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인류학
[해양생물 글쓰기] 물의 경계를 넘어오는 이지러진 전달자
2025.3.10./해양인류학 답사기(2)/손유나
물의 경계를 넘어오는 이지러진 전달자
헬렌 체르스키는 『블루 머신』에서 빛과 소리를 주요 전달자로 얘기한다. 밤하늘의 빛이 있어 먼 우주를 알았고, 바닷속 300m에서 돌아온 기묘한 반향음으로 샛비늘칫과를 인식했다. 하지만 동시에 체르스키는 바닷속에서 흘린 녹색 피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사람이인지할 수 있는 가시광선에서 파장이 긴 적색광은 금방 물에 흡수되고, 파장이 짧은 청색광은 멀리 간다. 그래서 바다는 푸르게 보이고, 피의 붉은색은 금세 열에너지로 전환되어 피가 붉지 않고 녹색으로 보인다. 이렇게 물속에서는 색이 다르게 보인다.
「국립해양생물 자원관」은 바다가 반사하는 녹색과 청색을 주로 활용하여 방문객이 마치 바닷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자원관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높은 투명한 탑을 마주하게 된다. 탑을 따라 녹색 조명이 빙글빙글 올라가는데 그 모습이 마치 심해에서 거대한 해류가 위로 솟구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전시관 내부로 들어가자 높은 천장과 전구색 혹은 주광색의 조명이 느껴졌다. 빛이 들어오는 구역에 서식하는 해초, 해조류, 어류를 전시할 때는 초록색으로, 심해어를 만날 수 있는 전시관에서는 짙은 푸른색을 뒤에 배치하여 점점 더 깊숙한 바다로 들어가는 느낌을 연출했다. 벽에 곳곳에 전시된 해양생물 표본은 작은 더듬이와 미세한 털, 오돌토돌한 돌기까지 재현하여 마치 심해에서 살아 유영하는 바다 생물을 보는 듯했다. 전시관 전체의 배경과 조명, 전시된 해양생물의 알록달록한 색깔이 어우러져서 바닷속 영롱하고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유난히 반짝거리는 조개껍질, 등껍질의 무늬가 선명한 거북이, 물속에서 흔들리는 해초류와 해조류, 몸을 세로고 길게 세우고 사냥을 준비하는 은빛 갈치의 무리, 심해의 어둠 속에서 자체 발광하는 초롱 아귀까지. 해안가 바위에서 서식하는 게와 조개를 지나, 해초류를 보고, 플랑크톤과 어류, 심해어로 이어지는 순서로 내가 바닷속에 천천히 입수하여 해양 생물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바닷속에 잠겨있다는 환상은 「국립생태원」으로 이동하여 수조에서 화려한 색을 뽐내며 헤엄치는 열대어를 보면서 깨졌다. 순식간에 나는 바닷속에 잠겨있다는 환상에 잠시 빠졌다가 금세 물 바깥에서 수조에 담긴 물고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리둥절했다. 나는 해양생물을 관찰자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연결될지는 못하는 것일까? 심해에 유영하며 해양생물을 보고 있다는 느낌은 바닷속에서 피가 녹색으로 보이는 것과 같은 몽롱한 인식일 뿐, 해양생물과 나의 연결고리는 되지 못했다.
다른 전달자인 소리와 접촉하기란 더욱 어려웠다. 헬렌 체르스키는 바다를 ‘침묵의 세계’라고 비유하는 것을 반대한다. 바닷속은 해양생물이 지느러미나 뼈 같은 몸 부위를 문지러 내는 소리로 가득하다. 특히나 번식철을 맞이한 어종은 나이트에 비견할 만한 음파를 발산한다. 다만 인간의 해부학적 구조로 인해 바닷속 소리가 우리 귀에 잘 다다르지 않을 뿐이다. 내 눈앞에 있는 수조 안의 열대어도 분명 소리를 발산하고 있을텐데 들리지 않는다.
답사를 다녀온 후 나는 해양생물이 내는 소리를 찾기 시작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음향 탐지 기술이 발달하여 해양생물의 소리를 채취가 가능해졌다. 피그미 열대어, 곰치, 흰둥가리, 카디날 피쉬의 울음소리 혹은 몸을 두드리는 소리, 딱총새우가 집게발로 딱딱거리는 소리. 수중에는 각기 특색있는 소리로 가득했다. 내가 식물이라고 착각했던, 사실은 광합성을 하는 동물인 산호초 역시 ‘고로록’거리는 자신만의 소리를 발산하고 있었다.
해양생물이 가진 다채로운 색깔만큼이나 그들이 내는 소리도 각양각색이고 신비롭지다. 피그미 구리미가 번식기 구애를 위해 발산하는 ‘삐요용-’하는 소리는 영롱하다. 동시에 귀에 편안하지 않은 소리이기도 하다. 숲에서 들려오는 감미롭운 새의 노랫소리, 혹은 우리에게 친근한 동물이 내는 소리가 아니라 마치 거쉬인, 번스타인의 작곡가가 작곡한 현대음악을 듣는 듯하다. 미묘하게 신경을 거스르는 불협화음, 혹은 기계음을 포함하고 있다. 물은 일종의 경계이다. 물 안과 밖의 소리는 물의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다시 안으로 밖으로 반사된다. 수중에서 빛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굴절되고, 소리는 대부분 차단되며 애써 들은 소리는 마냥 편하지 않다. 호흡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른 해양생물과 내가 물의 경계를 넘어 만날 때 이지러진 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