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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인류학

두 손으로 도구를 다듬었던 인류의 지혜를 배우자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나라는 세상의 고향

작성자
붱붱
작성일
2024-12-19 13:41
조회
103

기술 인류학 /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 24.12.19 /붱붱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나라는 세상의 고향

아마르티아 센의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은 마지막에 애덤 스미스와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의 주장을 가져오며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존중과 이해’를 이야기한다. 애덤 스미스는 노예제를 강력하게 반대하며 흑인 노예가 백인 노예 소유주보다 (특히 도덕적으로) 오히려 더 우월한 인간이라고 말한다. 라빈드라나트 타코르는 일부 인류가 겪고 있는 처참한 대우를 연급하며 그들이 기본적인 삶의 토대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피력한다.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존중과 이해’라는 말은 단순히 사람을 ‘계급’이나 ‘인종’으로 판단하지 말고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을 “근본적으로” 가치있다고 보아야 함을 주장하는 말이다. 아마르티아 센은 이와 같은 흐름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사회선택’과 ‘후생경제학’을 연구하며 이러한 생각을 쌓아간다. 보통 경제학은 인간을 자기 밥그릇 채우는 데만 관심이 있는 ‘이기적 존재’로 정의한다. 반면 아마르티아 센은 인간이 충분히 자기 이익(이기심)을 벗어나 선택할 수 있는 ‘도덕적 존재’로 정의한다.

주류 경제학에서 다른 이들과 같은 이야기를 하면 편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인정도 많이 받았을 테고, 외롭지도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사회선택이나 후생경제학을 초반에 연구할 때에만 해도 주변 사람들은 그 길은 힘들거라고 아마르티아 센을 만류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방대한 관심사를 가진 단 한 명의 친구(피에로 스라파)라도 있었고, 나중에는 점점 이쪽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 동료 교수들과 학생들이 생김을 목격하며 기뻐할 수 있었다. 

자서전은 대부분 아마르티아 센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20대 전후반)을 다룬다. 그는 자신이 어린 시절 겪은 충격적인 사건(1943년 벵골 대기근)의 슬픔과 그동안 만난 사람들과 그동안 다닌 세계 곳곳을 통해 ‘세상’을 구체화했다. 그리고 ‘가르치는 정체성’이 가장 크게 되었다는 그는 이제 ‘나’를 세상에 공급하며 뒤이어 올 사람들의 고향이 되어준다. 이 세상에 영향을 받아 내가 형성되었듯, 나 또한 이 세상에 영향을 준다. 이를 깊이 인식하는 이상, 아마르티아 센은 자기가 존중하는 사람, ‘도덕적 존재’가 스스로도 되어가는 그 여정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그것이 자신의 이론을 입증하는 가장 큰 ‘증거’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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