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인류학
[블루 머신] 2부 바다를 여행하다_ 바다를 연결하는 매개자
1. 전달자
헬렌 체르스키의 정의에 따르면 ‘전달자’는 바다의 물리적 구조를 따라 이동하고, 이동하는 동안 주위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모든 전달자는 때때로 상당량 또는 소량의 에너지를 운반하므로, 전달자를 따라가면 에너지가 어떻게 이동하는지 알아낼 수 있다. 바다의 전달자인 빛과 소리는 물과 함께 이동하지 않고, 물속에서 춤을 추며 이곳저곳으로 정보와 에너지를 전달한다.
1) 빛
빛은 전자기파이고, 전자기파는 전기장 및 자기장의 진동이 얽혀 있는 사슬로 방향을 전환하지 않고 직선으로 이동한다. 모든 빛은 진공상태에서 동일한 속도로 이동한다. 인간이 볼 수 있는 빛은 전자기 스펙트럼에서 극히 일부(가시광선)에 불과하다. 가시광선이 물에 흡수될 때마다 가시광선이 전달하는 에너지는 열로 변환된다. 이렇게 변환된 열은 바다를 데우고 표층수를 따뜻하게 유지한다. 물은 기본적으로 모든 빛에 불투명하다. 우리가 물의 색을 볼 수 있는 것은 물 분자 군집의 밀도가 더 높거나 낮은 영역을 빛이 통과하는 동안 물 분자가 빛의 경로를 방해해 발생하는 충돌 현상 때문이다.(빛의 산란) 빛은 물속에서 이동하는 동안 물 분자에 튕기며 지그재그로 움직인다. 먼바다가 파랗게 보이는 것은 두 단계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먼저 청색광을 제외한 빛이 빠르게 물에 흡수된다. 그리고 남은 청색광이 직선 경로를 따르지 않고 바닷속을 지그재그로 돌아다니다가 일부가 우리 눈으로 들어온다.
바다에서 빛은 에너지원이 아닌 신호를 보내는 도구다. 이때 바다의 산란 현상이 도움이 되는데, 주위 환경에서 혼동을 일으킬 만한 빛이 산란되는 덕분에 동물들이 잠재적 빛 신호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다에 사는 생물종의 76%는 스스로 빛을 생성한다고 한다. 해저를 기어다니는 거미불가사리는 녹색 빛을 반짝이며 야광 점액을 분출한다. 남극해에 풍부하게 서식하는 크릴새우는 몸 아래쪽에서 빛을 발산하며 밝은 하늘을 배경으로 자신을 숨긴다. 해파리는 포식자 접근을 막고 먹이를 유인하기 위해서 주기적으로 빛을 내뿜는다. 패충류Ostracoda는 포식자에게 먹히면 밝은 빛을 뿜어 포식자 뱃속을 밝게 비춘다. 훔볼트 오징어는 밝은 표층수뿐만 아니라 복잡한 신호를 알아차리기 어려우리라고 예상되는 어두운 심해에서도 의사소통하는 법을 알아냈다. 훔볼트 오징어의 몸의 근육질 부분이 밝은 파란색으로 빛나며 특히 독특한 피부 신호를 생성하는 부위가 강렬하게 빛을 낸다. 이러한 빛은 피부 무늬를 드러내는 배경 조명 역할을 한다. 훔볼트 오징어는 어둠 속에서도 자신의 메세지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훔볼트 오징어 무리는 그 메세지를 토대로 행동과 움직임을 조정한다.
2) 소리
바다를 하나로 연결하는 전달자 ‘소리’는 장거리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수컷 해덕대구는 자기 영역에서 8자 모양으로 반복해 헤엄치고 둔탁한 ‘쿵쿵’ 소리를 내며 암컷을 유혹한다. 해덕대구가 인상적인 노크 소리를 낼 수 있는 이유는 공기로 채워진 부레 때문인데, 부레 바깥쪽에 ‘두드림 근육‘ 1쌍이 붙어 있다. 암컷도 먹이를 찾는 동안 소리를 내며 다른 물고기에게 경고하는 용도로 소리를 활용한다. 해덕대구는 바쁜 일상을 조정하기 위해 소리에 의존한다. 이석이라는 귀에는 탄산칼슘 덩어리가 있다. 해덕대구 귀는 몸속 깊숙이 숨겨져 있지만 소리가 쉽게 도달한다.
