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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인류학

두 손으로 도구를 다듬었던 인류의 지혜를 배우자

 

[기술 인류학] 2부 10장 요약: 거대 기술과 중간 기술

작성자
붱붱
작성일
2024-11-06 00:34
조회
58

기술 인류학 / 작은 것이 아름답다(2) / 24.11.07 /붱붱


2부 10장 요약: 거대 기술과 중간 기술

근현대 기술은 멈출줄 모르는 ‘거대 기술(super-technology)’이었다. 자연은 항상 멈출줄 안다는 점과 ‘인간’ 역시 이 자연에 속해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기술을 ‘비인간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리고 이 기술이 세 가지 위기를 야기한다. 첫째, 인간 본성이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둘째, 환경이 병들어가며, 셋째, 화석 연료(재생불가능한 자원)가 고갈되어 간다.

기술의 주요 임무는 생활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근현대 기술은 오히려 생활을 더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기술을 움직이는 데 인간이 너무 손쉽게 투입되는 바람에 그 사이 어떤 ‘자유 시간’도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미나에서 자주 사용되는 예시인, ‘세탁기 때문에 집안일이 더 많아진’ 격이다.

모든 개인의 총 사회적 시간(하루 24시간 총합) 중 실제 생산에 이용되는 부분은 (노동 인구, 생산 업무(유통 등 제외), 순수 근로 시간(휴가 등 제외)을 따지면) 대략적으로 3.5%다. 생산 시간의 비중이 이렇게 축소되면서 생산은 별 의미없는 것이 되었고, 거기에서 오는 기쁨과 만족감 또한 사라져버렸다.

이때 우리에게 ‘중간 기술(intermediate technology)’이 필요하다. 중간 기술은 과거 원시 기술보다는 우수하나, 거대 기술에 비하면 소박하다는 의미에서 저자인 슈마허가 이름붙인 것이다. 이 기술은 대량 생산이 아닌 ‘대중의 기술’(민중의 기술)이기도 하다. 중간 기술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자세는 ‘돌진파(the forward stampede)’가 아닌 ‘귀향파(home-comers)’의 자세이다. 전자는 현재의 방식(근현대 기술)을 더 밀고 나가면 우리가 직면한 세 가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 태도이고, 후자는 현재의 방식에는 문제가 있으므로 그 방향을 새로이 틀어야 한다고 ‘믿는’ 태도이다.

슈마허는 후자(귀향파)의 손을 들며, 기술 발전을 새로운 방향으로 틀 수 있을 거라고 힘주어 말한다. 인간은 작은 존재이다. 거대 기술이 아닌 인간의 실제 크기에 맞춘 중간 기술이 인간에게는 딱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이 아름다움에는 비용이 들겠지만, 가치 있는 일은 으레 비용이 들지 않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만 ‘용기’이다, 라고 그는 말한다.

이 장을 다 읽고 궁금한 점은, 왜 ‘작은 기술’이 아니고 ‘중간 기술’일까였다. 거대 기술에 대항하려면 ‘거대’의 반댓말인 ‘작은’이 나와야 하지 않는가? 단순한 생각이지만…. 그러고보면 ‘귀향파’라는 말도 ‘돌진파’에 반대되려면 ‘후진파’(적어도 ‘정지파’)가 나와야 할 것 같은데…. 어쩌면 슈마허가 하려는 바는 근현대 주류에 똑같은 기준으로 맞서려는 게 아니라 아예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똑같은 기준이라는 건 곧 논리 구조가 똑같다는 건데,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 같은 구조가 통하지 않는 아예 다른 삶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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