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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 인류학


[해양생물 답사기(2)] 순환되는 똥

작성자
강평
작성일
2025-03-10 17:53
조회
28

블루 머신(5)_해양 답사기(2)_강평_250310

 

순환되는 똥

 

반갑습니다. 고래님

그래도 몇 번 봤다고, 다른 생물보다 고래를 보니 반가운 마음부터 든다. 박물관에서 고래를 본 것은 <울산 반구대 암각화 박물관>, <장생포 박물관>에 이어 이번이 3번째이다. 이전의 바위에 새겨진 그림, 벽에 전시된 뼈 일부분과 달리, 이번에는 바닷속에 있는 듯한 실물 크기 골격 모형이다. 고래 골격은 2층 규모의 중간 바닥을 터서 구성한 공간에 전시되어 있었다. 나는 먼저 길이 20미터 가량의 고래 뼈를 내려 보았다. 이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와서, 매달려 있는 고래 뼈를 위에서 올려 보았다. <국립해양생물자원관>에 전시된 다른 해양생물이 거의 털이나 피부까지 박재한 원형에 가까운 데 비해 고래는 골격만 전시되어 있었다. 골격만 남아 있는 모형이지만 압도하는 크기와 올려다본 구도 때문이었을까. 박물관 구면이라고 반갑다. 고래야라고 부를 정도로 친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고래를 지금처럼 안전한 박물관에서, 골격으로 만난 것이 아니라면 어땠을까 잠시 상상해보았다. 바다에서 살아 움직이는 고래가 수면 위로 숨 쉬러 나왔을 때의 모습을 밑에서 올려본다면 위압적이었을 것이다. 한 번의 몸짓으로 엄청난 파도를 일으키며 대면하게 되는 거구의 무서운 고래님은 신의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국립해양생물자원관>에서 내가 본 고래는 보리 고래이다. 전시 설명에 따르면 길이 19.5m, 체중 45ton이다. 울산 연안에서 보리를 수확할 때 나타난다고 하여 보리고래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수염고래 중 유영 속도가 가장 빨라서 스프린터로 불린다. 힘도 센데다가 스피드까지 뛰어나서 웬만해서는 대적할 상대가 없을 것 같다. 과연 해양생물 먹이사슬 최상위에 있는 최대 포식자답다. 전시된 고래를 머리 위로 한참 올려다본 탓이었을까. 울산 연안 보리 고래를 보며 블루 머신에 나온 남극해 대왕고래의 적갈색 똥이 수면 위에 둥둥 떠 있는 상상을 해보게 되었다. 신으로 보일 정도로 거대하고 스피드까지 좋더라도, 고래가 생물인 이상 먹었다면 반드시 똥을 싸야 한다. 고래는 많이 먹는다는데, 그렇게 먹고 싼 많은 똥은 어디로 가는가. 박물관에서 고래 똥의 향방을 생각하며, 문득 내가 싼 똥은 어디로 가고 있나 생각해본다. 블루 머신의 저자 헬렌 체르스키는 바다를 거대한 액체형 발전소로 해석했다. 지구 곳곳, 인간 삶의 모든 부분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체르스키는 남극 고래, 페루 바닷새의 똥을 순환하는 소중한 자원으로 설명한다. 똥은 어디로 가고, 어떻게 순환하는가. 고래 뼈를 보며 나는 똥이 가는 길을 생각해본다.

 

필수재 고래 똥

이번에 고래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윤도현 밴드가 부른 노래 흰수염고래는 대왕고래로 무게 100ton이 넘는 종이다. 가사를 자세히 들어보면 흰수염고래의 일생에 대한 노래는 아니다. ‘우리도 언젠가 흰수염고래처럼 헤엄쳐 두려움 없이 이 넓은 세상 살아갈 수 있길이라고 해서, 그 고래는 두려움 없이 넓은 세상 헤엄쳐 사는, 일종의 워너비이다. 그 노래가 말하는 흰수염고래가 사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아마도 가사와는 다르게 혼자서 두려움 없이 넓은 세상을 헤엄치기보다 플랑크톤, 크릴새우와 얽히고설켜, 먹고 싸며 살아가는 세상일 것이다.

