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인류학
.
[마음인류학 에세이] 이해하다(수정)
마음인류학 에세이 / 2024.12.14./손유나
이해하다
사람은 자신과 다른 이념, 문화,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한다는 행위는 사물의 본질과 내용을 파악, 분별 해석하는 고도의 두뇌활동이다. 고로 이성, 논리, 합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나와 다른 것을 맞닥뜨리고 이해하려고 할 때, 내가 마주한 것은 차가운 이성의 활성화가 아니라 당혹, 놀람, 분노, 혐오과 같이 온몸을 뒤트는 듯한 감정이었다.
수렵·채집 경제를 바탕으로 소위 원시적으로 살아가는 문화를 먼 거리에서 조망할 때는 온화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대칭적이고 평등한 사회, 자연을 마구잡이로 파괴하는 문명사회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원시문화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의 임신은 특정 햇빛을 쬐어서 라고 믿는다는 얘기를 들어도 나는 평온했다. 그래서 내가 원시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있다고 착각했다. 나는 아직도 나와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했으나 어떻게든 이해해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 글을 쓴다.
이해하려 하자 드러나는 본심
레비 스트로스는 『야생의 사고』에서 원시 문화의 신화와 주술이 본질적으로 근대 과학과 다르지 않음을 피력한다. 한 일례로 시베리아 벌판에서 순록 유목으로 살아가는 야쿠트족은 치통이 있을 때마다 딱따구리 부리와 접촉하는데, 이 또한 자연의 질서를 파악하고자 하는 과학이라고 말한다.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인류학의 대가가 한 말이니 이해해보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의 가식이 벗겨지고 본심이 드러났다.
내가 야생의 사고에 평온했던 이유는 원시 문화권 사람을 다른 종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동물의 행동에 가치평가를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주술을 믿는 사람들이 동일한 과학적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에는 쉽사리 수긍이 가지 않았다. 동일한 사고 체계라면 원시인들이 사물의 원리와 작동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고, 의료행위는 아무리 봐도 ‘덜 발달했다.’
주술은 어디에나 있다
주술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안핟. 주술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은 불확실한 세상을 헤쳐나가며 불안해한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의 이치를 파악하고, 질서에 개입하여 인간의 의도에 맞는 결과를 이끌어 내고자 했다.
행운의 네잎클로버, 불길한 숫자 13, 걱정을 대신 품어주는 걱정인형, 사주, 타로점, 신점과 굿, 긍정의 힘을 믿는 태도, 원하는 일이 이루어주십사 기도, 수능 시험을 치루는 자녀를 위해 108배 절. 모든 행위들이 주술이다.
단지 문명권 내의 사람들은 이성과 합리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주술적 측면을 미신, 위로, 가벼운 심리술로 생각하거나 혹은 인식의 표면에 떠올리지조차 않는다.
다만 우리는 주술이 사적인 영역에서는 공감하고 이해받을 수 있으나 공적인 영역에서 드러나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하지만 서태평양의 사람들, 야생의 사고를 가진 사람들에게 주술은 사회를 지탱하는 축이자 공동체의 본질이다. 주술은 절대적이며, 공동체의 질서이고, 때로는 목숨을 걸기도 해야 하는 책무가 따라온다.
주술이 어떻게 과학일까
주술이 과학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려면 과학의 정의부터 정확히 알아야 한다. 레비 스트로스는 『야생의 사고』에서 ‘과학’의 목적은 실용성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으로 야생의 사고와 과학 둘 다 질서를 찾아 구조화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주술은 과학보다 포괄하는 범위가 더 크다. 인간, 동물, 사물, 태양과 달, 돌, 바람 등 지구상의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어 함께 인과의 고리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햇빛을 쬐어 임신한다는 차원을 뛰어넘는 인과가 성립한다. 반면 과학은 물리학에 바탕을 두고 지엽적으로 인과를 파악한다.
과학은 여러 개의 차원을 구분하고, 그중 일부에만 결정론적 형식을 부여하는 반면, 주술은 총체적이고 포괄적인 결정론을 전제하기 때문에 비합리적으로 느껴진다. 현대 과학은 개념을 출발점으로 삼아 사건을 파악하고 자연을 여러 개의 차원을 구분하여 일부에만 결정론적 인과를 부여한다. 반면 야생의 과학은 야생의 과학은 감각적 직관을 이용하고 경험을 통해 구조를 도출한다. 그래서 야생의 사고로는 담배 기를 구운 고기와 구운 빵 질을 한 묶음으로 혹은 치즈, 맥주, 꿀을 한 묶음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전자는 질소로, 후자는 디아세틸을 기준으로 분류한 것인데 둘 다 인간의 감각으로 파악이 가능하다.
