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인류학
두 손으로 도구를 다듬었던 인류의 지혜를 배우자
[기술 인류학] 전쟁과 농업(2) 후기
기술 인류학 / 붱붱
전쟁과 농업(2) 후기
지난 시간에는 <전쟁과 농업> 3, 4장을 읽고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3장을 통해서는 먼저 ‘빈민학’이라는 개념을 알 수 있었는데요, 이는 밥을 둘러싼 지식으로서 ‘진정한 지식’이라고 합니다. 세미나에서는 이를 ‘품성’(혹은 ‘품성학’)과 관련된 것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가령 먹는 것을 가지고 펼쳐지는 예의 같은 것이죠….
세미나 때 ‘먹는다’와 ‘뱉는다’의 차이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였는데, 유리샘의 성당에 대한 이야기가 재밌었습니다. 일리치의 <젠더>에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이 나오는 것 같은데요, 유리샘께서는 그걸 이 책과 이야기해보면, 로마네스크 양식은 ‘먹는’ 방식(모든 석상들이 성당 안에 들어와 있음), 고딕 양식은 ‘뱉는’ 방식(몇몇 석상들을 제외하고는 다 성당 밖으로 나와 있음) 같다고 하셨습니다. 건축물과 시대에 따라서도 그렇게 우리의 먹고 뱉는 양상이 드러난다니 정말 흥미롭고도 어떤 면에선 참 무섭기도(숨길 수 없다는 점에서) 하네요.
‘먹는다’와 ‘뱉는다’는 과식/폭식과 거식/편식으로도 볼 수 있었는데, 요즘엔 골고루보다도 이렇게 극단적인 식습관이 만연한 것 같아서 그 중간은 뭘까, 그리고 어떻게 균형잡게 섭취할 수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책의 145쪽에는 ‘먹거리의 특징’이 나오는데요, 저자 후지하라 다쓰시는 먹거리가 지닌 특징으로 첫째, ‘비내구성’, 둘째, ‘자연성’, 셋째, ‘정신의존성’을 들었습니다. 특히 두번째 ‘자연성’이 세미나 때 다시 얘기나누며 더 인상적이게 다가왔습니다. 우리가 먹는 것이 다 ‘동식물의 사체 덩어리’라는 사실, 우리는 레고 블럭 따위를 먹고는 도저히 살 수 없다는 것이 새삼 생경하게 다가왔어요. 쌀을 먹더라도 벼의 숨을 끊는 수밖에 우리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먹거리의 특징은 ‘생명’의 정의라고도 볼 수 있었습니다. 생명은 응당 부패하기 마련이고, 죽기 마련이고, 각종 감정에 휩싸여 있습니다. 우리는 먹어야 사는데, 그 먹는 것이 곧 살아있는 것들이라면, 살아있는 우리는 서로 살리고 있구나, 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세미나 끝즈음에는 즉효성에 대비되는 가치인 ‘즉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즉효성은 기술의 특성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이는 효율과 분업, 관료와 매뉴얼과 깊게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즉효성을 띠는 것은 뒤이어 폭력과 거칠음을 수반합니다.
반면 즉흥성은 여유, 센스, 재치, 순발력, 발랄함, 기발함, 직관, 통찰 같은 말들과 친밀한 말이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구체적이기도 하고, 많은 관찰을 요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먹는 것으로 치면 골고루 먹는 방식과 알맞게 자르는 일과도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순발력 있게 그때 그때 맞춰 조정하는 능력. 그런 게 있는 사람이 즉흥적 감각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즉흥성과 관련한 개념으로 <야생의 사고>라는 책의 ‘브리콜라주’가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브리콜라주는 ‘사냥꾼의 사냥 능력’을 일컫는 말로 우발적 필요와 연관된 것이었습니다.
즉효성과 즉흥성의 가장 뚜렷한 차이점으로는 ‘결과에 대한 태도’를 들 수 있었습니다. 즉효성은 결과에 굉장히 매몰되어 있는 상태라면, 즉흥성은 결과에 상관 없이 순간 순간을 그저 즐기는 태도라고 말이죠.
세미나 때 그동안 당연하게만 여기던 ‘먹는다는 행위’와 ‘먹거리’를 새로운 측면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기도 했고, 또 다른 당연한 사고인 ‘즉효성’에 대항하는 태도는 무엇인지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즉흥성’이라는 개념이 (그 이상적인 내용과는 무관하게) 조금은 멀게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즉흥성은 ‘관계를 보는 일’이라는 말을 다시금 곱씹어 봅니다. 이 말을 곱씹으면, 즉흥성이 ‘여유’라는 말과 비슷한 말이라고 해도 그게 마냥 발 뻗고 쉬는 여유라기보다는, 끊임없이 주변 관계를 관찰하고 느끼고 연구하는 훈련 속에서야 비어져 나오는 어떤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더 공부해보고, 터득해보고 싶은 가치입니다.
그럼, 함께 공부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