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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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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평양의 항해자들] (1) 단순한 교환의 정열

작성자
조재영
작성일
2024-11-04 16:03
조회
54

쿨라(kula), 단순한 교환의 정열

 

필요를 갖지 않는 장식품

쿨라(kula)란 부족 간에 광범위하게 행해지는 교환의 한 형식이라고 저자 브로니스라브 말리노브스키는 정의한다. 그런데 이 쿨라가 경제제도인 동시에 주술의례와 공적인 의식을 동반한다. 이는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쉽게 상상하는 단순히 재화를 교환하는 차원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교환하는가?

그런데 이 교환의 목적이 실용성이 없는 물건을 교환하는 것이라고 한다. 일상 장식으로 사용되지 않는 두 개 의 순수 장식용 물건을 끝없이 되풀이해서 교환하는 것이다. 심지어 필요에 의해 행하지도 않는 이 교환 행위에 부족들을 엄청난 정열을 보인다. 특히 두 개의 교환 장식품, 팔찌 므와리(mwali)와 목걸이 소우라바(soulava)는 일상 장식품과 분명히 구분된다. 그리고 그 장식품은 장식하기 위해 소유하는 것도 아니다, ‘장식조차도 목적이나 필요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크기가 매우 작고 착용하기에도 불편하다. 그런데 도대체 모든 불필요와 불편을 감수하고서 왜 이토록 이 두 개의 장식품에 정열을 보이는가?

팔찌와 목걸이 교환은 매우 엄격한 제환과 규칙 아래서 행해지는데, 재미난 것은 쿨라에 참가하는 남자는 정해진 몇 사람하고만 교환하며 이 상대들하고의 관계가 평생에 걸쳐 지속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공동체 내 지위의 차이가 드러난다. 어떤 평민 남성은 교환 상대가 단지 몇 명에 지나지 않는 반면 추장이나 지위가 높은 노인의 경우 많으면 몇 백 명까지, 교환 상대가 있는 것이다. 쿨라의 목적은 결국 타자들, 또 그들하고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장식품이 만드는 관계망

(1) 상대에 대한 의무와 봉사

그런데 이 관계라는 게 예나 지금이나 만만치 않다. 쿨라는 서로에게 많은 의무를 지우고 선물과 봉사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며 수확물이 있을 때면 더 좋은 것을 골라 상대에게 제공해야한다. 이 많은 수고를 기꺼이 하는 것, 그리고 지위가 높다는 것은 이 같은 수고를 해야 하는 관계가 많다는 것이다.

 

(2) 관계망과 이야기

또 이 두 개의 장식품은 역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두 개를 같은 사람이 받는 일이 없고, 멈추어서는 안 되기에 장식품이 누군가에게 들어왔다 하더라도 그 누군가는 그것을 영구히 소유할 수 없다. 1-2년 보관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이 일시적 소유는 그가 그 물건을 과시하고, 그것의 입수경위를 이야기하고, 그 이후에 누구에게 줄 작정인가를 말하는 기회를 준다. 그리고 그 기회를 통해 그 누군가는 명성을 얻는다. 물건이 어떤 사람으로부터 들어왔고, 또 내가 그 물건을 어떤 사람에게 줄 것인지, 관계의 흐름을 보여준다. 그 흐름을 이야기할 ()’을 만들어 준다. 그런데 그 관계와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그 사람의 명성을 얻게 한다. 부족민에게 명성과 영광은 그들이 어떤 관계에 얼마만큼 엮어 들어가 있는지에 달린 듯하다.

 

(3) 쿨라(kula)로 자신의 위치 갖기

그런데 이 같은 관계가 결국 자신만의 독특한 위치를 갖도록 한다. 저자 브로니스라브는 쿨라가 유럽인의 보물보다 트로피 혹은 우승컵과 더 유사하다고 말한다. 유럽인의 보물은 영구적으로 소유하고, 세습적 권위나 신분과 결부되지만 트로피는 승자가 당분간 일시적으로 보유할 뿐이며 그 자체로 쓸모 있는 물건은 아니지만 그것을 소유한다는 것, 그 자격을 가진다는 것으로 독특한 기쁨을 얻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트로피를 얻었다는 것의 가치는 그것을 일시적으로 소유한 개인의 차원에서만 머물지 않고, 그 토로피를 얻은 개인이 속한 공동체 전체의 명예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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