예술 영역에서 창의적으로 다른 것을 연결시키는 창의적이라고 말하는.
주술은 과학은 포함한다
개연성과 논리성
방사능에 노출되자 피부 노화가 멈췄다는 이야기에 방사능을 노화를 막는 물질로 파악해서 라듐 화장품, 라듐 초콜릿이 인기를 끌다가 1930년대에 들어서야 위험성이 알려지고 금지되었다.
근대 과학과 주술을 모두 개연성을 바탕으로 질서를 파악한다.
레비 스트로스는 과학이 주술에 포함되는 주술이 더 큰 범위로 본다. 근대 과학은 A로 인해 B가 발생한다라는 논리를 세우면 다양한 실험을 하고, 다른 결과가 나온다면 그 이론을 폐기한다.
주술에서는 그런 폐기는 일어나지 않는다. 검증이 가능하지 않은 영역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서태평양 사람들은 ‘하늘을 나는 카누’가 불가능한 이유는 주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며 정확한 주문만 복원해낼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주술의 효력이 약하다면 주문을 제대로 읊지 못한 것이다.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대로 야생의 사고와 현대 과학은 구조화를 시도하는 와중에 올바른 배열과 (어쩌면 우연히) 부딪히게 되는데, 이 가능성이 과학이 조금 더 높을 뿐이다.
목적과 실효성
내가 야생의 사고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던 이유는 올바른 인과를 정립해야 한다는 생각을 떨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올바른 배열이 다른 구조와 구분되는 점은 치통 해결과 같은 실용적인 효과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외의 올바른 배열을 파악한 것과 올바르지 않은 배열을 받아들인 것에 서로 구분되는 점은 무엇일까? 어차피 인간은 신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고 언제나 오류를 오가고 있는데 말이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는 이야기는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천재지변과 관련해서는 지금도 인간은 하늘에 비는 것 외에는 하는 것 없기 때문이다. 원시인들이 의례를 통해 하늘의 질서에 개입하려고 하는 행위가 뭐 놀랄 것이 있겠는가.
하지만 치통은 개인이 몸으로 직접 겪어내야 하는 고통이고, 치아는 자연치유가 되지 않기 때문에 완전히 신경이 죽기 전까지는 겪어내야 하는 고통이다. 시간이 지난다고 치유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토록 오랫동안 믿음을 유지하고
과학이 주술보다 나은가
미국 필라델피아를 좀비의 거리로 만들어 버린 마약. 마약 중독은 마약성 진통제에서 시작했다는. 미드 돕슨에서 마약성 진통제의 위험을 추적하는 검사는 암으로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진통제를 투여하려는데 오피오이드 진통제를 거부하고 다른 진통제를 택했다.
과학이 준 즉효를 발휘하는 건 참 달콤하다. 더운 여름날에 냉기를 느낄 수 있고, 사실 공기의 입자에 관여하여 인공 강우를 내릴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하지만 기후변화, 생태계의 교란으로 엄청난 후폭풍. 기후변화가 우리의 미래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높은 확률로 파국을 맞이할 기술과 효과는 덜 하지만 오래 지속 가능한 기술 중에서 선택하라 한다면 사람들은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일까? 사람마다 답은 다르겠지만 효과 좋은 근대 과학만이 전부인 것은 아니라는 건 알겠다.
이해는 소화행위
이해한다는 고통스러운 소화행위이다. 치아가 아픈데 왜 딱따구리 부리를 쥐어! 아픈데 왜 치통에 전혀 실효성 없는 방식을 얼른 폐기처분하지 않는거야! 도저히 이해가 안가네, 라고 하며 화를 많이 냈다. 말리노프스키가 서태평야 … 섬에서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이 문화를 몸으로 겪고 글을 썼지만, 그가 썼던 일기에 낯선 문화에 대한 적개심, 분노로 가득차 있었다고 한다. 일각에선 이중적인 모습이라고 비난이 일었다지만 말리노프스키가 이해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지 여실히 알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