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인류학
두 손으로 도구를 다듬었던 인류의 지혜를 배우자
[기술 인류학] 변기 뚫는 비트코인
기술 인류학 / 어떤 동사의 멸종(2) / 24. 9. 26. / 붱붱
변기 뚫는 비트코인
“니들은 변기 막히면 비트코인으로 뚫냐?” 한 유명 금융 회사 건물에서 일하는 미화팀이 일반 엘레베이터를 더이상 못 타게 하려는 직원들을 향해 던진 한탄 섞인 질문이다. 해도 해도 너무한 직원들의 ‘갑질’로 미화팀의 원성이 높아지자 엘레베이터를 못 타게 하려던 시도는 무마되었으나, 미화팀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했다. 직원들은 아직도 ‘변기 뚫는 비트코인’이 실존한다 생각하며 그 일의 실제 주체인 ‘미화원의 손’이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위 이야기는 한승태의 『어떤 동사의 멸종』에서 나오는 실제 사례이다. 이 책은 보통 잘 보이지 않는 직종에서 일을 한 저자가 그 현장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책이다. 그가 책에서 한 일들을 보면 다 참 고되고 무겁고 바쁘고 더럽다. 고된 사람들의 요구와 평을 들어주는 콜센터 일(1장), 무겁고 많은 짐들을 싣는 배송 일(2장), 끊임없는 요리와 쓰레기를 나르는 요식업계 일(3장), 더러운 얼룩들을 닦고 또 닦는 청소 일(4장).
신기하다고 느꼈던 건, 누군가는 하루도 못해 도망쳐버리는 그 너무나도 고된 일들을 하면서도 저자가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 이유로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그는 그 어떤 힘든 상황 앞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너무 싫은 동료를 만났을 때에는 콜센터 일을 했을 때 배운 팁, ‘마동석 테스트’를 시행하며 나름대로 그 감정을 승화한다. 여기서 마동석 테스트란 상대방을 근육빵빵 마동석이라고 생각하면 그 상대에 대한 화가 저절로 수그러지다는 상상법이다.
두번째로 이 책의 저자가 힘든 일에도 불구,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관찰’이다. 읽는 사람들이 글을 읽으면 그 자리에 직접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할 정도로 저자는 당시 현장을 대사 하나하나 아주 제대로 살린다. 그 정도의 자세한 묘사라면 아마 그는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 노곤한 몸을 끌고 어떻게 해서든 그날그날 자신이 겪은 풍경들을 바로 기록했을 테다.
세번째, 그는 자신의 일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안다. 그렇기에 그는 그토록 어려운 노동들에도 스스로를 그 노동에 잡아먹히지 않는다. 이 책의 제목은 ‘어떤 동사의 멸종’이다. AI라거나 기계 자동화 따위에, 잘 보이지는 않으나 돈이 그래도 들었던 일들은 쉽사리 대체된다. 그런데 그 일들이야말로 인간이 태어나자마자 취하는 동사들(대화하다, 이동하다, 먹다, 닦다)이다. 어쩌면 이러한 동사들의 멸종이 곧 순수한 인간의 멸종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그 동사들을 품은 일들을 생생히 기록함으로써 남기려고 했다. 더이상 “쓸쓸”해지기 전, 온기와 영혼이 그득한 인간이라는 존재를. 그렇게 저자는 ‘변기 뚫는 비트코인’이 아닌 ‘변기 뚫는 손’을, 자기가 겪은 진짜 현실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