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인류학
두 손으로 도구를 다듬었던 인류의 지혜를 배우자
[전쟁과 농업] 세 번째 시간 후기_먹는다는 것
먹는다는 것
『전쟁과 농업』(후지하라 다쓰시 지음, 최연희 옮김, 따비) 1~4강에서는 즉효성을 원칙으로 하는 사회의 시스템 위에서 농업 기술과 전쟁의 기술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보여주었습니다. 적은 노력으로 최대한 빨리 큰 효과를 거두기를 목표로 하는 사회 시스템으로 인해, 거대 자본의 소수 기업들은 전 세계의 먹거리 체계를 좌지우지하게 되었고, 전쟁에서는 버튼 하나로 수많은 사람들을 살상하는 데 어떤 거리낌도 가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후지하라는 ‘5강 먹거리와 농업의 재정의, 6강 강의를 마치며’에서 인간의 삶의 근간을 이루는 먹는다는 행위에서부터 생각을 다시 해보자고 합니다. 도대체 먹는다는 게 뭔지 근본적으로 질문을 던져보고 작은 것부터 시작해보자고 말이죠.
뚫려 있다 – 연결
후지하라는 어느 날 산오징어를 먹으며 과연 그 오징어가 언제 사체가 되는 것일까를 생각다고 합니다. 그 경험으로부터 먹는 행위를 단순히 음식을 입에 넣기만 하는 일에 국한할 수 있을까 하고 질문해봤다고요. 그리고는 음식물이 입으로 들어가 소화기관을 통과해서 항문으로 배설되는 과정의 일로 생각해보자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먹는 일은 내 안으로 들어가는 데서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내 몸은 위아래가 뚫려 있어 매일 생태계를 받아들이고 배출하며 외부가 끊임없이 교류하고 있는 곳이 됩니다. 나는 생태계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며 외부와 항상 연결되어 있지요.
내가 먹는 일은 곧 세상의 생명들을 연결하는 일이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먹어야 할까요? 먹는다는 게 내 몸에 들어오는 것에서 끝나지 않기에 나가는 것까지 고려해서 생각해야 하는 일이 됩니다. 내 몸으로 들어온 것이 나를 통과해 다른 것들과 연결되니까요. 이렇게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우리는 잘 먹고 잘 싸는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후지하라가 이 시스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잘 먹는 일로부터 생각해보자고 하는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뚫려 있다 – 광활
먹는다는 걸 외부와의 연결로 보게 되면 ‘나’에 대한 생각도 달라지게 됩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나일까요? 나를 ‘내’ 신체로 끊어서 생각할 수 있을까요? 나의 배설물은 ‘벌레나 미생물의’ 먹이가 되어 생태계로 돌아갑니다. 그것은 언젠가 다시 내가 먹을 음식이 되고요. 나는 다른 모습이지만 자연의 일부로 이미 존재하고 있고, 자연의 수많은 생명들 또한 다른 모습으로 내 안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자연 안에 나 아닌 것이 없고 내 안에 자연이 아닌 것이 없지요. 외부로부터 경계를 치고 있던 나를 뚫려 있는 존재로 생각하게 되자, 협소하고 갇혀 있던 내가 광대하고 풍요로워집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책임의 문제도 다르게 생각하게 됩니다. 내 바깥에 나로 인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먹거리가 통과하는 내 몸의 관에 문제가 생기게 되면 그것이 생태계, 자연의 문제로까지 확장될 수가 있습니다. 반대로 나의 잘 먹음이 나를 살리는 일에서 끝나지 않고 우주를 풍요롭게 하는 일까지 확장됩니다. 또한 나의 먹음뿐만 아니라 내 옆 사람의 먹음도 내게 중요하게 됩니다. 나만 잘 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후지하라는 잘 먹는 일을 이런 차원에서 생각해봐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그의 이야기를 따라오며 먹는다는 것에 대해 재정의하다 보니, 세미나 시작에서 미자 선생님께서 말씀주셨던 것처럼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내가 먹는다, 식물을 기른다는 말이 참 오만한 말이었구나 하는 자각과 함께, 붱붱 선생님이 과제의 제목에 써주셨듯이 인간은 그저 통과하는 ‘관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전과는 좀 다른 측면에서 오늘 저녁 무엇을 어떻게 먹을까를 고민하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