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인류학
두 손으로 도구를 다듬었던 인류의 지혜를 배우자
[기술인류학] ‘작은 것이 아름답다’ 세번째 시간 후기
안녕하세요.
이번주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 7장부터 14장까지를 숨가쁘게 달려왔는데요.ㅎㅎ
7장은 적절한 토지 이용으로 저는 여기서 ‘적절한’의 기준은 뭘까?를 질문했습니다. 사실 질문만 던지고 말았는데요. 선민선생님은 이제는 질문을 던졌으면 텍스트에서 반드시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적절한’을 양적으로만 생각했는데 다양화와 분산화도 적절하다를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단일한 척도만 있으면 규모가 무한히 커지게 됩니다. 하지만 자연에는 척도가 많습니다. 4계절의 때에 따라서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이 다릅니다. 분산화는 무게 중심을 옮기는 일이기도 하고 힘을 조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름답다의 반대말은 지겹다라고 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겹다는 권태롭다는 말이고 표준화된 것입니다. 하나의 기준만이 적용될 때 삶은 권태롭게 됩니다. 아름답지도 않고요.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에서 인간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하나 싶었는데요. 바로 자연이었습니다. 자연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성장하지만 멈춤이 있습니다. 자연 세계는 규모나 속도 그리고 힘의 측면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도 자연의 일부입니다. 그렇다면 인간도 자기 균형 능력이 있으며 자신을 스스로 조절하고 정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은 이런 자기 균형, 자기 조절, 자기 정화의 미덕이 없습니다. 기술은 밥하는 것, 청소하는 것, 글쓰는 것 등 우리가 사는 모든 생활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일상에서 균형과 조절, 정화가 발휘되고 있나 싶었습니다.
중간 기술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자세로 돌진파(the forward stampede)가 아닌 귀향파(home-comers)의 자세가 있습니다. 돌진파는 현재의 대량 생산 기술을 밀고 가는 방식인데요. 여기에는 멈춤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 가라~라는 전진만 있으므로 자원 낭비와 인성이 망가지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에 반해 귀향파는 기술의 발전의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보는데요. 어디로의 전환일까 싶었는데 자연이었습니다. 런 귀향파의 자세에는 모두가 한 방향으로 쏠릴 때 그 방향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