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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 인류학


[바다인류 서평] 바다를 통해 본 인류사

작성자
유현지
작성일
2025-05-10 01:02
조회
34

바다를 통해 본 인류사


유현지




며칠 전, 흥미로운 지도를 봤다. 바로 <물고기가 그린 세계지도>! 해당 지도는 스필하우스 투영법(Spilhaus projection)에 의해 그린 것으로, 바다를 통해 세계를 누리는 물고기의 시각에서 본 세계지도다. 나는 늘 육지를 중심으로 생각해왔는데 물고기 입장에서는 육지야말로 미지의 세계겠구나,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낯선 지도의 모습은 내가 얼마나 제한적인 시각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했다. 돌이켜보면 역사 공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늘 세계지도의 대륙 안에서 벌어진 사건들에 집중했을 뿐, 지구의 70%를 차지하는 바다에 주목했던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 인식의 저편에 놓여있던 바다를 역사의 중심으로 끌어들인 책이 있다. 바로 주경철 저자의 <바다인류>이다.



<바다인류>라는 책 제목은 인류와 바다가 불가분의 관계임을 명확히 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기원이 바다라는 점, 그리고 인류가 바닷길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왔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따라서 인류의 역사는 그 시작부터 바다와 함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다인류>는 총 5부로 구성되며, 바다 문명의 발흥부터 현대 해양의 모습, 그리고 미래의 전망까지 폭넓은 세계사를 시대 순으로 조망한다. 나는 그 중에서도 내가 발 붙이고 있는 ‘아시아 해양 세계의 역동성’ 부분을 인상깊게 읽었다. 저자는 이 부분을 통해 아시아의 해양 역사가 세계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가정이 큰 의미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바다인류>를 읽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하나의 가설이 떠올랐다. ‘만약 중국과 로마가 서기 100년경에 조우하여 교류를 시작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하는 상상이다. 불교가 실크로드를 넘어 로마에 전파되어 서양 문화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거나, 로마의 다신교와 철학 사상이 동양 사상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중국의 뛰어난 제지술은 로마의 기록 문화를 혁신적으로 발전시키고, 나침반은 항해술 발달을 촉진하여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길을 열었을 것이다. 화약 기술은 로마의 군사력에 큰 변화를 가져왔을 수도 있다. 반대로 로마의 선진 건축 기술과 효율적인 도로 건설 기술이 중국에 전해졌다면, 도시 기반 시설과 토목 공학 수준이 한층 발전했을 것이다. 이처럼 동양과 서양이 더 일찍, 그리고 긴밀하게 융합되었다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전혀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는 단순한 상상이지만, 놀랍게도 역사 속에는 중국과 로마가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순간이 존재했다.


서기 97년, 한나라의 유능한 지휘관 반초는 서역 진출을 확대하며 로마와의 통교를 시도했고, 부장 감영을 로마로 파견했다. 당시 한나라는 로마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정보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을 대진국(大秦國, ‘Great China’)이라 칭했다고 한다. 감영은 힘든 여정 끝에 페르시아만까지 도달했으나, 현지 선원이 석 달 거리의 항해에 3년 치에 해당하는 과도한 비용을 요구하자 결국 로마로 향하는 배에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감영이 귀환한 지 불과 1년 후, 로마의 트라야누스 황제가 군대를 이끌고 페르시아만까지 진출했다. 두 제국이 눈앞에서 엇갈린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이후 로마는 페르시아 지역에서 철수했고, 중국 역시 서역으로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두 제국 사이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다. 만약 감영이 로마에 도착하여 서로의 문물을 교류하고 협력의 기반을 다졌다면, 인류 역사는 어떤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갔을지 상상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결국 <바다인류>는 인류의 역사가 육지만이 아닌, 광활한 바다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만들어져 왔음을 보여준다. <물고기가 그린 세계지도>가 우리의 시각을 확장시켜 주었듯, 이제 우리는 바다라는 새로운 렌즈를 통해 과거를 재조명하고, 현재를 이해하며, 미래를 그려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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