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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 인류학


[인류의 대항해 서평] 항해의 시작

작성자
진진
작성일
2025-05-10 03:46
조회
36

 

항해의 시작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대형 크루즈를 타고 여행을 가는 이들을 보았다. 도시 하나가 떠다닌다고 할 정도로 배 안에는 수영장부터 쇼핑몰, 도서관까지 정말이지 없는 게 없었다. 망망대해 위에서의 삶이 이토록 호화로울 수 있다니, 인류의 항해는 이제 거대한 바다 앞에서 더 위대한 기술력으로 거침이 없어졌다. 초대형 크루즈는 폭풍우 치는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만 같다. 바다는 안중에도 없이 바다 위에 떠다니며, 땅 위에서 즐기던 것을 그대로 즐긴다. 바다를 항해하며 우리는 이제 바다를 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처음 바다를 나간 사람들은 어땠을까? 지금과 같은 항해술과 선박 건조술이 없었을 초기에 인류는 어떻게 바다를 항해했을까? 그때 사람들은 지금처럼 뛰어난 기술도 없었을 텐데, 왜 굳이 육지를 떠나 바다로 나아갔을까? 인류의 대항해(브라이언 페이건, 최파일 옮김, 미지북스)는 이에 대해 위험을 무릅쓰고 떠나는 모험이나 호기심이 때문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시작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무언가를 알기 위해 떠나는 게 아니라, 이미 알고 있기에 나갈 만해서 연안으로 대항으로 항해를 떠났다. 책은 시선이 항상 바다를 향해 있던 고대 항해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얼마나 바다와 친밀하게 관계 맺고 있었는지 보여준다.

어디에서나 바다는 그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여울이 저마다 그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해안선이 저마다 덴마크 해안의 교회에 해당하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41)

항해는 바다의 언어를 읽고 해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강의 어귀나 연안에서 뗏목이나 나무를 파내어 만든 배로 시작했을 최초의 항해는 그곳의 풍경이 의미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 이후에 이루어졌다. 그렇게 시작된 항해는 조금씩 반경을 확장해간다. 시야에 들어온 연안을 해독하고 그만큼 배가 나아가고, 또 그곳에서 보이는 바다를 해독하고 나아가고를 반복하며, 인간은 바다의 풍경을 전부 해독해가고 원양 항해까지 나가게 된다. 이때 사람들의 모든 감각은 항상 바다를 향해 있었다. 바다가 들려주는 소리, 너울의 방향과 모양, 새가 나아가는 방향, 밤하늘의 별, 바람의 감각 등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모든 일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이 주는 메시지를 읽어내려고 했고, 그 지식들을 입으로 전하고 몸으로 익혔다. 망망대해로 뻗어간 초기 인류의 항해는 이렇게 가능했다. 고대 인류에게 바다는 육지와 분리되어 있지 않고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풍경이었으며, 그 경계에 사는 이들에게 항해는 삶의 연장이었다.

태평양의 드넓은 바다에 펼쳐진 수많은 작은 섬들, 인류는 그 곳곳까지 왜 뻗어갔을까. 타이완 일대에서 출발해 수만 년에 걸쳐 동부 폴리네시아까지 도달한 라피티안들의 항해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기원전 1500년부터이다. 사회가 어느 정도 제도화되자 인구 압력으로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설 필요가 생겼다. 장자계승 중심이었던 라피타 사회에서 아우들이나 좀 더 대담한 자들은 카누 항해술을 이용해 원해의 섬들을 찾아 항해를 떠났고, 그들은 빠른 속도로 태평양의 섬들을 식민화했다. 또 다른 대양 인도양의 항해에서는 필요에 의한 소규모 거래가 연안을 따라 시작되고, 각 지점들을 연결하며 교역이 확대되었다. 배가 연결하는 지점들이 확대되자 교역하는 물품들도 다양해지고 양도 늘어났으며, 이에 따라 배의 모양도 변화했다. 또 항해의 초기에는 일상품들이 주되고 사치품이나 희귀한 물건들이 부수적이었다면, 14~15세기 항해에서 교역의 규모가 커지자 이것이 역전되어 사치품이 교역의 주가 되고 권력자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처럼 여겨지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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