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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 인류학


[인류의 대항해] 서평 – 연안에서 수평선 너머로

작성자
유나
작성일
2025-05-10 01:40
조회
38

서평/인류의 대항해/2025.5.9./손유나

 

연안에서 수평선 너머로

 

옛사람들에게 바다는 미지의 영역, 그래서 신화와 전설이 깃든 공간이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바다 곳곳에 길을 내어 왕래했다. 위치를 확인할 최첨단 GPS도 없던 과거에 어떻게 이 수평선 너머로 육지가 있음을 확신하고 끝없는 바다를 항해할 수 있었을까? 기술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불가능한 일로 느껴진다.

브라이언 페이건은 인류의 대항해에서 인류가 어떻게 미지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는지를 주요 탐구 과제로 삼는다. 북대서양, 지중해, 몬순 세계, 남태평양, 북동태평양, 동태펴양과 카리브해를 주요 항해 무대로 삼아, 어떤 배가 어떤 경로를 항해했는지 살핀다. 저자 본인이 직접 카누와 보트를 조정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통적인 방식의 항해에 관해 서술하고 있기에. 옛날 사람들의 항해가 더욱 생생하고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바다 너머로 있을 육지

에게 해 키클라데스 제도는 여러 개의 섬이 연쇄적으로 줄지어 고리 모양을 이루고 있다. 빙하기 동안 이 지역은 모두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빙하기가 끝난 후,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섬이 분리되었다. 그 중 델로스 섬과 밀로스 섬에는 초기 인류에게 귀중했던 자원이 있었다. 델로스는 흑요석의 산지였고, 밀로스 섬은 화산암을 얻을 수 있었으며, 귀한 야생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다행히 키클라데스 제도는 수평선 위로 섬이 보이고, 섬에서 섬까지 카누를 타고 노를 저으면 하루 만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바다 건너 어떤 섬에 자원이 있었음이 중요한 정보로서 세대를 타고 전해졌고, 섬이 되어버린 그곳으로 항해하겠다는 결심은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빙하기를 살았던 사람들이 전해준 정보와 날아가는 새 떼, 멀리서 보이는 산불로 인한 연기, 바다에서 떠내려온 목재 등 수평선 너머로 육지가 있음을 추정할 수 있는 여러 정보가 모여 옛항해자들은 바다 너머로 육지가 있음을 확신했고 바다로 나아갈 수 있었다.

2. 연안 항해로 축적된 지식

인류 초기의 항해는 육지가 보이는 가까운 바다에서 시작되었다. 수천 년에 걸쳐 뱃사람들은 바다의 해류, 조수, 바람의 방향 등 바다에 대한 특성을 익혔다. 저자도 나침반이 무용지물인 바다에서 항해한 경험, 안개 낀 어느 날 발트 해에서 길을 잃고 19세기 해군 조사원이 남긴 발트 해 항해 교법을 참고해 지형지물을 따라 항해한 경험을 소개한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자연의 표지판이 얼마나 풍부하고 유용한지를 깨닫는다. 태양의 위치, 별의 위치, 해저 퇴적물, 바다 색깔, 특정 어류의 서식, 곶의 모양, 독특한 색깔의 절벽, 두드러진 수풀의 모양 등 수많은 자연적 요소들은 항해하는 데 유용한 길잡이였다. 이 정보는 세대를 거쳐 전승되었고, 인류는 연안 항해에서 충분한 지식이 쌓인 후에 비로소 먼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3. 직항로를 이용한 원해 항해

인류가 언제부터 육지가 보이는 곳을 떠나 수평선을 향해 항해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지만 5만 년 전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되었을 거라 추정된다. 원해 항해가 가능하기까지 인류는 여러 조건을 충족시켜야 했다. 연안 항해를 통해 축적된 지식과 선박 조종술은 기본이었고, 오랫동안 파도를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선체를 만드는 기술, 자연에 대한 신뢰와 대담함도 필요했다. 이 모든 것은 수천 년에 걸쳐 인류가 쌓아 올린 자산이었다.

그 중에서도 바람에 대한 신뢰가 원해 항해를 가능케 한 핵심요소였다. 태평양의 사람들은 계절풍을 파악하고, 바람과 반대 방향으로 노를 저어 나아갔다. 만약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바다의 흐름을 타고 돌아올 수 있으리라는 믿었기 때문이었다. 아라비아해에서 인도양으로 직항했던 사람들 또한 계절풍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여름철 몬순 계절풍을 타고 인도에 도착하고, 계절이 바뀌면 바람의 반대로 불어 수월하게 돌아올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었다. 저자는 육지가 보이지 않는 수평선을 향해 항해할 수 있음을 정신적인 도약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이 담대한 결단 또한 백지에서 시작하지 않았다. 바다에 대하나 지식뿐 아니라 용기와 대담함마저도, 수천 년에 걸쳐 항해를 통해 축적된 인류의 자산이었다.

4. 항해의 원동력

사람들은 왜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로 나아갔을까? 이에 대해 저자는 항해의 동기를 사회적 필요에서 찾는다. 많은 사회에서 장자가 재산과 지위를 물려받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차남 이하의 남성들은 자신이 살아갈 땅과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가야 했다. 그렇게 한 걸음씩 자신의 고향을 벗어난 결과, 수백 년, 수천 년에 걸쳐 인류는 바다 곳곳을 누비게 되었다.

또한 배에 실린 교역품을 보면 항해의 성격을 추론할 수 있다. 침몰선에서 발견한 교역품은 귀금속, 구슬, 상아, 직물, 향신료 등 대부분은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 아니라 기호품, 사치품, 혹은 군사적 목적의 물품이었다. 예컨대 고대 이집트는 삼나무 목재를 수입했는데, 이는 일상용이 아니라 신전이나 왕궁을 건축해 권위와 위엄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항해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서 사회적 지위와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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