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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인류학

두 손으로 도구를 다듬었던 인류의 지혜를 배우자

 

[기술 인류학] 내 손이 하는 일

작성자
coolyule
작성일
2024-11-20 23:01
조회
31

기술 인류학 2024-11-20 김유리

 

 

내 손이 하는 일

 

 

  내 손이 하는 일을 나열하자면, 아침에 전기 담요 끄기와 알람 끄기가 시작이다. 손은 전자 제품의 버튼을 누르거나 터치한다.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 커피 내릴 물을 끓인다. 주전자, 컵, 커피, 가스레인지 점화손잡이를 잡고, 옮기고, 돌리고, 내리고, 따른다. 책을 펴고 책장을 넘긴다. 공책을 펴고 연필을 잡고 쓴다. 노트북 전원을 누르고, 키보드를 두드린다. 휴대폰 액정을 터치한다.

  오전 내 들락날락하면서 쌀을 씻고 솥에 안친다. 국 끓일 재료를 다듬고 씻고 칼로 썬다. 불을 켜고 끓인다. 그릇에 밥을 담고 수저로 먹는다. 수세미와 세제를 사용해 그릇을 물에 씻는다. 용도별로 여러 가지 빗자루를 사용해서 마당, 현관, 실내를 쓴다.

  농사일은 시기별로 다른 데 요새 주로 하는 일은 작대기를 잡고 콩, 팥, 조를 두드려 터는 일이다. 처음 농사를 지을 땐, 작대기로 곡물을 털 때마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원시 인류가 뼈를 두드려대는 장면이 떠오르곤 했다. 이런 일을 손으로 일일이 한다고? 기계에 넣으면 한번에 탈곡이 될 줄 알았는데? 하지만, 밭에서 걷어 온 작물이 입에 들어가기 전까지 손이 많이 간다. 작대기로 털고, 망에 널어 말리고, 비오면 걷고, 다 털고 나서 키나 풍구로 바람에 까불리고, 체로 치고, 손으로 고른다. 그리고 나서야 부엌에 들어올 수 있다.

  열고 닫는 일도 많이 한다. 제일 많이 여닫는 문은 아마 냉장고 문일 것 같다. 현관문, 방문, 창문, 차문, 창고문, 비닐하우스문도 여닫고, 노트북, 공책, 책, 펜 뚜껑, 봉투와 택배 상자도 여닫는다. 옷과 안경을 입거나 쓰고 벗는다. 머리는 감거나 닦거나 빗는다. 수세미로 문지르고 걸레로 닦는다. 압정은 박는다. 옷은 건다. 빨래는 넌다. 카메라 셔터는 누른다.

  손은 도구를 잡고 사물과 접촉한다. 손은 도구를 잡거나 놓친다. 당기고 민다. 박고 뽑는다. 때리고 깎고 벤다. 꿰맨다. 자른다. 붙인다. 꿴다. 뚫는다. 짠다. 거른다. 붓펜, 연필, 볼펜, 만년필, 마커를 잡고 긋고 칠하고 쓰고 그린다. 지우개로 문질러 지운다. 손으로 사물을 직접 모아 올리고 뿌린다. 펼치고 접는다. 털고 갠다. 묶고 푼다. 뒤통수나 등 같이 눈길 닿지 않는 곳을 만져 확인하고, 간지러운 곳을 긁는다. 침을 바른다. 침을 꽂는다. 뜸을 뜬다. 건드렸다가 손을 뗀다. 비빈다. 주무른다. 손짓한다.

  잘 때가 되면 방에 이불을 깔고, 난방 기구 버튼을 누르고, 전등 스위치를 누르고, 안경을 벗고, 이불을 끌어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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