1,000m 수심에서 햇빛을 향해 헤엄치는 모든 생물은 영양소를 바다 위쪽으로 운반하는 엘리베이터 역할을 하며 해수면과 심해의 생태계를 잇는 연결 고리로 작용한다. 이곳을 심해산란층이라고 한다. 샛비늘칫과로 이루어진 빽빽한 층에서 작은 부레 수백만 개가 소리 장애물을 형성한다. 다양한 생물로 이루어진 심해산랑층은 매일 전 세계 바다 곳곳에서 오르락내리락한다. 이 층은 지구 바다에서 중요한 생물학적 특징으로 손꼽히지만 단지 소리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발견되었다.
밀도 높고 유동적인 바다의 신비를 밝히는 수단은 탐조등이 아닌 음파탐지기였다. 소리가 전달자로서 유용한 이유는 광범위한 영향력 때문이다. 물속에서 충격이나 진동을 일으키는 모든 행위는 그 행위가 의도적이든 아니든 소리를 심해까지 전파한다. 바닷속 소리의 파노라마는 저 멀리 수많은 지점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생성된 고유한 소리 지문이 물결을 일으키고 청취자를 통과하며 만들어진다. 소리는 바다에서 매우 중요한 전달자다. 그런데 소리가 전혀 방해받지 않고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 바다는 소리를 굴절시키고 변형하고 흡수한다. 바닷속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한 소리에는 주위 환경의 흔적이 남는다. 대양 분지를 가로질러 소리 신호를 보내면, 반대편에 도착한 소리는 모든 세부 요소가 평균화되고 단순화된 정보만 제공한다. 그리고 소리의 이동속도는 바닷물 수온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따라서 장거리 소리 신호를 전 세계 바다 곳곳으로 전송한 뒤 도착하는 시간 차이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면 전 세계 바다 수온을 한 번에 측정하고, 시간 경과에 따라 그 온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추적할 수 있다.
2. 표류자
바다의 승객들은 푸른 기계가 지구 생태계를 연결하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다는 원자와 분자, 생물 표류자들을 전 세계로 실어 나르는 운송시스템이다.
1) 생물
플랑크톤은 바다를 구성하는 생명의 그물망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필수 요소다. 플랑크톤 생태계는 비교적 좁은 규모에서 계절과 수심, 심지어 시간대에 따라서 변화할 수 있다. 사람이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작은 플랑크톤은 지름 0.1mm로 대략 사람 머리카락 굵기에 해당한다. 플랑크톤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태양에서 에너지를 수확하는 식물성플랑크톤, 다른 생물을 먹고 사는 동물성플랑크톤이다. 식물성플랑크톤은 해류를 타고 표류하는 동안 바다의 화학적 요소와 해양 엔진의 물리적 요소가 변화함에 따라 증식하거나 사라진다. 이 작은 생물로 이루어진 거대한 연결망이 없다면, 펭귄도 돌고래도 상어도 없을 것이다.
생태계는 복잡한 먹이사슬로 이우러진 연결망이지만, 남극해 생태계에서 대왕고래를 포함하는 연결망 일부분은 비교적 간단하다. 극지방에 여름이 찾아와 햇빛이 거의 쉬지 않고 비치면, 해수면의 미세한 식물성플랑크톤은 햇빛을 수확해 나머지 생태계에 공급할 에너지를 모은다. 해양 생물은 몸집이 커지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남극해에는 남극 크릴새우라는 효과적인 지름길이 있다. 남극 크릴새우는 작은 새우와 비슷하게 생긴 갑각류로, 길이는 4~5cm이고 몸이 거의 완전히 투명하며 검은색 둥근 눈이 있다. 남극 크릴새우는 수백 미터 길이로 거대한 무리를 형성해 분주히 움직인다. 대왕고래는 남극 크릴새우를 걸러내 먹는다. 대왕고래 똥은 철이 풍부하다. 대왕고래는 물속에서 남극 크릴새우를 걸신들린 듯 잡아먹고, 남극 크릴새우의 영양소를 햇빛이 있는 수면으로 끌어올려 생명에 필요한 에너지와 원료가 다시금 섞이게 한다. 식물성플랑크톤은 철이 풍부한 똥을 먹지 않지만, 물속에 방출된 철을 흡수해 필요한 분자를 합성하는 데 활용한다. 바다는 일방통행이 아닌 무한한 순환이 일어나는 장소다.
