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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인류학

두 손으로 도구를 다듬었던 인류의 지혜를 배우자

 

[전쟁과 농업] 먹는다는 것

작성자
진진
작성일
2024-10-16 17:17
조회
211

먹는다는 것

 

알약 한 알로 먹는 걸 대체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먹는 일이 참 고되다고 생각할 때 그런 바람이 올라온다. 하루하루가 바쁘고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민데, 그냥 가족들의 입 속에 알약 한 알씩만 털어 넣어주고 해결해버리면 좋겠다고 말이다. 식탁에 올려질 먹거리를 준비하기 위해 들여야 하는 시간과 노고에 비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음식들을 보면 허무하다는 생각까지도 밀려온다. 그런데, 전쟁과 농업(후지하라 다쓰시 지음, 최연희 옮김, 따비)를 읽으며 나는 먹는 일을 간편하고 신속하게 해결해버리고 싶어하는 내 마음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먹는 일을 뭐라고 생각했을까. 단지 주린 배를 채우고 영양소만 섭취하면 되는 일로 여기진 않았을까. 먹는 일이 과연 그런 것일까 하고 말이다.

이 책의 1장관 2장에서 사람을 먹이는 농업 기술과 사람을 죽이는 전쟁 기술이 같은 기술의 다른 이름임을 보았다. 그리고 3장의 기아로 본 20세기 정치에서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자행된 전쟁을 통해, ‘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을 아사로 몰아넣어 죽이는 전쟁 정치의 민낯을 보았다. 무기로 사람을 죽이는 눈앞의 전쟁 뒤에서 먹는 것을 차단함으로써,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만행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치가 이런 방식으로 향하게 된 데에는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인간의 마음이 있다고 한다. 이는 저자가 이 책의 머리말에서 언급했던 지금의 경쟁 시스템과도 맞물려 있다.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 안에서 그것의 문제를 보기란 아주 어렵고, 그 문제를 절감하더라도 시스템을 바꾸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먹는다는 산다와 떨어질 수 없다. 모든 생명을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먹는 일은 생명에게 아주 근원적인 일이다. 이 근원적인 일이 지금의 시스템, 즉 경쟁의 시스템 안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 책의 ‘4장 먹거리의 종언은 경쟁 시스템 안에서 먹거리가 만들어지고 소비되었을 때 우리 사회에 드러나는 문제들을 보여준다. 소수의 식품 관련 기업들이 방대한 먹거리 생산자와 소비자를, 먹거리 체계 전체를 좌우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먹는 일이 단지 그 음식이 내 입속으로 들어가 소화 대사되어 영양분이 흡수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먹는 일이 시스템의 영향을 받고 있고, 그 시스템이 먹는 자, 즉 생명의 근원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후지하라는 먹거리의 종언그 본래의 성질을 잃은 것이라고 정의하겠다고 한다(144). 나는 지금껏 먹는다는 것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본다. 내가 먹었던 것은 이미 그 본래의 성질을 잃어버린 건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이 책의 남은 부분과 함께 먹는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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