고래는 포유류로 규칙적으로 대기와 접해 폐로 호흡해야 한다. 고래가 똥을 싸면 똥은 해수면으로 떠오른다. 햇빛, 똥을 만난 식물성 플라크톤이 영양분을 남극해의 진공청소기라고 불리는 크릴새우에 공급한다. 대왕고래는 먹이를 먹는 기간 동안 남극 크릴새우를 매일 16ton 섭취한다. 100ton의 거구라 큰 물고기를 먹는 줄 알았는데, 하나에 몇 cm밖에 안되는 크릴 새우를 먹는다. 그나저나 몇 cm짜리를 먹어서 16ton을 채우는 것도 일이다. 대왕고래는 한 번에 대형 버스 한 대 분량의 크릴 새우를 빨아들였다가 여과장치인 수염을 통해 남은 찌꺼기를 해수면으로 내보낸다. 남극해는 식물성 플랑크톤크릴새우고래이 계속 순환하는 장이다. 크릴새우는 철분이 가득 있어서, 고래의 똥은 철분제처럼 적갈색이다. 최대 포식자인 고래의 뱃속에서 끝나는 일방통행이 아니다. 크릴새우를 먹은 철분 가득 적갈색 똥이야말로 순환의 중요 요소이다.

1960년대는 전 세계적으로 고래잡이가 산업화되어 남획이 극에 달했을 때이다. 남극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이 무렵 고래는 원래 개체 수의 1~2%만 남았다고 한다. 나는 1회에 버스 크기만큼 먹어치우는 포식자인 고래가 없어졌으니 크릴새우의 팔자가 좋아졌을 것이라고, 그래서 개체 수도 증가할 것이라고, 기계적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로 바다는 단순하지만 정교한 방식으로 돌아가는 엔진이다. 고래가 거의 사라지자 크릴새우의 개체 수도 80%이상 감소한다. 크릴새우가 줄어들자, 크릴새우를 먹던 바다표범, 펭귄, 오징어, 물고기 등도 먹이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생물이 살기 위해서는 광합성, 호흡 과정이 필요한데, 철 원자가 필수적이다. 남극해 수면에는 다른 영양소는 있지만 철이 부족하고, 이 철은 고래 똥이 담당해왔다. 대왕고래 남획은 고래의 똥이 사라지게 만들고, 똥이 담당하던 순환의 큰 연결고리를 끊어버린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고래가 없으면 당연히 고래 똥도 없고, 똥이 없으면 철분도 없고, 철분이 없이는 해양생물에게 필수인 광합성과 호흡도 없어진다. 똥은 이렇게나 해양 생태계에서 그 어떤 생물 못지않은 필수재이다.

페루 바닷새 똥의 가치

고래 똥은 남극해의 보물이다. 페루 훔볼트 해류에서는 바닷새 똥이 보물이다. 남극에서는 고래의 남획으로, 페루에서는 페루 멸치 남획과 바닷새 똥 남획으로 자연의 대순환 고리가 위협받는다. 그래도 남극해에서는 고래 똥 자체를 남획하지는 않았는데, 페루는 새똥 때문에 전쟁까지 났다고 하니, 똥이 보물은 보물인가보다. 페루 새똥을 둘러싼 마구잡이식 채집을 접하며 나는 문득 의문을 품게 되었다. 어느 바다라도 나가면 어종만 다를 뿐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가. 아니다. 지리적인 위치에 따라서 어획량이 풍부한 지역과 텅빈 지역으로 나뉜다. 바다라고 다 물고기가 있는 것이 아니다. 물고기가 있어야 먹이사슬에 따라 다른 물고기도 있다. 물고기의 풍요와 인간의 풍요는 함께 한다. 그런 복 받은 곳이 어디에 있을까.

