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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 인류학


[바다 인류] 서평쓰기_바다 상인, 지도가 아니라 경로를 그리다

작성자
조재영
작성일
2025-05-09 23:44
조회
47

바다 상인, 지도가 아니라 경로를 그리다

 

 

 

유동하는 네트워크

우리는 기후 변화, 인류의 이동, 인종과 문명의 교차를 이야기할 때, 늘 땅 위에서 벌어진 일들에 집중한다. 고정된 장소, 영토의 경계선 등이 역사의 중심을 이루는 듯 보인다. 그런데 바다는? 그 역사에 바다는 없었던 듯하다. 육지를 중심으로 삶을 꾸려가고 있기에 바다의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일은 나에게 낯설기도 하고 또 막연하게 느껴진다. 고정된 땅 위에 점들을 잇는 지도, 중심과 주변이 구분된 공간의 관계 등 육지의 도식이 익숙한 나에게 바다는 여전히 미지의 공간이다.

주경철의 바다 인류를 읽으며 나는 그동안 인류사를 얼마나 육지의 눈으로만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저자는 인류 문명의 발전에 있어 바다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가만 생각해보면 그럴 법도 하다. 교역은 결국 내가 가진 것과 너의 것을 바꾸는 일이다. 육로로는 아득히 먼 거리도, 바다를 통한다면 단숨에 도달할 수도 있다. 바다는 무겁고 부피 큰 물건들을 나르는 데도 더없이 효율적인 통로였다.

그간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을 뿐, 바다는 오랜 시간 동안 사람과 물자, 언어와 문화를 실어 나르며 멀리 있는 공간들을 잇고 있었다. 더구나 이러한 교역은 단지 가까운 거리에서 그치지 않았다. 우리의 예상과 달리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원양 항해를 통해 바다 너머의 세계와 연결되었고, 그 연결은 점점 더 멀고 넓은 방향으로 확장되어 갔다.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을 뿐, 바다는 언제나 크고 다양한 선들로 인류를 연결하고 있었다.

저자 주경철이 해상 교역을 기반으로 네트워크로 바다를 설명한 지점은 나에게 특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손에 잡히지 않는 물 위에서, 끊임없이 출렁이는 바다 위에서, 인류는 어떻게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네트워크를 구성해낼 수 있었을까? 나는 막연히 네트워크란 고정된 지점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구조라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그 고정된 지점 있기에 네트워크도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그런데 바다는 늘 손에 잡히지 않는 대상으로 끊임없이 흐르고, 형태가 없으며, 경계도 없다. 이런 바다 위에서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나? 하지만 바다 인류는 나의 이런 전제를 뒤흔든다. 이 책을 통해 만난 바다는 단순히 육지의 배경이 아니며, 출렁이는 물 위에서도 인간은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길을 만들고, 만남을 시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바다 네트워크의 핵심에 상인이 있다.

 

중심을 거부하는 인도양 상인

면적 7,500만 제곱킬로미터, 전 세계 해양의 27퍼센트를 차지하는 인도양은 물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거대한 바다다. 이 바다는 단지 넓기만 한 공간이 아니었다. 인도를 비롯해 중동, 동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중국과 유럽에 이르기까지, 인도양을 거치지 않은 문명은 없다.

저자는 인도양이 인류사의 중심 무대였음에도, 이 거대한 바다를 지배하려는 단일하고도 강력한 세력이 뚜렷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이를 인도양의 고유한 특성으로 보며, 이곳이 다양한 중심점이 존재하는 다중심적(polycentric)’ 공간으로 해석한다.

이 바다를 기점으로 수많은 상인과 선원, 여행자, 종교인이 만나며 물품을 교환했다. 각기 다른 혈연, 출신지, 종교적 배경을 가진 상인 공동체들이 때로는 경쟁하면서도 협력하며, 오랜 시간에 걸쳐 상업 활동을 이어갔다. 놀라운 것은, 이슬람이 지배적인 종교로 자리한 이후에도 인도양에서는 힌두교, 자이나교, 유대교, 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공존하며 교역이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를 만국보편(oecumenical)’의 공간이라 부르며, 개방성과 관용을 특징으로 삼는 인도양만의 독특한 성격이라고 말한다. 지중해가 끊임없는 패권 다툼과 충돌의 바다였다면, 인도양은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흐름의 바다였다. 이는 이곳을 우리의 바다로 소유하려는 절대적 슈퍼파워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덧붙인다. 다시 말해, 인도양은 누구의 것도 아니었기에, 모두의 바다가 될 수 있었다.

