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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 인류학


[블루 머신] 보이지 않는 바다와 무의식

작성자
유나
작성일
2025-02-10 13:31
조회
64

해양인류학 / 블루머신(2) / 2025.2.10 / 손유나

보이지 않는 바다와 무의식

 

무의식의 바다라는 말이 있다. 미지의 영역인 무의식을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심해에 빗댄 표현이다. 블루 머신의 3장인 바다의 해부학을 읽으며 나는 해수면 밑에서 발생하는 바다의 작용이 신비로운 동시에 인간의 무의식과 닮았다고 느꼈다.

사람이 힘든 일을 겪을 때, 감당하기 어려운 기억과 감정은 위장과 억압을 통해 무의식으로 가라앉는다. 이 무의식을 탐구하는 방법은 꿈과 자유연상이다. 기억은 묻혀있을 뿐 사라지지 않는다. 자유연상을 통해 무의식에 묻어둔 기억과 감정을 떠올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심해에서 해류가 어떤 경로로 이동하는지 해류 자체로는 파악하기 어렵다. 이때 도움이 된 것은 바다에 녹아 있는 CFC라는 인위적인 물질이다. 이 물질은 불활성으로 다른 물질과 반응하여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물에 녹아 농도가 옅어질 뿐이다. 한때 냉장고의 냉매제를 비롯해 소화제, 면도 크림, 산업용 용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쓰였으나, 자외선을 막는 오존층에 구멍을 내어 환경에 커다란 해악을 끼친다는 사실이 밝혀져 사용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상당수의 CFC는 바닷물에 녹아 있고, CFC의 이동을 따라 심해 바닷물이 수평으로 이동하는 경로를 추적할 수 있었다.

해수면 밑에서 발생하는 더욱 흥미로운 현상은 내부파이다. 바닷물은 서로 밀도가 다르고 쉽사리 섞이지 않아 층층이 수괴를 이루고 있다. 물의 수평 이동은 자유로우나 수직 이동은 다른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내부파는 밀도가 다른 2개의 해수층이 접하는 내부 경계면에서 밀도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파동을 말한다. 이 내부파는 해수층 사이의 수직 이동을 가능하게 하고 심해에 가라앉은 영양분을 위로 올려보낸다.

내부파가 발생하면 배는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기 어렵다. 뱃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죽은 물현상이라고 불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래에서 발생하는 파도가 배를 붙잡는다. 하지만 사람이 확인할 수 있는 현상은 대기로 인해 표현에서 발생하는 파도뿐이니 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의식적으로 생각한 방향과 전혀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이 무의식이다. 소망하던 순간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그 상황을 실수로어그러뜨린다. 이 실수가 무의식 작용의 결과이다. 보이지 않는 심층에서 발생한 내부파가 배의 진로를 방해하듯이 무의식에서 작동하는 무언가가 나의 진로에 개입해 들어온다.

과학적이고 정밀한 블루 머신에 너무 감상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인간의 몸은 지구와 비슷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지구의 오대양 육대주는 몸의 오장육부이고, 지구의 산맥과 강과 들판은 인간 몸에 있는 뼈와 혈관과 근육이라고 한다. 한 생명의 작동은 지구의 작동 원리와 같고, 바다의 작동 원리와 같다.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세계의 질서, 혹은 어떤 세계의 시스템이 만물에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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