생물에게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과정인 광합성과 호흡은 분자에 철 원자를 필요로 한다. 생물이 철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 남극해 수면에는 다양한 영양소가 풍부하지만 철이 부족하다. 철이 없으면 식물성플랑크톤도 없고, 식물성클랑크톤이 없으면 남극 크릴새우도 없다. 바다는 무한히 그리고 필수적으로 물질을 재순환한다.
2) 원자와 분자
약 1억 년 전 인편모조류가 바다에서 대증식했다. 이들은 태양에너지를 수확하고 주위에서 생명의 모든 요소를 끌어모아 작고 단단한 보호막과 보호막 내부의 생명을 구성했다. 빠른 증식 속도로 무수한 인편 모조류 사체가 해수면에서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이 층은 오랜 세월 동안 위에서 강한 압력을 받아 압축된 끝에 우리가 백악이라고 부르는 무르고 푸석푸석한 암석이 되었다. 백악은 바다에서 특히 흥미로운 승객인 칼슘이 잠시 들르는 경유지다. 칼슘은 금속이지만 반응성이 매우 강해 다른 원소와 화합물을 이룬 상태로 대부분 발견된다. 인편모조류의 세포 바깥쪽을 덮은 아름다운 원반형 덮개는 바다의 기본적인 건축재인 탄산칼슘으로 이루어진다. 각각의 인편모조류는 탄산칼슘 보호막을 두른 작은 공, 즉 칼슘이 풍부하게 농축된 생물 입자로서 광활한 바다를 표류한다. 식물성플랑크톤은 죽으면 탄산칼슘의 무게때문에 해저로 가라앉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 조건이 맞으면 식물성 플랑크톤 사체는 해저에 쌓여 석회암 등 칼슘이 풍부한 암석을 형성한다.
천연 암석에 머무르는 칼슘에게는 동료가 있다. 바로 바닷물을 타고 이동하며 암석에 도달하고, 암석에서 다시 바다로 나아가는 또 다른 원자다. 칼슘의 동료 원자는 동물성플랑크톤 및 고래의 시간 척도에 맞춰 더욱 빠르게 바다에서 순환한다. 석회암을 이루는 탄산칼슘이 시멘트 재료인 산화칼슘으로 변화하는 동안, 칼슘의 동료인 탄소는 이산화탄소로 변화해 밖으로 쫓겨난다. 탄소는 바다에서 다른 누구보다 중요한 승객이다. 작디작은 탄소 원자는 변신의 대가로 다양한 환경에 맞춰 새로운 형태로 탈바꿈하는 잠재력 덕분에 생물의 필수 구성 요소로 자리 잡았다.
탄소 원자의 가장 중요하고 기발한 특징은 긴 사슬을 형성하고도 추가로 다른 원자와 연결 가능한 지점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산소와 질소 같은 다른 원자도 탄소 골격에 포함될 수 있다. 그러한 골격 구조의 다양성은 무궁무진하다. 탄소 원자는 어디에나 있다. 육지는 일반적으로 암석에 탄소가 다량 포함되어 있지 않고 흙에 탄소가 가득하다. 모든 생명은 탄소 골격을 지닌 분자로 구성된다. 인체는 약 18.5%가 탄소 원자로 이루어졌다.
바다 상층부를 벗어나 깊이 가라앉는 동물성플랑크톤의 똥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똥은 바다 승객이 드나드는 귀빈용 통로로, 똥 성분이 보편적인 제약을 우회해 다음 목적지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똥 알갱이에 포함되어 하강하는 물질이 영양소만은 아니다. 똥에는 탄소도 포함되어 있다. 누군가가 먹어치우지 않는다면 그 탄소는 대기로부터 멀리 떨어진 해저까지 빠르게 하강할 것이다. 해수면에서 유래하는 다른 찌꺼기. 이를테면 반쯤 먹힌 플랑크톤 사체 또는 젤리처럼 생긴 부유물 등도 마찬가지다. 이 찌꺼기들은 영양소를 함유하며 탄소 골격으로 포장된 상태다.
