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인류학 연구실에서는 이렇게 지금 여기의 삶을 완전히 긍정하는 주인공들의 세계를 탐험합니다. 동화 속 주인공들은 정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자신을 만들어갑니다. 주인공의 삶이 어디로 이끌릴지는 아무도 모르고 정해진 것도 없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규정 지을 수 없는 존재들이 온갖 살 궁리로 복작거리는 숲에서 깔깔 웃고 떠들며 놀다 옵니다. 그리고 돌아온 그 자리에서 지금 여기의 삶에 감사하며 한 걸음 더 낯선 길을 나서봅니다. 필요한 것은 모든 우연을 수용하고 마음껏 상상하는 것 뿐!
[모던한 바다 엄마의 동화 읽기] 동화 속 먹고사니즘
동화 속 먹고사니즘
바다엄마
이 세상 가장 큰 고통은 무엇일까? 신체적 장애, 사람들의 비난, 지독한 냄새, 배고픔 등등…. 사람마다 느끼는 고통의 강도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각자 다른 고통을 느낄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안데르센은 최고의 고통은 배고픔이라고 말한다. 「빵을 밟은 소녀」에서 못된 소녀 잉거는 구두를 지키려고 어리석게 빵을 밟아 땅속 지옥에 떨어졌다. 지옥에서 잉거는 지속한 냄새와 점점 몸이 굳어져 버리는 고통, 땅 위에서 모든 사람이 자신이 사악하다고 비난하는 소리, 얼굴 위에 파리가 꿈틀거리며 다양한 고통을 겪는다. 이 모든 고통 속에서 가장 큰 고통은 바로 배고픔이었다. 잉거는 발밑에 아직 붙어있는 빵을 보았지만, 몸이 굳어져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지독한 고통을 느꼈다. 창자들마저 배고픔에 서로를 잡아먹었고, 그 빈 뱃속에서는 자신을 ‘사악한 잉거’라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배고픔이 가장 큰 괴로움이라는 사실이 의아했다. 나에게 가장 큰 고통은 몸이 굳고 눈만 움직일 수 있는 것일 것 같았다. 다시 생각해 보니 20세기에 태어났고, 진정으로 배고픈 경험이 없었다. 매일 삼시세끼 엄마가 따뜻한 밥을 차려주었고, 언제든 과자, 빵, 주스를 먹을 수 있었다. 티비로 아프리카 난민의 배고픔을 우연히 시청했고, 어른들의 보릿고개 이야기를 따분하게 들었다. 음식이 넘쳐나는 과식의 시대에 안데르센의 시대에 말하는 배고픔의 고통을 생각해 본다. 수많은 고통 속에서 잉거가 겪은 가장 큰 괴로움이 배고픔이라는 이야기는 인간 존재와 깊이 관련 있었다.
뒤집어진 빵의 위치
잉거는 어렸을 때부터 거만하고, 못된 아이였다. 파리의 날개를 뜯고, 쇠똥구리의 몸에 바늘을 꽂아 그들의 신체를 손상하며 즐거워했다. 잉거의 엄마는 잉거가 자신의 앞치마를 밟고 다녔다고 말했다. 잉거의 관심은 오직 자신의 화려한 옷과 신발뿐이었고, 자신이 이쁘고 잘난 존재라는 것을 과시하고 싶었다. 잉거가 벌을 받게 된 이유는 바로 자신의 옷과 신발을 지키기 위해 빵을 밟았기 때문이다. 잉거가 밟은 빵은 주인마님이 늙은 부모님에게 나눠주라고 한 빵이었다. 그 전에 잉거가 아무리 나쁜 짓을 저질러도 벌을 받지 않았지만, 입으로 가져가야 하는 빵의 위치를 발밑으로 뒤바꿨을 때 벌이 내려졌다.
그렇다면 밟는다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할까? 잉거는 남들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지옥으로 떨어졌을 때도 자신이 오물에 더럽혀진 줄도 모른 채 사람들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있다며 그들보다 자신이 더 나아 보인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거만한 시선은 주변 사람들과 세상 모든 것을 나를 지키는 수단으로 생각한다. 마님에게 빵은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었지만, 잉거에게는 자기 신발을 지키는 발 받침대에 지나지 않았다. 자신의 외모, 자신의 고통, 자신의 즐거움만 생각해 음식이 주는 참된 의미를 잊어버렸다.
구원의 질량보존 법칙
지옥의 기둥으로 몸이 굳어진 잉거는 어느 날 어떤 소녀의 눈물과 사랑으로 새로 바뀌어 지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늘을 나는 새가 되어 타자의 배고픔을 깨닫게 되었다. 추운 겨울 작은 새는 자기가 먹을 것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새를 나누어 주었다. 겨울 내내 나누어 준 빵 부스러기가 잉거가 밟은 빵만큼의 양이 되었을 때 작은 새에서 흰색 갈매기로 변했다. 자신의 욕심으로 버려진 빵을 세상에 돌려주었을 때 해님 속으로 날아갈 수 있는 거대한 흰 갈매기로 변했다. 자기밖에 몰랐던 잉거가 가장 큰 고통을 공감하며 자신의 빵을 나눠줄 때 더욱 하늘 높이 멀리 날아갈 수 있었다. 이 동화는 잊고 있던 음식의 의미와 타인과의 공감과 나눔의 의미를 알려준다.
동화를 살짝 비틀어보면 안데르센의 음식에 대한 관점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안데르센은 타인에 대한 공감과 애정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잉거가 빵을 이용했던 것 같이 구원의 수단으로 빵을 삼았다. 안데르센은 구원에 질량보존의 법칙을 적용해 밟은 빵의 양과 다른 새들에게 나눠준 양이 똑같아질 때 작은 새가 갈매기로 변화해 해님 속으로 날아간다. 땅속 깊은 지옥에 있었던 잉거가 해님으로 날아오르는 건 천국같이 느껴진다. 왜 안데르센에게는 천국으로 갈 때 빵의 양이 중요했을까? 못된 소녀 잉거가 회개한 후 작은 새로 그리고 큰 갈매기로 새롭게 변화했다면, 더 많이 나눠주면서 새로운 삶은 살 수 있는 이야기도 펼쳐낼 수 있다. 안데르센의 다른 동화에서도 먹는 장면은 자신의 경제력을 증명하거나 즐거움을 위한 작은 장치에 불과하다.
이는 현대인이 갖고 있는 음식에 대한 관점과도 닮아있다. 현대인에게 먹는다는 건 대부분 수단으로서만 작동한다. 단순한 생존의 수단을 넘어 즐거움의 수단, 과시의 수단, 돈벌이의 수단, 건강의 수단 등등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도구로만 여겨진다. 안데르센의 시대처럼 이제 배고픔의 고통은 느끼지 않지만, 과식으로 인해 수많은 질병을 얻었다. 음식의 풍요 속에서 음식의 숭고함은 잊혀졌고, 인간에게 질병의 고통이 주어졌다. 잉거 또한 나눔을 통해 배고픔의 고통을 승화시켰던 것처럼 먹는다는 것은 자신을 생존하는 수단에서 관계를 확장시켜준다. 우리가 나눌 수 있는 빵은 어느 정도 일지 동화를 읽어보면서 상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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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알면 배고파진다… 꼬르르륵
내가 나눌 수 있는 빵의 양은 얼마나 될까? 받은 것보다 더 보태서 나눌 수 있는지, 딱 그만큼만 나누는지. 빵을 나누면서 또 그 빵을 나눠먹을 관계까지 생각해보자! 연아샘 마음이 듬뿍 담긴 글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