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인류학
[해양 생물 글쓰기] 바다와 육지의 먹이, 페루 멸치
해양 인류학(4) / 해양 생물 이야기 / 2025.03.10 / 진진
바다와 육지의 먹이, 페루 멸치
얼마 전 농업의 산업화가 우리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다른 다큐멘터리 (에런 울프 감독, 2007)를 보았다. 미국의 산업농장에서는 매년 옥수수를 소비하고도 남아 산만큼 쌓아놓을 정도로 생산했는데, 심지어 그곳에서 재배한 옥수수는 인간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식감과 맛이 형편없었다. 수확된 옥수수의 대부분은 가축의 사료로 소비된다. 인간이 먹어치우는 육고기의 사육을 위해 어마어마한 양의 옥수수를 재배하고 비축하는 것이 놀라웠는데, 그러한 작업은 땅 위뿐만 아니라 바다 속에서도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었다. 해양인류학 세미나 시간에 함께 읽었던 『블루 머신』(헬렌 체르스키 지음, 김주희 옮김, 남성형 감수, 쌤앤파커스)에 의하면, 페루 연안의 훔볼트 해류에 의해 바다의 상층부와 하층부 사이에 있던 어마어마한 양의 멸치가 상층부로 올라오게 된다. 하지만, 그 맛이 ‘독특’하고 ‘대담’해 지금껏 인간의 입맛을 사로잡지 못했다. 그런 페루 멸치의 수확량이 1971년에 1,310만t(약 2,000억 마리)에 이르게 된다. 사람들은 입에도 맞지 않는 이 바다 생물을 왜 이렇게 많이 잡았을까? 그렇다. 가축, 바로 돼지에게 먹이기 위해서다.
『블루 머신』은 지구에 단단한 땅에 두 발을 내리고 살아가는 인간이 실은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시스템인 바다의 영향을 받고, 그 시스템에 다시 영향을 주는 존재임을 일깨워준다. 저자는 이 책에서 바다를 여행하는 여러 요소들을 전달자, 표류자, 항해자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그 중 표류자는 바다의 운송 시스템을 타고 이동하는 승객으로, 고리에 고리를 물고 이어지는 해양 생태계에 어떤 가능성으로 작동하며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페루 멸치는 해양 생물로서 용승하는 차가운 바닷물의 식물성 플랑크톤을 먹고 자라며, 자신을 먹이로 하는 다양한 바다 생물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이고 육지의 생명들까지 먹여 살린다.
약 1km 가량 이어지는 집 근처의 재래시장에는 양 옆으로 여러 육해공의 여러 식료품과 먹거리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육식주의자인 우리 집 식구들은 생선을 즐기지 않기에 나는 보통 해산물 구역은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하지만 바다가 내 삶과 얼마나 가까이 연관되어 있는지를 공부하자 지난 주말 장을 보러 들른 재래시장에서 나는 가지런히 누워 있는 고등어, 도미, 오징어들이 무척이나 친근하게 느껴져 눈이 계속 갔다.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지만 멸치는 우리 집에서 떨어지지 않고 조달되는 바다 식재료이다. 멸치볶음은 냉장고에 항상 구비되어 있는 반찬이고, 국물용 마른 멸치는 각종 요리를 위해 항시 준비되어 있는 식재료다. 잔멸치 중멸치 대멸치, 볶아서도 우려서도, 종류별로 구비하고 먹는 멸치의 많은 양이 가축 사료로 소비되고, 그 어획량이 전 세계 어획량의 40%를 차지할(1964) 정도라고 하니, 멸치는 해양 생물 중 우리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생물이라고 할 수 있다. 『블루 머신』의 1부 1장의 <층층이 쌓인 바다가 돼지를 기르게 된 사연>에 의하면 1972년 페루 멸치의 어획량 급감으로 영국 베이컨 가격이 2배 상승했고, 주간동아 사설(560호, 2006.11.14, 김정금 JK 수리논술연구소장·제일아카데미 대표)에 의하면 페루 멸치의 가격이 일본 두부 값에도 영향을 미친다니, 페루 멸치가 우리 일상과 얼마나 연관되어 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크기도 작고 자신을 지킬 무기도 없는 멸치는 천적이 굉장히 많다. 가다랑어와 상어 같은 어식성 어류들과 갈매기, 바다오리, 펠리컨 같은 바닷새들과 바다표범, 물개, 바다코끼리, 고래, 돌고래 등과 같은 바다포유류, 바다뱀과 바다악어와 바다거북과 같은 바다파충류들과 문어, 오징어, 해파리, 대게와 같은 대형 무척추동물 및 갑각류와 절지동물, 그리고 인간까지 수많은 동물들의 일용한 먹잇감이 된다. 그만큼 멸치는 바다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다. 또한 바닷물고기에서 개체수가 굉장히 많고 어획량이 가장 많은 어류이며 수많은 해양생물들의 생태지표가 되기도 한다. 바다의 먹이사슬에서 최하위지만 그만큼 바다생태계에서 중요한 물고기이기 때문에 멸치의 개체수가 잘 보존될수록 건강한 바다라고 얘기를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페루 멸치는 1971년 최고 어획량이 1,310만 톤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큰 변동을 겪었다. 풍성했던 1960년대 이후, 1972년 엘니뇨로 훔볼트 해수 순환 벨트가 영향을 받으면서 개체수가 엄청나게 줄어들어 공급적인 측면에서 가치가 줄어들게 되었다. 당시 따뜻한 물이 차가운 훔볼트 해류 위로 흘러들어와 열성층의 깊이가 낮아졌다. 그러자 영양분이 풍부한 물이 더 이상 솟아오르지 않았고 식물성 플랑크톤 생산이 감소하여 멸치의 먹이원이 고갈되었다. 1982~1983년의 엘니뇨 현상과 더불어 기록상 가장 강력했던 1997~1998년의 엘니뇨 현상으로 인해 멸치 개체수가 감소하여 어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결과적으로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