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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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끝의 버섯] 1부 남은 것은 무엇인가?
‘오염’으로 생존하기
진보, 자본주의, 근대화의 폐허 위에서 우리는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까? 『세계 끝의 버섯』의 저자 애나 칭은 우리가 근대에 길들여져 문제라고 여겼던 또는 사소한 것이라고 여기며 중심 밖에 두었던 가치들을 ‘송이버섯’과 함께 주목한다.
다종의 시간과 알아차림
애나 칭은 자본주의 폐허 위에 서서 우리가 변방에 두고 외면했던 ‘불확정성’과 ‘불안전성’이 오히려 우리 삶의 중심을 이루는 것이라면 어떨까?라고 묻는다. 근대에서 인간은 ‘진보’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여기며, 진보라는 목적을 위해 서로 다른 종류의 시간을 하나의 리듬에 맞춰 일괄적으로 재단한다. 근대 인간들은 이 재단된 시간 안에서, 예측 가능한 조건들에 둘러 싸여 미래를 확정하고, 안정을 느낀다.
반면 불안정성은 타자들에게 취약한 상태이다. 어떤 결과도 보장되지 않으며, 어떤 것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이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지금까지 알던 것, 현재의 조건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고 그 상황에 맞게 나를 다시 형성해 내야만 한다. 자본주의 관점을 걷어내고 다시 들여다보면 세계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저마다의 시간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 다른 그 시간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전체 풍경을 빚어내는 중이다. 이 복수의 시간들에 의해 세계는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이 사실이 와 닿지 않는 것 순전히 우리 대부분이 진보와 근대화의 틀 속에서, 그것만을 꿈꾸도록 길러진 탓이다.
애나 칭은 근대의 ‘진보’ 대신 ‘배치’라는 개념을 이야기 한다. 배치는 열린 모임gathering이다. 그런데 이 배치는 그저 여러 부분 요소들을 모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각 존재들 삶의 방식을 모아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낸다. 단순 합보다 더 큰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불확실한 존재, 조건, 타자들 각각의 방식들이 모일 때 이를 조율하는 패턴이 발달하게 된다. 애나 칭은 이 조율 과정에서의 ‘알아차림’의 능력을 강조한다. 알아차린다는 것은 이 다양한 삶의 방식들, 복수의 시간들이 갖는 리듬과 궤적의 상호작용을 지켜본다는 것이다.
모임은 어떻게 ‘사건’이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타자들, 다종의 시간들이 모여 단순 합에서 그치지 않고 어떻게 보다 더 큰 ‘사건’이 되는가? 애나 칭은 여기에 대한 답으로 ‘오염’ 개념을 말한다. 앞서 우리는 세계라는 불확정성과 불안정성 속에서 나를 재구성함으로써 생존한다는 것을 알았다. 애나 칭이 정의하는 생존이란 우리에게 익숙한 ‘적자생존’이 아니다. 저자는 생존을 위한 필수 능력으로 ‘협력’을 말한다. 협력이란 차이를 수용하며 일한다는 의미이고, 이것이 곧 ‘오염’ 개념과 연결된다. 협력해야만 살 수 있다. 협력하지 않으면 죽는다.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수용해 가며 함께 변화한다. 협력은 차이를 가로 지르는 작업이지만 진보, 진화의 과정에서 말하는 순수한 다양성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마주침을 통해 다른 것들과 오염되고, 마주치고 오염되어 서로를 변형시키면서 다양성을 창조해 낸다. 그렇게 오염된 다양성은 항상 변화하면서 관계를 맺으며 존재한다. 여기에 개별자, 주체가 자립해서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선생님. 작업 최선을 다해 진행해주세요! 선생님의 글을 우리 모두 열심히 읽고 공부할께요.
스승님! 감동의 말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