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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인류학

두 손으로 도구를 다듬었던 인류의 지혜를 배우자

 

[기술인류학] 어떤 동사의 멸종

작성자
진진
작성일
2024-09-25 17:59
조회
52

기술인류학 / 어떤 동사의 멸종(2) / 2024.09.25. / 진진

 

어떤 동사의 멸종

 

어떤 동사의 멸종(한승태 지음, 시대의 창)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가장 먼저 밀려오는 감정은 분노와 절망이다. 한승태(그는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자신을 줄곧 한승태라는 이름으로 부르는데, 이 점도 인상깊었다.)는 프롤로그에서 콜센터가 제일 힘들었다고 말하며 자신이 쓰는 이 글을 백신제조에 비유한다. 100년 전 전화교환수들이 어떻게 일하며 살았는지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지금의 콜센터 상담사들의 고통이 계속되고 있는 게 아니겠냐는 이유에서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글에는 자신이 경험한 일들의 현장을 사람들에게 전달함으로써 미래에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줄여줄 수 있지 않을까는 희망이 담겨 있다.

날로 발전하는 기술로 세상은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인간들에게 더 가혹해질 것이다. 그는 에필로그에서 이누이트족과 텍사인의 우화를 들려주며, 고된 작업에서 마지막까지 남는 사람은 월등한 신체의 텍사스인이 아니라 상황(추위)이 악화된 것을 예상했던 작은 체구의 이누이트족이었다고 한다. 프롤로그에서 그가 밝혔던 이 책의 목적처럼 미래에 비슷한 일을 경험할 이들에게 그 일의 생생한 현장을 이야기해줌으로써 미리 대비하고 준비하게 하고, 그 면역으로 노동의 현장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길 바란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책을 덮으며 제일 처음 북받쳐온 감정이 분노와 절망이었으니 어쩌면 그의 목표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승태가 갈고닦은 비유로 인해 그가 힘들다 힘들다를 연발한 삶의 체험현장과도 같은 노동 현장과는 달리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낄낄거리기도 하고 가끔은 그의 고급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 네이버 검색을 이용하기도 했다. 현란하고 기발한비유는 그가 일하던 곳, 함께 일하던 동료를 생동감 있게 느끼게 해주었고, 전화받고 운반하고 요리하고 청소하는 직업을 그냥 힘든 일이 아닌 그 일들이 살아 있는 사람이 하는 것임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의도했던 그들이 어떻게 일하며 사는지를 보여주는 일은 성공했다. 그런데 그가 그걸 너무 잘해서 나는 오히려 더 이상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뭘 붙들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생각해볼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라는 외침이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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