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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 인류학


[해양 생물 답사기] 삶의 조건이 형태를 빚는다

작성자
기헌
작성일
2025-03-10 17:58
조회
24

나에게 바다는 늘 그곳에 있는 조용한 거인의 느낌이었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살아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해양 인류학을 공부하면서 우리는 바다의 물리적 구조, 움직임 그리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생명들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바닷속 생명들은 모두 자기가 처한 조건에 따라 살아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헬렌 체르스키의블루 머신에서 소개하는 회유성 어류 뱀장어에 관심이 갔다. 뱀장어가 때로는 급격하게 때로는 천천히 상황에 맞게 자신을 바꾸어 내는 마술 같은 능력이 놀라웠다.

뱀장어는 바다에서 태어나 강에서 성장한다. 북대서양 가운데 사르가소해에서 태어난 뱀장어는 멕시코 만류를 타고 북쪽으로 이동한다. 바다를 이동하면서 연골 대신 뼈가 있는 탄탄한 원통 형태로 탈바꿈한다. 안전한 청소년기를 보내면 실뱀장어는 이제 내륙으로 향한다. 실뱀장어가 바다와 강이 만나는 하구에서, 염분이 낮아진 바닷물을 감지하면 아가미, 신장, 내장의 기능을 바꾼다. 실뱀장어가 자칫 물과 소금의 흡수를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강을 거스르는 동안 세포 기관은 늘 주위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변형시킨다. 이동하는 기간 변화무쌍하던 뱀장어가 강의 상류에서 성체 민물고기로서 자기 그대로 모습을 유지하면서 조용히 살아가는 시간은 최대 20년이다. 서식지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고 비밀스러운 야행성 삶을 산다. 이후 알을 낳기 위해 바다로 다시 합류하는데 역시 바닷물에 적응하기 위해 세포 기관을 재조정한다. 뱀장어가 먹이도 먹지 않고 암흑 속에서 헤엄을 치며 마침내 사르가소해에 도착하면 1km를 왕복한 끝에 알을 낳고 죽는다.

뱀장어는 때론 가늘게 때론 굵게, 짧게, 넓게 변신을 거듭하는데 같은 뱀장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전혀 다른 모습을 띤다. 형태를 바꾸는 게 사는데 이득이 된다는 것을 뱀장어는 알고 있다. 내가 아는 항해자가 바다 위에서 목적지까지 배를 모는 사람이라면 블루 머신은 뱀장어처럼 변신 능력이 좋은 생명체를 항해자라고 말한다. 상황에 맞게 자신을 바꾸는 항해자들은 선호도에 맞추어 해양 지형을 끊임없이 탐색하고 드나든다.

나는 뱀장어가 더 알고 싶어 영상을 찾아보았는데 자료가 별로 없었다. 뱀장어의 생명 사이클은 아직 모두 다 밝혀진 것은 아니라고 한다. 식지 않은 뱀장어에 대한 관심은 해양 인류학 답사를 더 기대하게 만들었다. 혹시 뱀장어에 대한 이야기를 찾을 수 있을까. 나는 해양 인류학 학인들과 충남 서천에 있는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을 찾았다.

 

변신하는 항해자들

항해자로 산다는 것은 나와 나의 바깥을 한꺼번에 파악하고, 환경에 능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나는 뱀장어를 더 알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찾았던 답사에서 또 다른 많은 항해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류들은 오랜 기간 자기가 살기에 적합한 방식으로 몸을 바꾸어왔다는 점에서 능동적인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류 전시는 장어형Anguilliform, 구형Globiform, 종편형Depressiform, 방추형Fusiform, 측편형Compressiform 등으로 생김을 구분하고 있었지만 이런 구분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체형도 많다고 한다. 어류들 중에는 어린 시절과 다 자란 시절의 모습이 판이하게 다른 경우가 있는데, 이런 형태 변화를 탈바꿈(변태, metamorphosis)’ 이라고 한다. 기다렸던 뱀장어는 볼 수 없었지만 뱀장어와 비슷한 변신의 귀재들을 만났다.

