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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인류학

두 손으로 도구를 다듬었던 인류의 지혜를 배우자

 

[기술 인류학] <작은 것이 아름답다> 세 번째 시간 후기

작성자
붱붱
작성일
2024-11-20 22:19
조회
34


기술 인류학이 현재 읽고 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 세 번째 세미나 때는 미자샘 과제를 중심으로 ‘적절한’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토론하며 시작했습니다. 흥미롭고도 놀라웠던 건 적절하다가 ‘다양하다’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아름답다’와 이어지는 개념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보통 적절하다 하면 양적으로 생각하기 쉬운 듯한데, 슈마허는 이 말을 질적인 차원에서 사용합니다. 아니, 질적인 차원에서야 우리는 비로소 ‘적절하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적절함의 예시로는 뭐가 있을까요? 계절이 있겠습니다. 자연은 여름이 되면 덥고, 겨울이 되면 춥습니다. 각 계절에 적절한 온도를 알아서 잘도 찾아갑니다. 그리고 인간도 자연에 포함되며, 인간 역시 응당 ‘적절함’에 도달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또 다른 말로는 ‘실질적이다’라는 말이 이번 세미나에서 주목받았는데요, 선민샘께선 우리가 읽은 부분에서 이 말이 유독 눈에 띄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거의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단어였어서 조용히 놀랐는데, 세미나를 통해 곱씹어보니 또 다른 맛이 느껴지는 말이었습니다. 적절하다와 비슷하게 실질적이다도 첫인상은 뭔가 경제적인 색채가 있는 듯한 느낌이 좀 드는데, 슈마허는 이 말 역시 인간적으로, 사회적으로 풀어가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는 기존의 타락해버린 경제 용어들을 성스러운 고도로 끌어 올리려는 것 같기도 합니다. 실질적이다는 ‘높은 동기’와도 연결이 되는데요, 이는 주입된 보편 도덕이라기보다는 실질적인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종류의 것입니다. 태도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부던히 ‘나’라는 존재에 대해 실험하는 태도.


근데 무턱대고 맨땅에 실험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실험 도구로서, 우리에게는 ‘인간적인 기술’이 필요합니다. ‘글쓰기’도 이러한 기술이 될 수 있겠죠. 글쓰기라는 기술을 통해 우리는 자기 균형과 조절, 정화의 미덕을 터득합니다. 이 글쓰기로 진짜 내가 직면한 일상의 문제를 풀어나갈 때, 이는 우리의 손을 쓰는 노동, ‘실질 노동’이 됩니다.


그리고는 ‘중간 기술’과 ‘귀향파’라는 말을 파악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슈마허는 거대 기술에 대항하여 중간 기술을, 돌진파에 대항하여 귀향파를 내세웁니다. 근데 왜 대항마들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을까 토론을 하였는데요. 먼저 중간 기술의 ‘중간’은 이 작은 신체와 저 큰 세상 사이를 ‘잇는’ 의미에서 이름이 그렇게 지어졌다고도 생각이 되네요. 그리고 ‘귀향파’는 토론에서 두 가지 의견이 나왔는데, 귀향의 ‘향’에 초점을 두어서 고향에 가는 문제, ‘자연’으로 가는 문제라는 의견과(선민샘), ‘귀’에 초점을 두어서 좀 더 동사적으로 “turn”, 고개를 돌린다, 방향을 튼다는 의미라는 의견이었습니다(유리샘). 흥미진진한 해석들이었는데요, 저는 ‘파’에 초점을 갑자기 두고 싶어집니다..는 말도 안되고, 귀파도 향파도 아닌 ‘귀향파’니까, 두 의견 모두를 슈마허는 포괄하고 있을 것이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또 ‘실질적이다’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더 나누어 보았던 것 같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실질적이다란 무엇일까요? 유리샘 과제의 제목이 참 ‘적절한’ 제목이었는데요, <수백만 개의 작업장>, 이 제목이 실질적인 공동체 풍경을 잘 드러내주는 것 같습니다. 한 마을에 우열이 가려지는(그러나 그 우열이 절대적이진 않은) 화목한 수백 만개의 작업장이 있습니다. 숙자는 만득이를 웃기기 위해 하루종일 고심해서 글을 씁니다. 만득이는 막례를 먹이기 위해 쌀을 씻고 불리고 합니다. 막례는 어슬렁거리다가 숙자 책상 위에 지우개 가루를 좀 치워줍니다. 서로의 구체적인 관계를 보며 적절하고도 아름다운 ‘함께’를 그려나가는 것, 그것이 슈마허의 ‘작음’이려나요?


슈마허가 다루는 모든 내용들은 근현대 사회에서 통용되는 생각들에 참으로 반하는 내용입니다. 근현대 사회의 생각은 ‘돌진파’적인 생각, 즉 경쟁적이고 획일화되어 있고 그 욕망이 무섭도록 동일한 생각, 그리고 그러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 거대한 흐름에 대항하려면(끌려가지 않으려면) 필요한 건 ‘용기’인 것 같은데요, 이 용기를 내는 일이 관건입니다. 더불어서 슈마허가 강조하는 절대적 자기 확신. 작음 즉 높음. 이 낯선 말과 뜻들을 기존의 관념들 사이에 강건히 자리잡게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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