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인류학
[해양생물 글쓰기] 훔볼트 오징어, ‘빛’으로 세상을 구성하다
훔볼트 오징어, ‘빛’으로 세상을 구성하다
빛과 소리, 메시지 전달자
헬렌 체르스키는 『블루 머신』에서 인간은 ‘빛과 소리’라는 두 전달자를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빛으로는 소리를 알 수 없고, 소리로는 빛을 알 수 없듯 전달자가 메시지의 유형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메시지는 어떤 의미나 내용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일 수도 있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전달하거나 함께 소통하려는 필요나 의지일 수도 있다. 메시지는 발화되는 지점과 그것이 닿는 지점 사이에서 일어나는 무엇이다. 인간인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메시지 전달 방식은 말과 글이다. 이는 시각과 청각이 매개하고 ‘블루 머신’에서처럼 빛과 소리라는 전달자를 거친다. 그런데 해양 생물들은 같은 빛과 소리를 전달 물질로 쓰면서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메시지가 전달된다. 빛과 소리라는 전달자 자체가 대기와 바다에서 다르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기에서 빛은 모든 물체를 균등하게 비추면서, 이동하는 과정에 변형되지 않고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반면, 바다에서 빛은 대기와 달리 이동 방향을 쉽게 바꾸거나 세기가 약해지기도 한다. 빛이 투과하는 거리는 물의 색에 따라 달라지는데 바닷물은 빨간색을 가장 빨리 흡수하고 파란색은 깊은 곳까지 도달한다. 자연광이 바다를 투과하는 거리에 따라 부분적으로 존재하면서 눈에 보이는 색 또한 부분적으로 보이기에 공기에서 빨간색이던 물체는 심해에서 파란색으로 둔갑한 듯 보이기도 한다.
소리 작용도 다르다. 해수면 윗소리는 공기를 타고 이동하지만 해수면에 부딪혀서는 바로 반사되어 위로 올라간다. 해수면 아래 수중 음파는 위로 올라오다 수면에 도달하면 공기 밀도가 낮아 압력을 전달하지 못해 결국 해수면에 반사, 다시 아래로 내려간다. 물과 공기가 너무 달라 서로에게 침투하는 일이 거의 없다. 바다 위아래는 소리 측면에서 보자면 완전히 분리되어 있기에 공기를 매개로 소리를 듣는 우리는 바닷속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이처럼 우주 생물들의 메시지는 전달자에 의해, 전달 매질에 의해 여러 갈래 다른 길을 탄다. 발신자와 수신자의 신체 구조에 따라, 이들이 머물고 있는 공간에 따라 메시지 전달을 위해 사용하는 물질, 매체나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메시지는 발신자와 수신자를 둘러싼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훔볼트 오징어의 빛–언어
헬렌 체르스키를 따라 ‘블루 머신’을 탐험하며 나는 특히 훔볼트 오징어의 메시지 소통 체계가 궁금했다. 인간의 소통 방식과 차이가 있지만 훔볼트 오징어는 몸에 빛으로 무늬를 드러내고 무늬로 패턴을 만들어 인간의 문장과 유사한 구조를 조직할 수 있다. 그리고 각 패턴은 특정 의미를 지시한다. 인간의 소통 체계와 같은 듯 다른 점이 관심이 갔다.
훔볼트 오징어는 젤리 같은 근육 안에 쌀알과 크기와 형태가 비슷한 수백 개의 미세 입자가 있는 해양 생물이다. 입자 내부 기관이 각 기관에 있는 루시페린과 루시페레이스라는 두 가지 화학 물질을 결합, 밝은 파란색 빛이 폭발적으로 뿜어낸다. 이 빛은 외부가 아니라 다시 오징어 내부로 향하고 근육 조직에서 반사되어 근육 대부분이 파란색으로 빛난다. 독특한 피부 신호를 생성하는 부위가 강렬히 빛을 내는 것이다. 진한 색소가 담긴 주머니가 확장되면 밝게 빛나는 근육에 뚜렷한 무늬가 나타나 어둠 속에서도 자신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훔볼트 오징어 무리는 이 메시지를 토대로 행동과 움직임을 조정한다.