입이 길쭉한 학공치(Halfbeak, Hyporhamphus sajori)는 연안의 해면 가까이에 서식하는 몸길이 40cm 정도의 식용 물고기이다. 입모양이 마치 학()의 부리 같이 길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연안이나 하구의 표층에서 무리를 지어 서식하며 주로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고 산다. 4~6월에 해조류에 알을 붙여 낳는다. 우리나라 전 연안에 서식하며 일본 북해도 이남의 전역에 분포한다. 이 물고기의 아래턱이 왜 그렇게 긴 것인지는 밝혀진 바가 없다고 한다. 주변 환경에 굉장히 예민해서 위험한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날치처럼 수면을 박차고 튀어 오르는 습성이 있는데, 날치과 어류들이 아래턱이 나오는 특징이 있어 연관성을 짐작한다. 학공치 몸은 반투명하고 뱃속은 검은색을 띠는 데 플랑크톤의 광합성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주요 먹이인 식물성 플랑크톤이 뱃속에서 광합성이 되면 산소가 발생해서 원치 않게 죽게 된다. 햇빛이 잘 드는 바다의 표층을 헤엄치는 학공치에게는 중요한 형태적 변화다. 일본에서 학공치 같은 사람(サヨリのような)’이라는 말은 학공치의 다소 투명한 겉모습과는 상반되게, 뱃속이 검어서 생긴 말로 속이 시커먼 사람을 의미한다고 한다.

황새치(Swordfish, Xiphias gladius)는 학공치와 다르게 자라면서 아래턱이 짧아지고 위턱이 길어지는 특징이 있다. 어린 시절 몸 전체 퍼졌던 등지느러미는 성체가 되면서 크기가 작아지고, 마침내 머리 근처에 세모형으로 자리 잡게 된다. 몸길이가 4~5m로 회청갈색을 띄고 몸이 둥글어 길고, 눈이 크다. 표층을 유영하며 가끔 물 위로 튀어 오르기도 한다. ‘바다의 검투사라고 불릴 만큼 긴 주둥이는 방어용 무기로 쓰이거나 먹이를 잡을 때 사용한다고 한다. 최대 시속 80km로 헤엄을 칠 수 있어 주둥이로 고래를 찌르기도 한다.

넙치(Flounder, Paralichthys olivaceus)는 주변 환경에 자신의 몸 색깔과 질감을 맞출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오징어, 문어와 함께 바다의 카멜레온으로 불리는 넙치는 바다 바닥면에 배를 붙인 채 살아간다. 이때 모래 바닥의 색깔이나 자갈의 질감에 맞추어 숨어든다. 자연 상태에서는 1m 정도 성장하고 보통 암컷이 수컷보다 10cm 정도 크다. 단단한 지느러미는 등 쪽으로 77~81, 배 쪽으로 59~61개의 뼈가 지느러미로 나와있다고 한다. 또 하나의 특징은 눈의 위치다. 어렸을 때 얼굴 좌우에 눈이 위치하고 다른 물고기들처럼 헤엄치며 살지만, 성장하면서 마지막에 급속하게 오른쪽 눈이 점점 이동하여 왼쪽에만 위치하게 된다. 몸의 색소는 눈이 있는 쪽으로만 발달하고 헤엄치는 방법도 편평형으로 정착되어간다. 눈이 이동하는 이유는 모래나 펄 바닥에 몸을 붙여 생활하기 때문에 먹이를 쉽게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비슷하게 생긴 가자미는 넙치와 다르게 눈이 오른쪽으로 몰려 바닥에 두고 보면 머리와 꼬리의 방향이 다르다.

바닷속 생물들은 변신하고 싶어서 몸을 바꾼 게 아니라 그것을 추동하는 복합적인 원인들이 곳곳에 있었기 때문에 자기만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바다 생물 다양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짐작했지만 어류 한 마리 한 마리의 생김을 관찰하면서 저마다의 생존 방식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뱀장어를 보고 관심을 가졌던 것은 다른 생물들과 다르게 환경에 적응하고 자신을 바꾸어 내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득 최초의 생명은 단일했음이 떠올랐다. 바닷속 다양한 생명들은 모두 최초에서 출발했다. 그렇다면 내가 보았던 뱀장어의 탈바꿈이 단지 속도가 빨랐다는 것은 아니었을까. 모든 생명은 저마다의 방법, 저마다의 시간 동안 계속 변신하면서 자신의 형태를 빚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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