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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 인류학


[해양 인류학 글바다(서평)(1)]인간, 블루 머신의 서식자

작성자
강평
작성일
2025-03-14 19:29
조회
27

블루 머신_글바다 서평(1)_강평_250314

 

인간, 블루 머신의 서식자

 

바다의 정체성

블루 머신은 해양물리학자가 바다를 물리학, 생물학적으로 탐구하고, 인간의 윤리를 묻는 책이다. 그가 말하는 윤리는 바다에 대한 관찰, 탐구를 통한 감사와 절제이다. 책 분량의 많은 부분은 바다를 액체형 발전소라는 시스템으로 분석하고, 이 시스템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살아가는, 인간을 포함한 생물에 대한 내용이다. 윤리 부분은 상대적으로 분량은 적지만 나는 책을 읽고, 스스로 바다를 향한 나의 윤리를 질문하게 되었다. 책은 체르스키가 적도 하와이에서 카누를 직접 타는 것으로 시작한다. 뒷 부분에는 바람을 몸으로 느끼고, 별로 좌표를 삼으며 범선의 기술과 정신을 이어받아 태평양을 항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카누와 범선은 낭만적인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하기 위해서 등장하지 않는다. 예나 현대사회나 바다는 유용하지만 동시에 위험하다. 인간이 바다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카누, 범선은 인간이 몸으로 바다를 직접 만나는 장이다. 물리학, 생물학이라는 학문이라는 이름이 없었을 때부터 선조들은 바다가 움직이는 원리를 이해했고, 그곳에서 쫓고 쫓기고, 먹고 먹히는 생물의 세계를 관찰, 탐구하며 살았다. 나는 책을 읽고 해양물리학자가 카누를 타며 하와이의 바다를 충만하게 느끼고, 바다를 물리학, 생물학적으로 탐구하는 책을 쓰는 것이 어쩌면 아주 오래 전 선조들이 바다를 항해하던 범선을 타는 일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바다의 바람을 느끼며, 습기와 짠내음을 느끼며, 직관적으로 들고 날 때를 아는 일말이다. 저자는 바다에 대한 탐구라는 윤리를 몸소 카누 타기로, 책 쓰기로 보여주고 있다.

나는 바다를 파편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바다 생물인 고래, 크릴 새우의 멸종 위기, 동해안에서 사라진 명태, 그러면서도 언제나 돈만 내면 먹을 수 있는 맛있는 회를 떠올리는 식이었다. 헬렌 체르스키는 해양 생물의 개체 수 변화와 이를 위한 조치를 논하기 이전에 최소한의 맥락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는 이를 위해 해양 생물의 위기같은 바다에서 파생된 이야기가 아니라, ‘바다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한다. 바다가 왜 거대한 액체형 발전소인지, 그 발전소의 작동에 따라 해양생물은 물론 육지의 인간들이 어떻게 적응하며 살아가는지를 설명한다. 체르스키는 해양은 보호하고 말고 할 남이 아니라, 인간은 바다에 서식하는 작디 작은 존재로서, 바다가 곧 우리라고 한다.

 

물리학, 시스템으로 작동

블루 머신을 읽고 얼마 전 산 지구본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태양에서 출발한 열은 적도에서 순증가하고 극지방에서 순감소한다. 대기와 해양이 열을 그대로 저장하지 않고 재분배한다. 재분배되는 과정은 바다는 액체이고 짠맛이 나며 위치에 따라 수온이 현저히 높거나 낮다는 점, 그리고 지구 자전의 영향으로 인한 회전이라는 요소가 적용된다. 블루 머신은 지구 면적의 약 70%를 차지하는 파란색바다를 거대한 액체형 발전소라고 한다. 선사 시대부터 아주 오랜 시간 지구 생명체는 이 매커니즘이 도출하는 결과에 전적으로 의존해왔다. 인간도 이 생명체 중 하나로서 뛰어난 관찰력으로 바다의 물리학, 물리학에 따라 움직이는 생물에 대한 지식과 기술로 생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물리와 생물에 대한 이해는 자연에 대한 감사와 절제라는 윤리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인간의 시야는 이익으로 편협해지고, 바다는 인간 활동의 개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산업사회 전 생물들은 관찰, 탐구를 통해 바다에 적응했다.

나는 바다에 대해 효용위험으로 감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효용은 생선을 먹고 바다 앞 카페에서 뷰를 즐기는 것이다. 위험은 바다가 넓고 깊어서 물에 들어가면 호흡을 할 수 없고, 바람이 불면 쿨렁이는 파도가 이는 변화무쌍함이다. 새삼 공기를 마시는 인간이 어떻게 위험한 바다에서 이토록 많은 효용을 누릴 수 있는지 신기한 생각이 든다. 바다라고 똑같은 효용이나 위험이 있는 것은 아니다. 페루 앞바다에서 한류가 흐르는 것은 0.5%의 좁은 지역밖에 되지 않지만 세계 어획량의 20%를 차지하는 황금 어장이다. 적도는 카누와 서핑 성지이지만, 아이슬란드는 바다와 맞서는 바이킹 정도는 되어야 살 수 있는 거친 바다이다. 바다를 어디서 경험했는가만 놓고 보더라도 효용과 위험의 기억은 완전히 다르다. 바다는 물리학이 작동되는 거대한 액체형 발전소이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눈에 보이는 우유와 커피의 뒤섞임, 아이스라떼와 바닷물의 혼합은 다르다. 바닷물은 외부 요인이 있기 전까지 쉽게 섞이지 않는다고 한다. 인체의 해부도가 있는, 바다도 표층과 해저로 나뉘는 해부학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한 체르스키는 극한의 추위, 북해 근처에서 사는 그린란드 상어기 열대에 가까운 멕시코 만류에서 잡힌 이야기를 한다. 표면에서는 극한의 추위, 따끈함으로 대비되는 곳이라도, 해저가 되면 기온이 달라진다는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는 예이다. 바다의 표면과 심층은 다르고, 또 해류, 해풍 등 강력

한 외부 요인이 아니면 쉽게 뒤섞이지 않는다.

적도로부터 도착한 에너지가 지구에 1/N으로 재분배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느 곳은 비옥하고, 어느 곳은 텅비게 된다. 누구 원하고, 누가 노력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페루 훔볼트 해류는 태양으로부터의 거리가 동일한 동일한 위도 대비 온도가 거의 10도 가량 낮았다. 페루 연안은 남쪽으로부터 남극 해류의 차갑고도 에너지가 많은 해류의 유입, 서쪽으로 향하는 해풍, 한류

 

생물학, 전적으로 의존

물리학 법칙이 작동하는 바다. 바다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생물. 바다생물 뿐만 아니라 육지 인간도. 남극해 펭귄, 고래의 생존, 청어 소녀가 펼치는 장면(산업사회라도 여전히)

예측 가능성(바다에의 예측, 시계의 예측 가능성은 무조건에 가깝다.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가운데의 예측 가능성. 인간의 개입정리)

전달자(빛과 소리), 표류자, 항해자.


윤리학, 보호 대신 탐구

범선, 카누 타기. 몸으로 만날 때 느끼는 자부심. 하인이 아니고.

바다 탐구와 멀어지면서 문제(환경문제뿐만 아니라 인간의 감각)가 발생.

 

죄송합니다ㅏ. 완성을 못했습니다. 조금 더 써보겠습니다. 

전체 1

  • 2025-03-14 21:30

    저도 아직 완성을 못해서 ㅜㅜㅜ 지금 열심히 쓰고 있답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