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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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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끝의 버섯(2)] 3부 교란에서 시작되다 : 의도치 않은 디자인

작성자
기헌
작성일
2024-12-09 16:42
조회
74

3부 교란에서 시작되다 : 의도치 않은 디자인

 

숲의 삶 : 교란

애나 칭은 우리가 풍경에 대해 이야기할 때 진보에 대한 기대나 인간중심적인 생각 방식 때문에 비인간의 존재를 놓치고 있음을 말한다. 협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생존에는 서로 다른 생물종이 이루는 조율이 필요함을 우리가 잊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풍경은 장면(scene)과 관람자(viewer) 사이에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는 의미와 차이가 있다. 이 책에서 풍경은 패치의 배치를 위한, 즉 인간 참여자와 비인간 참여자를 모두 포함하는 모임을 위한 장소이다. 배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치가 존재하는 개별 방식을 주시하고 동시에 산발적이지만 그 결과로 발생하는 조율을 통해 그 선율들이 어떻게 합쳐지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풍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풍경에서 살아가는 인간 및 비인간 거주자를 알아야 한다.

애나 칭은 풍경을 바라보는 분석 도구로 교란을 제시한다. 교란은 손상되는 것이나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고, 항상 인간에 의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시작으로, 항상 도중에 일어나고, 이전에는 조화로운 상태였다는 전제도 없다. 교란은 다른 교란을 뒤따른다. 모든 풍경은 교란되어 있고,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교란은 풍경의 핵심 렌즈인 이질성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다양한 국면에 따라 각각의 모양이 형성된 패치들을 창출하여 의도치 않은 디자인을 만든다. 삶의 방식이 어떻게 조율하며 펼쳐지느냐에 따라 하나로 모인 패치들에 기반한 배치가 형성되는 것이다.

 

인간, 식물, 곰팡이에 의한 역사 만들기 : 불규칙성

애나 칭은 우리가 근대 산림을 관리 하느라 나무가 역사의 행위자라는 것을 잊어버린다고 말한다. 그는 수많은 시대와 장소를 가로지르면서 다른 존재의 궤적을 변형시키고 자신의 존재로 그 현장을 바꾼 소나무의 능력, 즉 역사를 만드는 능력을 알려준다. 식물과 동물의 성장과 죽음이 되풀이되면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유기질 토양이 쌓인다. 죽은 유기체는 썩고 유기질 토양이 되어 새로운 생명을 위한 토대가 된다. 유기질 토양이 없는 곳에서는 그러한 생사의 순환이 어떤 우연한 활동으로 인해 깨진다. 송이버섯과 소나무는 교란된 풍경을 차지하면서 함께 역사를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역사 만들기가 인간이 행하는 것을 넘어서 확장되는지 우리에게 보여준다. 동시에 인간은 숲을 엄청나게 교란한다. 송이버섯과 소나무와 인간은 함께 그러한 풍경의 궤적을 만들어낸다.

핀란드 사람들은 숲의 다양성에 가치를 두었다. 20세기 초반 농부들은 경작하기 위해 화전 방식을 이용해 숲을 재로 변환시켰다. 화전은 목초지 및 나무의 나이가 제각각인 활엽수 잡목림이 생기게 했고, 숲이 이질성을 지니도록 자극했다. 북부 핀란드에서 송이버섯이 자라는 데 있어서 벼락 경기와 불경기가 나타나는 습성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여러 해 동안 땅은 송이버섯으로 뒤덮이는데, 이후 수년간 송이버섯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 연구자들은 스웨덴 북부에서 산불 없이도 소나무 숲이 파도 같은그리고 가끔 발생하는방식으로 재생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애나 칭은 산림관리인들은 영원히 순환하는 주기에 따라 규칙적으로 숲을 작동시키고자 관리한다는 점을 주목한다. 인간과 자연은 시간의 규모가 다르다. 불규칙적인 씨앗·버섯 맺기는 해마다 생기는 환경의 차이와, 곰팡이와 나무가 수년간 이루어온 조율에 반응하면서 주기적이지 않은 리듬을 빚어낸다. 애나 칭은 수년간 많은 송이버섯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두고 선물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숲이 만드는 역사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불규칙성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패치들은 고르지 않은 숲 풍경을 만들면서 서로 다른 궤적을 발전시킨다.


부활 : 교란에 대응하는 숲

일본의 소나무는 소농민 교란이 만든 생물이다. 전근대 일본의 소농민은 식물과 숲 표면의 퇴적물을 모아 식물성 비료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그로 인해 소나무가 좋아하는 무기질 토양이 되었다. ‘코피싱coppicing(그루터기에서 싹이 다시 자랄 것을 기대하면서 나무를 베어 넘어뜨리는 행위)’된 참나무는 교란된 숲의 기둥 역할을 했다. 사람들은 참나무 목재로 땔나무부터 표고버섯 재배까지 다양하게 활용했다. 참나무는 다른 종의 나무보다 더 빨리 성장해 숲을 장악하게 되었다. 산등성이의 개방된 목초지와 벌거벗은 언덕에는 소나무가 송이버섯 파트너와 함께 자랐다. 19세기 중반 일본의 산업화는 소농민 숲에 압력을 가해 대규모의 산림 벌채를 이끌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면서 흙이 드러난 산비탈에 소나무가 다시 자라게 되었다. 하지만 전쟁으로 나무는 군비 증강을 위한 연료와 건축 자재로 쓰이기 위해 베였다. 이후 벌거벗은 풍경에서 소나무가 자라났다. 소농민의 숲은 사람들에게 향수를 느끼며 복원해야 하는 장소로 인식되었다.

