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인류학
두 손으로 도구를 다듬었던 인류의 지혜를 배우자
[기술 인류학] 돈벌이 밥벌이
『어떤 동사의 멸종』(1) / 기술인류학 김유리 2024-9-18
돈벌이 밥벌이
『어떤 동사의 멸종』(시대의창 2024)은 신기술의 등장으로 사라지는 직업들을 기억하기 위한 ‘비망록’다. 이 글에 등장하는 직업은 ‘청소하다’, ‘요리하다’, ‘운반하다’, ‘전화받다’, ‘소개하다’, ‘쓰다’ 같은 동사로 표현되는 일들이다. 돈이 안 되는 직종은 사라진다. 그런데 돈이 안 되면 일이 아닌가? 일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왜 일을 하는가?
일은 왜 하는가? 먹고 살려고. 일은 돈벌이자 밥벌이다. 그런데 돈을 벌지 않으면 왜 밥을 먹을 수 없는가? 돈을 주고 밥을 사 먹는 상품 의존 사회에 우리가 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일이란 노동, 더 정확하게는 임금의 대가로 하는 일인 임노동을 뜻한다. 임금이란 품을 판 대가인 품삯과 같다. 품이란 삯을 받고 하는 노동이다. 힘이나 수고가 들어가는 일을 해준 삯일꾼에게 치르고 얻는 노동력이다. 품은 빚질 수도 있고 갚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어떤 사람이 품삯 없이는 살아갈 길이 없다면? 전통 농경 사회에서 자작농은 자기 땅을 경작하기 위해 품을 사거나 교환할 수 있다. 그와 달리, 땅 없이 그날그날 품팔이로 살아가는 사람은 날품팔이 뜨내기다. 품을 파는 것 이외의 생계 수단이 없는 사람은, 품일의 종류에 따라 직종을 바꿀 수밖에 없다. 옷이 산업 생산물이 되기 전엔 삯바느질이라는 직업이 있었다. 세탁기가 등장하기 전에는 손빨래 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가 사라진 일들이다. 기계의 등장은 사람의 품일을 대체한다.
산업 사회에서 사람들은 노동을 팔아 돈을 사고 밥을 산다. 돈벌이나 밥벌이가 안 되는 일은 일로 치지 않는다. ‘벌이’는 일을 해서 돈을 얻거나 모은다는 말이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 경작을 ‘밭 번다,’ ‘논 번다’고 한다. 전통 사회의 일상 언어에 화폐 경제가 미친 흔적이다. 집에서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장에 팔기 위해서 작물을 재배하면서 생긴 말이리라. 돈이 되냐 안 되냐가 중요하다. 물론, 농부들은 돈이 안 된다고 경작을 멈추지는 않는다. 동네 할머니들은 땅에서 난 것들로 돈 만드는 법을 잘 알고 계시기는 하지만, 설령 돈이 안 된다고 해도 몸이 허락하는 한 농사일을 계속 하신다. 팔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식량하기 위해서”라며 논밭을 계속 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