바닷새의 똥을 두고 다툴 정도가 되려면 일단 똥을 싸줄 바닷새의 먹이가 풍부해야 하고, 여기에 더불어 싼 똥이 비나 바람에 쓸려가지 않고 보존되어야 한다. 페루 바다 훔볼트 해류가 있는 곳은 바다 면적의 0.5%의 좁은 지역이지만, 전 세계 어획량의 20%를 차지하는 황금어장이다. 비결은 지정학적인 해풍, 해류에 있다. 태양으로부터 전달된 에너지는 적도에서 순증가, 극지방에서 순손실이 있고 바다의 액체성, 염분, 수촌차, 자전에 따라 순환이 발생한다. 단순히 생각하면 같은 위도라면 태양에서의 거리가 같기 때문에 비슷한 온도이어야 한다. 하지만 페루 훔볼트 해류 지역은 비슷한 위도의 수온 28도가 아닌 16도로 현저하게 낮다. 서쪽으로 부는 해풍 때문에 이 공간을 메꾸기 위해 영양분이 풍부한 남극해의 차가운 물이 틈을 메꾸며 용승하는 것이 원인이다. 훔볼트 해류에서 플랑크톤은 이 용승으로 인해 물, 이산화탄소, 햇빛, 영양소의 결합으로 차가운 바닷물에서 폭발적으로 번성한다.

플랑크톤, 크릴새우, 페루 멸치, 가다랑어, 바닷새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이 만들어진다. 아타카마 사막이라는 건조한 곳에 새똥이 30m 이상 쌓이게 되고 비가 오지 않는 지역이니 그대로 영양분이 화학작용을 거쳐 축적된다. 새똥 구아노는 인과 질소가 가득한 유기농 비료이다. 페루에 살던 잉카인들은 구아노를 공동체의 보물이라 여기고 매우 소중히 다루었다고 한다. 영국 농업혁명의, 말 그대로 거름이 된 구아노의 가치를 잉카인들이 몰라서 쓰지 않고 바라만 보던 것이 아니었다. 자제와 절제를 모르는 서구인들이 새똥을 앞다투어 캐는 바람에, 바닷물로 유입되는 구아노의 양이 줄어들게 되었다. 영양분이 줄어든 바다에 물고기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남극의 고래 똥처럼 페루의 새 똥도 무절제한 인간의 개입으로 순환의 고리에서 삐거덕거리게 되었다. 똥은 그럴만한 이유로, 아주 오랜 역사동안 자연의 순환 고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하수 처리되는 똥

하루 16ton을 먹고 싼다면 바다 위에 둥둥 뜬 고래의 적갈색 똥의 양도 엄청났을 것이다. 세계 어획량의 20%을 차지하는 좁은 지역에서 새가 싼 똥은 긴 사막을 따라 30m 높이의 산이 되었다. 그런 고래 똥과 바닷새의 똥은 그 지역에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먹이사슬을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가 되어왔다. 그렇다면 인간도 잡식성으로 많이 먹는데, 인간이 날마다 먹고 싸는 똥은 다 어디로 가는가. 그 똥도 자연의 어떤 고리를 연결하고 있는가.