중국 윈난성 중부 소농민의 숲은 중국이 급속한 산업화를 이루기 위해 국가 자원을 최대한 동원했던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의 대약진운동 기간 동안 벌채되었다. 10년간 중앙정부는 외환을 늘리기 위해 숲에서 목재를 잘라냈고, 40-50년이 지나고 나서 소나무가 헐벗었던 그 공간을 차지했다. 참나무 그루터기에서 싹이 나 나무가 되었고 송이버섯이 자랐다. 20세기 초반 일본의 소농민 숲은 오늘날 윈난성 중부의 숲과 닮았다. 역사학자들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 이룩한 근대화와 중국의 대약진운동의 실패를 구분하지만 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이 둘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람과 나무는 되돌릴 수 없는 교란의 역사에 갇혀 있다. 몇몇 종류의 교란이 일어난 후에는 많은 생명을 양육하는 유형의 재성장이 뒤따랐다. 소농민 참나무소나무 숲은 안정성과 공동 서식의 소용돌이였다. 숲은 국가 주도의 산업화로 벌채와 같은 대재앙에 의해 작동되었다. 맞물리는 작은 소용돌이는 교란이라는 큰 강의 내부에 존재한다.

 

폐허

숲은 지역의 생계 활동과 국가의 관리 정책뿐 아니라 부의 집중을 꾀하는 초국적 기회에 의해서도 형성된다. 오리건주와 일본의 숲은 교차하는 역사정 과정 때문에 폐허가 되었다. 그것은 국가의 집중 관리로 문제는 나무 공급에서 더욱 값싼 목재가 등장하였을 때 발생했다. 하지만 일본의 폐허가 된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송이버섯은 자라지 않게 되었지만, 플랜테이션 숲이 붕괴한 덕분에 자랐다. 애나 칭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대규모의 상호 연결된, 막을 수 없어 보이는 숲의 황폐화에 관심을 갖는다. 지리적으로 생물학적으로 문화적으로 독특한 숲조차도 여전히 파괴의 사슬에 연결되어 있다. 자본주의자가 그 숲을 원하거나 내팽개치거나 흉물스럽고 불가능하게 된 상태의 폐허에서 살아가야 하는 도전을 받게 된다. 사라지는 숲, 개체수 과밀과 해충으로 홍역을 치르는 숲, 플랜테이션 농장으로의 전환이 경제적이지 않다는 점이 입증될 때 그냥 자라도록 남겨진 숲 간의 차이는 중요하다.


번역으로서의 과학

번역은 과학에서 모순과 양립 불가능의 패치들을 낳는다. 연구와 검토, 읽기가 별도로 이루어지는 한, 이러한 패치들은 훈련과 의사소통의 형식이 교차함에도 지속될 수 있다. 이 패치들은 폐쇄적이지도 않고 고립되어 있지도 않다. 그것들은 새로운 물질을 받아들이며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것들의 독특함은 사전 논리가 아니라 수렴의 결과다.

인간의 교란에 대해 각국은 다른 반응을 한다. 일본 과학자들은 인간의 교란이 거의 없을 때 송이버섯 숲은 위험에 처한다고 주장한다. 버려진 마을 숲은 소나무에 그늘을 드리우고, 송이버섯을 잃게 된다. 반면 미국의 과학자들은 숲은 인간의 교란이 너무 많이 일어날 때 위험에 처한다고 주장한다. 일본과 미국의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에 대해 거의 소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각각의 연구 결과를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가능성은 차단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지식과 연구 활동의 분리된 패치들이 형성된다.

송이버섯 과학은 20세기 초에 일본에서 시작됐다. 송이버섯 과학의 일인자는 교토대학의 아마다 미노루였다. 그의 연구에 영향을 받은 어떤 연구자들은 송이버섯이 맺는 다른 생물종과의 관계성뿐 아니라 무생물 환경과의 관계성까지 강조하게 되었다. 연구자들은 송이버섯 환경에 존재하는 식물, 비탈, , , 박테리아, 다른 곰팡이를 조사했다. 송이버섯은 절대 자급자족적인 존재가 아니라 언제나 관계 속에 있고, 그래서 특정 장소에 존재한다. 연구자들은 송이버섯이 잘 자라도록 하려면 장소에, 그리고 소나무를 이롭게 하는 인간의 교란 체제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조언한다.

 

날아다니는 포자

포자는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고, 유형을 교차해 교배하며, 최소한 가끔씩 새로운 유기체를 낳는다. 새로운 종류의 시작이다. 움직이는 것은 생태계다. 곰팡이가 이동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매우 많은 다른 생물종을 의도하지 않고 이동시킨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항상 새로운 생태계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물을 바꾸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시로의 후손임에도 포자는 시로에 새로운 유전적 물질을 더한다. 같은 시로에서 발생했다고 해도 서로 다른 버섯들은 서로 다른 게놈을 가질 수 있다. 같은 버섯에서 생겨났더라도 서로 다른 포자는 서로 다른 게놈을 가질 수 있다. 곰팡이의 유전적 장치는 개방적이어서 새로운 물질을 더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내부적 손상을 치유하는 능력을 가진다. 하나의 몸체에서 진화가 일어난다. 과학자들은 진화와 송이버섯의 전파를 포함하는 열린 질문에 대해 포자와 같은 방식으로 탐구한다. 차이를 만드는 몇 안 되는 생각이 그 분야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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