이들 훔볼트 오징어에 대해 몬터레이 베이 수족관 연구소(MBARI)의 선임 과학자 브루스 로비슨와 공동 연구자 벤 버포드 역시도 몸의 색상 변화가 오징어가 서로 소통하는 방법일 수 있다고 알려준다. 예를 들어, 훔볼트 오징어가 먹이를 먹을 때 종종 보이는 반쯤 밝고 반쯤 어두운 패턴은 경고일 수 있다는 것이다. “조심하세요. 저 등불 고기를 잡을 거예요!”라고 말이다. 또한 이 두 과학자들은 오징어가 때때로 인간이 문장에서 단어를 배열하는 방식과 유사하게 특정 순서로 패턴을 사용할 뿐 아니라 이 특정 패턴을 사용하여 다른 패턴의 의미를 수정하여 인간이 ‘구문’이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 수 있다고 알려준다. 예를 들어, 한 패턴 시퀀스는 “조심해!—저 등불 고기를 잡을 거야“를 의미할 수 있지만, 다른 시퀀스는 “조심해!—내 길을 비켜주지 않으면 너를 먹을 거야!”를 의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훔볼트 오징어는 인간이 문자 이미지를 만들어 소통 체계에 활용했듯 무늬와 패턴을 만들어 자신들만의 의사소통에 활용한다.
‘빛’이라는 메시지 전달자가 나를 결정한다
바다에서 ‘빛’은 훔볼트 오징어의 메시지를 발신하는 물질인 동시에 이들이 세상의 메시지를 수신하는 물질이기도 하다. 바닷속 단세포 와편모충류는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에게 자극을 받으면 자동으로 빛을 발하는데, 이 빛으로 물고기의 윤곽이 희미하게 드러나 그들의 존재를 알 수 있다. 훔볼트 오징어는 그 빛을 보고 다른 바다 생물과 바다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인식하고 그것에 맞게 판단한다. 그리고 자신의 빛–언어를 통해 집단 내 다른 훔볼트 오징어와 의사소통을 하며 행동을 조정한다. 훔볼트 오징어는 그렇게 물속에서 빛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빛으로 세계를 구성한다.
우리는 자신이 인식하는 만큼, 그 내용과 방식에 따라 자신의 세계를 만든다. 인식 활동은 수신자로서 또 발신자로서 각자에게 닿아 전달되는 메시지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메시지를 결정하는 것은 전달자들이며, 전달 형식의 방식과 범위들이다. 만약 인간이 공기가 아니라 물을 매개로 빛이라는 전달자로 세상을 인식하는 조건 속에 살았다면 인간 인식 체계에 빨강이나 주황이라는 색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은 온통 파랗거나 녹색으로 보였을 것이다. 파랑과 녹색으로 규정되는 세계에서 그 조건에 맞게 나 자신을 전혀 다른 존재로 인식하며 살았을 것이다.
훔볼트 오징어도, 인간도 메시지를 통해 전달되는 그 무엇을 깨닫고 느끼는 만큼 나 자신과 세계를 알아가며 구성해 간다. 빛이라는 전달자가 작동하는 방식과 범위가 곧 나를, 나를 둘러싼 조건을 인식하고 파악할 수 있는 범위이기도 하다. 빛이라는 전달자가, 그 메시지 형식이 나를 결정한다. ‘빛’이라는 전달자가 없었다면 우리는 미아가 되어 우주라는 암흑, 그 망망대해를 하염없이 떠돌고만 있었을 것이다. 이 전달자가 우주와 나 사이에서 구체적 길을 내주어 내가 세상을 알고, 나를 알아가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