까지) -> 상명(보통 결혼해서 자신의 아이를 가질 때까지 6,7 이상의 상명을 통과) -> 친명(~의 아버지, 어머니) -> 아이가 죽으면 부모는 상명 ‘상장사’/형제자매는 상명 ‘상형(喪兄) ~의 동생’ -> 다음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친명, 태어난 아이의 형제자매는 개인명
조상에 대해서는 상명->상명 / 형제에 대해서는 본명->상명 / 자식에 대해서는 친명->상명
본명은 ‘자기’를 다른 ‘자기’와의 대비로서 규정한다.
친명은 ‘다른 자기와의 관계’를 표현한다.
상명은 친족관계만이 서술 대상이 된다.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타인’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자기에 대한 관계, 즉 타자관계. 관계의 소멸을 언명하기 위한 부정적인 관계
본명과 상명은 동일 군, 역대칭의 관계. 변환을 가함으로써 한 쪽이 다른 한 쪽으로 이행
친명과 상명은 형태적 대칭관계가 없다. ‘죽은 자의 이름은 입에 올리지 않는다’는 원칙
고유명은 이 복잡한 체계에서 다른 명칭들과 함께 일군을 형성한다. 클래스 표식항으로 생각. 붙인다(x), 받는다(x), 상명에 ‘들어간다’
고유명은 이 복합적 체계에서 종속적 위치를 점유한다. 고유명을 공공연히 쓰는 자들은 아이들뿐으로 매우 낮은 논리적 평가를 받는다. 클래스에의 후보로서 ‘클래스를 부여받지 못한’ 인간의 표시 또는 장래 클래스를 부여받을 인간이 일시적인 의무로서 스스로를 클래스 밖의 인간으로 규정, 또는 클래스 이외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서 스스로를 규정하는 입장의 표시.
고유명은 상명의 이면이며 친명은 그 반대의 상(像)이 된다. 누군가 죽어서 사회조직의 틈이 생기면 그 틈으로 그 인간은 들어올(상명) 수 있다. 상명으로 체계 속의 위치를 획득.
죽은 자의 이름에 대한 금기
죽은 자의 이름을 기피하는 것은 관습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어떤 명명체계의 한 구조적 특성으로 출현한 것이다. 죽은 자는 이름을 잃음으로써 체계 밖에 있던 사람을 체계 안으로 들여놓는다.
체계가 위치의 클래스로 구성되는 경우 – 죽은 자의 이름은 새로운 구성원에 의해 그 고유명이 살아남는다. 여기에서 클래스는 수가 찼느냐 비었느냐의 정태적인 위치의 일람표에 기초.
체계가 관계들의 클래스로 이루어지는 경우 – 고유명이 소멸한다. 여기에서는 들어오고 나가고를 통합하는 여러 유형의 동적 관계에 의해서 클래스가 형성된다.
이 둘의 중간적 위치로 관계와 위치가 같은 기반 위에 놓여 있는 경우 – 티위족의 호칭체계. 죽은 자와 관계된 모든 고유명이 소멸하고, 새로운 관계가 생기면 재명명이 시작된다. 이는 고유명이 항상 일반화되어 있든가 일반화시키는 기능을 갖는 항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 점에서 고유명은 근본적으로는 종의 이름과 다름이 없다. 고유명은 클래스 표식항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 경우, 그것이 하나의 의미 체계에 속해 있을 때 종명에 가깝게 보인다.
서구사회의 동물 명명법
조류 – 은유 인류
여러 면에서 인간과 먼 위치에 있고 독립된 사회를 형성하기에 인간 사회와 유사한 사회로 생각(관여적pertinent)된다. 새의 세계를 인간 사회의 은유, 평행으로 생각. 이 은유적 관계에는 환유적 성질의 명명법이 수반된다. 실제의 개인명. 계열집합의 환유적 추출 명명
새에게 부여된 이름 : 사람의 이름 = 부분 : 전체
개 – 환유 인류
조류과 역대칭적이다. 독립된 사회를 형성하면서 인간 사회에 참여(관여적pertinent)하지만 그 지위는 매우 낮다. 개에게 부여된 이름은 연극에 나오는 이름으로 한 계열을 형성하고 있다(랑그langue-사회제도로서의 언어–에 속한다). 모방한 개인명. 계열집합의 은유적 재생 명명.
=> 종 사이의 관계가 사회적으로 은유적인 것으로 생각되면 각각 종에 적용되는 명명법의 체계는 환유적 성격을 가지고(새), 종 사이의 관계가 환유적이라고 보여질 경우에 명명법 체계는 은유적 성격을 취한다(개).