바다의 가장 깊은 곳에는 해저 생물이 서식하므로 탄소 찌꺼기는 대부분 그들의 먹이가 된다. 해삼, 게, 작은 물고기는 바다 위쪽 생태계에서 내려오는 소량의 찌꺼기를 먹고 산다. 심해는 먹이가 너무 부족한 까닭에 먹히지 않는 물질이 거의 없다. 심해에 도달한 탄소는 용존 이산화탄소 형태로 물속에 방출된다. 이때 이산화탄소 분자는 해양 엔진에 갇힌다. 해양 엔진은 밀도 차가 유발하는 느린 열염분 순환에 지배를 받으며 긴 시간 척도로 작동한다. 탄소 승객과 바닷물은 심해를 느릿느릿 이동해서 용승 발생 지역에 도달한다. 이러한 탄소 분자는 다시 해수면으로 올라오기까지 수백수천 년이 걸릴 수 있다.
생물은 거대하고 축축한 탄소 웅덩이에서 둥둥 떠다니고 헤엄치고 표류한다. 탄소 기반 복잡한 분자는 물고기 뼈, 살프 세포, 세균, 고래 등을 구성한다. 이처럼 탄소로 구성된 생물들은 대부분 표층수에서 헤엄치지만 죽으면 해설이 되어 천천히 가라앉아 깊은 바다로 향할 것이다. 큰 폭풍이 표층수에서 영양소를 섞으면, 살아 있는 세포는 용존 탄소를 붙잡아 자신을 구성하거나 증식하며 수동적인 용존 탄소 승객을 꿈틀대는 생물로 전환한다. 생물은 태양에너지를 수확하고 먹이를 먹고 헤엄치고 증식하다가 목숨을 잃은 뒤 대부분 심해로 누출되어 탄소 웅덩이를 구성한다. 이 모든 과정이 탄소를 대기로부터 계속해서 천천히 분리한다. 바닷속 생물의 패턴은 유기 탄소, 즉 복잡한 분자를 구성하며 연료와 영양소를 공급하는 탄소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심해에는 햇빛이 없으므로 탄소로 이루어진 찌꺼기가 유일한 먹이 공급원이다. 탄소의 여정을 이해하면 해양 생물의 분포를 설명할 수 있다.
3. 항해자
헬렌 체르스키가 정의하는 항해자는 마음대로 장소를 이동하며 모든 환경에서 이익을 얻는다. 이들은 환경을 대조한 결과를 토대로 이동하면서 아름다운 해양 엔진의 규모와 복잡성이 중요한 이유를 가르쳐준다. 항해자들은 바다가 모든 항해에서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이해하는 존재이고,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자기만의 길을 찾는 존재이다.
남극의 킹펭귄 암컷은 산란 후 짝에게 알을 전달하고 2,200km 떨어진 극전선(차가운 바닷물과 따뜻한 바닷물이 만나는 곳)까지 이동한다. 이곳은 생물이 풍부하여 가족에게 돌아가 알을 품을 채비를 하기 위함이다.
칼라누스 핀마르키쿠스는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셰틀랜드제도가 이루는 삼각 지대 남부의 차가운 노르웨이해 심해에 숨어 조용히 겨울을 보낸다. 이들은 봄이 오면 해수면에 플랑크톤이 넘쳐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대규모로 무리가 동면에서 깨어나 해수면 위로 올라와 번식한다. 또 이들의 관심있게 바라보는 대서양 청어가 있다. 대서양 청어는 지방이 풍부한 칼라누스 핀마르키쿠스를 쫓아 사냥하고 부드러운 조직에 저장한다. 칼라누스 핀마르키쿠스가 남쪽으로 이동하면 대서양 청어가 그 뒤를 따르고, 대서양 청어를 노리는 스코틀랜드 어선도 그 뒤를 따른다. 1900년대에는 어선과 함께 청어 소녀들이 함께 이동했다고 한다. 그들은 전국 곳곳의 항구를 돌아다니면서 남성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고 모든 일을 해냈다. 이는 시대를 앞선 자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