중세 흑사병이나 근대화의 본고장 영국 템즈강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면 똥은 전염병 등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원인이었다. 따라서 똥은 일상과 최대한 격리시켜야 질병을 보호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블루 머신에는 1860년대 영국에서 하수를 도시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고안된 엔진이 소개된다. 도축장, 가죽 무두질 공장, 각종 공장과 가정에서 나오는 폐수가 템즈강으로 몰려들게 되어, 이를 도시 바깥으로 보내는 장치였다. 이 장치의 문제는 밀물을 타고 다시 도시 안으로 바깥으로 애써 보냈던 구역질 나는 폐수가 돌아온다는 점이었다. 이어 16년이라는 시간, 엄청난 돈을 쏟아부은 조세프 배절제트의 하수도 작업으로 질병을 획기적으로 감소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물은 처리되지 않고, 단지 오물의 장소를 이동시켰을 뿐이다. 처리되지 않은 오물은 밀물 시기 역류하며 일부가 도시로 다시 되돌아온다. 1876년 템즈강 하류에서 선박 사고가 났는데 익사자보다 유독가스 중독 사망자가 많았다고 한다. 이 사고의 충격으로 눈앞에서 오물을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처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책을 읽고 박물관에서 고래 똥을 생각하다가, 오늘날 인간들이 배출한 똥의 경로를 찾아보았다. 용변을 보고 변기에서 물을 내릴 때 자그마치 12리터의 물이 쓰인다고 한다. 나는 물을 내려보고 정말 그 정도의 물이 나오나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생수병 2리터보다는 훨씬 많은 물이 나오는 것은 분명했다. 요즘 건축물은 빗물 등 깨끗한 물과 샤워실, 주방, 화장실에서 쓰이는 오수를 처리하는 관이 다르다고 한다. 깨끗한 빗물은 따로 간단한 정화 과정을 거친다. 오수는 몇 단계의 정화 과정을 거쳐 바다로 흘러가고, 찌꺼기는 건조와 소각과정을 거친다. 그렇게 정화된 물은 다시 샤워, 설거지, 용변 처리에 쓰인다. 문제는 물을 과다하게 많이 쓰고, 정화하는 데 따른 에너지가 엄청나게 많이 든다는 점이다. 템즈강의 비극처럼 처리, 정화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바다에 버리는 일은 지금은 없다. 하지만 지금도 최대한 빨리 더러운 똥, 물은 버리고, 깨끗한 물만 편하게 쓰는 동안 엄청난 에너지와 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알았다. 1960년대만 해도 농촌 사회에서 인분을 비료로 만들기 위해서는 흙과 함께 인분을 발효시켜 천연 비료로 만들기도 했다. 지금은 비용이나 위생 등의 문제로 거의 사용하지 않는 방법이다. 인간의 똥도 몸에서 나오는 순간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 일부는 건조되서 소각되고, 일부는 정화를 거쳐 바다로 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내 똥도, 비록 비용이 많이 들기는 하지만 자연에서 순환하고 있는 셈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간은 먹기만 하고 똥은 사라진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고래도, 바닷새도, 인간도 똥이야말로 일방통행이 아닌 순환의 원리를 증명하고 있다.

 

썩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

고래 똥과 바닷새 똥을 생각하다가 북해도 답사 때 아이누족의 감사 의례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들의 감사에는 절제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다. 페루에 살던 잉카족도 구아노의 효용을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함부로 쓰지 않았기 때문에 30m에 달하는 구아노 산이 거기 남을 수 있었다. 감사와 절제는 통한다. 오늘, 나만 살고 말 것이 아니라면, 오랜 세월 선조가 살아왔고 또 이후에도 살아갈, 지속 가능한 세상이라면 말이다. 지속 가능한 세상의 핵심은 순환에 있었다. 잉카인들이 새똥이 만든 구아노를 소중히 쓰고 또 물려줬기에 나도 그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 같다.

생물은 먹어야 살고, 먹으면 반드시 배출한다. 배출된 것은 자연의 순환 고리를 돌아 다시 생물에게 간다. 인간이 배출한 똥도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 순환의 예외가 아니다. 문득 배출하고도 썩지 않고, 순환되지 않는, 생각해보면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플라스틱을 생각하게 된다. 자연에는 순환되지 않는 것이 없다는데, 플라스틱은 순환되지 않는 물체이다. 내가 내다 버린 플라스틱도 문제이지만, 집안 곳곳 쓰지도 않고 사기만 하는 플라스틱도 만만치 않다.

이번 박물관 답사는 고래에 대한 반가움에서 시작해, 순환되는 똥, 그리고 순환되지 않는 플라스틱에서 일단 생각이 멈춘다. 답사는 반가움에서 시작해 편안함보다는 덮어두던 것, 몰랐던 것을 생각해보는 조금은 불편하고 머리 아픈 것을 동반하는 일인 것 같다. 냄새나고 더러운 똥, 그리고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까지 생각하게 되니까 말이다. 다음 답사에서는 어떤 불편한 마음이 들게 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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