소 – 환유 비인류
소는 인간의 기술경제 체계의 부분을 이루고 있다(비사회적)는 점에서 소의 사회적 위치는 환유적이다. 소에게 부여되는 이름은 생김새나 기질을 나타내는 기술적 명칭으로 은유적 성격을 가진다. 소의 이름은 통합연쇄적 수식형용사다(파롤parole-개인이 랑그에 입각해서 사용하는 언어–적 성질이 강하다). 유사성을 결여하기에 인접적. 묘사 용어이므로 고유명이라고는 거의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소의 이름은 담론적으로 어느 때나 형용사로 사용될 수 있다. 통합연쇄의 환유적 추출 명명.
말(경주마) – 은유 비인류
소와 역대칭적이다. 경주마의 이름은 엄밀히 개별화되어 있다. 통합연쇄에서 빌린 형성법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소의 이름과 같으나, 묘사적 함축성이 없다는 점에서 소의 이름과 다르다. 임의성이 가장 높다. 비사회적(내재적 사회성 결여)이다. 인접성을 결여하기에 유사적. 경주마의 이름은 담론적이지만 고유명사로 변환되어 사용되며 담론 중에 사용되지 않는다. 통합연쇄의 은유적 재생 명명.
티위족 호칭체계
엄청난 고유명사. 개인은 분명히 구별되는 여러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재혼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매번 새로운 이름이 부여된다. 누군가 죽으면 망자와 관계된(망자가 가지거나 붙여준) 이름은 모두 금기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낼 수 있는 몇 개의 수단이 있다.
음성상의 유사가 나타날 때 고유명사에 대한 금기를 보통명사로 확장할 수가 있다. 보통명사는 일상생활에 통용되지는 않아도 완전히 파괴되지도 않아서, 주로 의례에만 사용되는 신성언어로 변하면서 차츰 그 의미를 잃게 된다. 신성언어는 입사자에만 이해되거나 입사자에게도 부분적으로는 그 의미 기능을 상실한다. 의미가 없어진 신성언어의 단어는 접미어를 붙임으로써 고유명사 형성에 보탬이 된다. 신성언어는 금기의 오염에 면역이 되어 있으므로, 금기가 된 일상언어의 단어로 되어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순화작용 – 고유명사는 보통명사를 오염시킨다. 오염된 보통명사는 일상언어에서 추방되어 신성언어로 자리를 바꾼다. 그 신성언어는 대신 고유명사의 형성을 가능하게 한다.
이 순화작용은 이중의 동력으로 유지된다. 의미를 갖지 않았던 고유명사가 보통명사에 붙어서 의미를 갖게 되고, 보통명사는 신성언어로 바뀔 때에 의미를 잃어버리고 그로 인해 다시 고유명사가 될 수 있다.
의미부가의 펌프질 : 보통명사 -> 고유명사, 일상언어 -> 신성언어
소모되는 에너지의 원천은 일상언어. 일상언어는 예사 단어가 없어짐에 따라 의사소통의 필요에 의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낸다.
티위족도 체계는 통합연쇄(일상언어)와 계열집합(단어가 의미르 잃어감에 따라 점점 통합연쇄를 이루기에 부적합해지므로 신성언어는 본질적으로 이런 성격을 갖는다)과의 사이에서, 고유명사를 수단으로 한 일종의 중재에 의존하게 된다.
고유명사는 +의 음성상의 유사성에 의해 보통명사와 은유적으로 결부.
신성언어는 –의 유사성(의미내용의 결여 혹은 빈곤에 기초)에 의해 고유명사와 환유적으로 결합.
티위족의 체계는 세속언어와 신성언어 사이의, 고유명사를 매개로 하는 단어의 교환이다.
고유명사를 일상언어화시키고(은유의 가치) 그 대신 그 분야에 속하는 보통명사를 고유명사로 변화(환유의 가치)시킨다. 예로서 꽃의 이름을 여성에게 붙이고, 신품종의 꽃에 사람의 이름을 빌려 고유명을 붙인다. 이때 꽃에게 돌려주는 이름은 ‘성스러운’ 언어에 속한다. 성스러운 이름의 한 유형은 환유시키는 것이며 또 한 유형은 환유되는 것이 된다.
환유적 관계와 은유적 관계 사이의 등가성이 여러 관습에서 똑같이 인정된다. 이러한 등가적 명명법은 일반성의 여러 수준에서 상호변환의 관계로 이어진다.
각각의 사회는 저마다 유한하며 불변하는 분류체계를 통해 연속적인 세계의 흐름에 견고하고 비연속적인 격자틀을 적용시켜 구조를 만드는 것뿐이다.
고유명은 종의 이름과 다름이 없다. 사회 구조와 범주 체계는 상호 간에 힘든 조정을 거쳐 인간과 세계 사이의 관계의 역사적이고 지역적인 어떤 양식을 표시한다. 고유명사는 어느 사회에서나 그 양식 분류체계의 끝, 더 이상 분류할 수 없는 최종 수준에 위치한다. 고유명사의 명명법이나 위치가 사회마다 다른 이유는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