인도양의 교역은 인도아대륙이 제국 시대로 진입하며 더욱 활기를 띠게 된다. 이 시기의 대표적 왕조는 마우리아 왕조로, 찬드라굽타를 시작으로 빈두사라, 그리고 아소카 대제가 3대 황제로 이어진다. 아소카 대제가 불교에 귀의하면서 불교는 제국의 정치 구조와 결합되었고, 이는 인도양 교역의 또 다른 추동력이 된다. 불교뿐 아니라 자이나교 또한 항해와 교역에 우호적이었다. 자이나교의 경우, ‘아힘사라는 비폭력의 교리를 철저히 지켜야 했기에 교인들은 동물을 죽이는 목축업이나 해충을 제거해야 하는 농업에 종사하기 어려웠다. 결과적으로 이 교리를 따르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상인이 되는 것이었다. 불교 또한 전도를 위한 이동이 필수였고, 이는 자연스레 항해와 교역 활동으로 이어졌다. 더욱이 불교는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에 상인 계층이 사회적으로 성장하는 데 유리했다. 이 두 종교는 정착보다는 이동, 정복보다는 전도, 소유보다는 순환을 선택했다.

이렇듯 인도양은 상인들 중심으로 종교도, 문화도, 물자도 끊임없이 흘렀고, 각기 다른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넜던 이들은 누구도 유일한 중심이 될 생각이 없었고, 그랬기에 모든 상인이 이 바다의 중심이 될 수 있었다.

 

이슬람 상인의 열린 정체성

이슬람이 발흥하기 이전, 사산 왕조 페르시아(서기 224-651)는 정치적·경제적으로 매우 강력한 제국이었다. 그러나 비잔틴 제국과의 오랜 경쟁 끝에 점차 쇠퇴하였고, 결국 아랍이슬람 세력에 흡수되기에 이른다. 이후 페르시아는 이슬람교를 받아들이며 종교적으로는 빠르게 이슬람화 되었지만, 문화적으로는 아랍화에 저항하며 고유한 전통을 굳건히 유지했다. 이러한 태도는 이슬람권 내부에서 종교적·정치적 긴장을 유발하는 한 요소가 되었지만, 상업의 영역에서는 달랐다. 아랍 상인과 페르시아 상인은 서로의 차이를 문제 삼지 않고, 협력하며 인도양 교역망 속에서 함께 활동했다.

페르시아의 경우 아프리카 팽창에 두각을 나타냈으며 스와힐리 해안의 경우 그들의 종교적·경제적 영향력 아래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고, 8세기경부터 이 지역에 모스크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페르시아에서 전래된 이슬람이 아프리카 동해안에 뿌리내린 것으로 보인다. 종교적 전도와 함께 이슬람 상업 공동체들이 스와힐리 지역에 형성되었고, 이들은 오만과 페르시아만의 항구들과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인도양 해양 소통로와 아프리카 내륙 교역로가 만나는 접점에서, 스와힐리 문화는 생성되고 확장되었다. 페르시아 남성과 현지 여성의 결혼을 통한 인적 교류는 문화적 동화를 더욱 가속화했으며, 그 후손들은 아프리카 정체성과 페르시아 정체성을 동시에 간직한 새로운 공동체로 자리 잡았다.

저자는 이러한 스와힐리 무슬림 공동체의 혼합적이고 유연한 정체성이, 중국 남부 지역에 정주한 무슬림 공동체와는 뚜렷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중국에서는 무슬림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정체성을 강하게 고수하며 주변 문화와 거리를 유지했다면, 동아프리카 해안의 무슬림 공동체는 지역 사회에 깊이 흡수되어 들어가며, 다중 정체성을 구성하는 존재들로서 자리했다. 자신, 우리만의 것, 그 고유한 정체성을 고집하지 않으면 낯선 땅에 동화되어 가는 특성을 보여준다.

 

정착이 아니라 항해로, 중심이 아니라 흐름으로

바다 인류를 통해 만난 바다 상인들은 떠도는 네트워크, 정착 없는 연결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땅과 다르게, 늘 흐르며 경계를 허무는 바다의 흐름 속에서 이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기억하고 연결해왔다. 바다를 항해하는 상인들은 고정된 지도를 펼쳐 그 선을 따라가기보다, 늘 움직이는 경로 위에 자신의 선을 그려 넣는 존재였다. 그들의 배는 땅에 닻을 내리기보다 계속 이동하기를 선택하며 낯선 곳에 스며들며 관계를 짓는 법을 알았다.

지도가 이미 결정된, 닫힌 세계의 구조라면, 경로는 열려 있는 삶의 흐름이다. 바다 상인들은 이 흐름 속에서 교역과 전도, 혈연과 문화를 엮으며 소유가 아닌 순환, 정복이 아닌 감응, 고립이 아닌 혼종의 방식을 택했다. 중심이 되려 하지 않았기에 어디라도 갈 수 있었고, 자신의 고정된 정체성을 고집하지 않았기에 누구라도 될 수 있었다. 이들 상인들을 통해 어디를 향해 갔느냐 보다, 어떻게 함께 공존하며 흘러갈 수 있는지를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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