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인류학
두 손으로 도구를 다듬었던 인류의 지혜를 배우자
[기술 인류학] 어떤 동사의 멸종 첫 시간 후기_노동의 희로애락
노동의 희로애락
“인간에게는 특정한 노동을 통해서만 발현되는 희로애락이 있다. 그 노동의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고통과 욕망을, 그것들의 색깔, 냄새, 맛까지 전부 기록하고 싶다.”(10쪽)
노동이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어떤 동사의 멸종』(한승태, 시대의 창)의 저자는 자신이 경험한 직업들을 통해서 ‘노동’이란 뭘까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 우리는 책의 목차, ‘시작하며:소개하다, 1부 전화받다, 2부 운반하다, 3부 요리하다, 4부 청소하다, 마무리하며:쓰다’ 중, 소개하다와 전화받다, 운반하다까지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많은 일들 중 왜 이 일들을 골랐을까요? 아마도 노동에 대해 그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과 관련이 있겠지요. 소개, 전화는 언어로 하는 일입니다. 언어, 말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주고받음으로써 A와 B를 연결하는 일이지요. 우리는 직업소개소가 사람들이 일을 구할 때 찾는 곳으로만 알고 있지만, 그가 경험한 그곳은 동네 사랑방처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직업소개소의 멸종을 ‘연결’의 끊어짐으로 봅니다. 반대로 콜센터는 철저히 혼자 일하는 곳으로 동료와의 연결이 차단된 곳이자, 고객과의 연결에서는 온갖 불만을 받아내고 죄송하다는 말을 로봇처럼 내뱉어야 하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사용되는 말은 진짜 누구를 향하고 있을까 싶습니다. 고객과 상담사를 전혀 연결시켜주지 못하고 있지요. 어떤 말을 주로 사용하느냐는 연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물류센터에서의 운반은 물건과 물건을 연결시키는 작업입니다. ‘전화하다’가 정신노동이라면, ‘운반하다’는 육체노동이라는 점에서 대비되기도 하지요. 물류센터의 일은 콜센터보다는 좀 낫습니다. 콜센터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우울증을 느끼는 사람을 볼 수 없습니다. 몸으로 하는 직접적이고도 구체적인 일, 일한 직후에 찍히면서 바뀌는 통장의 잔고가 ‘성장’했다는 직접적인 느낌을 줍니다. 또한 물류센터에서는 동료와의 협업이 중요합니다. 함께 일한 동료를 돕고 그로부터 받는 ‘인정’은 나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여기게 합니다. 노동은 그런 것인 거지요. 고되고 버겁고 참아내야 하는 일이지만, 그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성장하기도 하며,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임을 확인하는 일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직업으로써 어떤 특정 동사가 멸종되어가는 것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어떤 직업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에게 ‘그 노동을 통해 성장하고 완성되어 가던 특정 종류의 인간’(10~11쪽)이 사라지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동사들을 자신만의 방식(그 노동의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고통과 욕망을, 그것들의 색깔, 냄새, 맛까지 전부 기록하는, 10쪽)으로 부활시키고 독자들과 나눕니다.
서론에서 그는 가장 힘들었던 직업으로 콜센터 상담사를 꼽습니다. 지금 그들이 고통 받는 이유가, 100년 전 동화일보에 실렸던 전화교환수의 고충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날 먹고사는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것은 훗날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될 이들의 고통을 경감시켜 줄 수 있는 사회적 백신을 제조하는 것과 같다.”(12쪽)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미래에 비슷한 고통에 처할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지요. 저자의 입담(비유)이 너무나 현란해서 술술 읽으며 지나쳤는데, 세미나를 하면서 그리고 후기를 쓰면서 마음 한편이 찡~해집니다.
기술 인류학을 신청하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아 못했는데요. 후기로 읽으니 더욱 질투가 나는 세미나네요.
며칠 전 어느 대규모 시설의 접수 창구에 앉아서 순서를 기다리다가, 거기서 일하는 직원들이 극한 직업 체험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20분 대기에 앉아 있는 동안 접수표를 먼저 뽑으셔야 한다, 어머님은 59번인데 지금은 40번을 처리하고 있으니 번호가 불리면 오세요 같은 이야기를
무한 반복하는 데다가, 대부분 기다리는 분들은 급하고 화가 나있었고, 그 화를 참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진진샘의 후기를 읽다가 생각해보니, 콜센터 직원은 앉아 있고, 택배는 움직입니다. 서있기도 하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사람이 움직이지 않고 한가지 자세로만 계속 있어야만 한다면, 거기다 (어떻게 대응하더라도) 화가 날 준비가 된 사람들의 응대를 한다면 정말 못할 짓입니다.
반면 이 직업이 아예 사라지면, 그 질문과 민원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에 끊임없이 원하는 걸 번호 중 고르라고 하거나, 큰 소리로 니가 원하는 바를 키워드로 말하라고 해서(키워드로 이야기할 수 없거나, 키워드를 말하면 다시 말하라고 함) 가뜩이나 화가 난 사람들을 더욱 화가 나게 할 것 같습니다.
돈 안되는 사람, 혹은 잡은 물고기의 화는 고려하지 않는 방법이지요.
정말 생각할 점이 많네요. 이 책은 따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먹고 사는 일을 글로 남기는 일이 사회적 백신을 제조하는 일과 같다는 말이 인상 깊네요. 글쓰기는 배려하는 마음이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