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화인류학 연구실에서는 이렇게 지금 여기의 삶을 완전히 긍정하는 주인공들의 세계를 탐험합니다. 동화 속 주인공들은 정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자신을 만들어갑니다. 주인공의 삶이 어디로 이끌릴지는 아무도 모르고 정해진 것도 없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규정 지을 수 없는 존재들이 온갖 살 궁리로 복작거리는 숲에서 깔깔 웃고 떠들며 놀다 옵니다. 그리고 돌아온 그 자리에서 지금 여기의 삶에 감사하며 한 걸음 더 낯선 길을 나서봅니다. 필요한 것은 모든 우연을 수용하고 마음껏 상상하는 것 뿐!
[안데르센] 안데르센과 동화(2)
2024.12.13. 최수정
안데르센과 동화(2)
지금 동화인류학팀은 『안데르센 전집』 읽기가 끝나고 『안데르센 자서전』을 읽고 있다. 지난 시간 나는 그의 자서전 속 하나의 에피소드에 오래 머물렀는데, 안데르센이 동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런던 사람들은 모두 부지런하다. 거지도 마찬가지다. 거지에게는 사람의 관심을 얼마나 많이 그리고 집중적으로 끄느냐가 돈벌이와 직결된다. ……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가 뭘 해서 돈을 버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는 지체 높은 귀족 집안의 딸과 결혼해서 자식들도 낳고 살았다. 그는 날마다 일하러 나갔고 토요일이면 반짝거리는 은제품을 들고 왔다지만 가족들도 그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그들은 가장이 혹시 범죄와 관련된 일을 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걱정과 근심 속에서 하루는 그를 미행했는데, 알고 보니 거리를 청소하는 거지였다고 했다.”(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이경식 옮김, 『안데르센 자서전』, Human & Books, 483~484쪽)
현실과 동화
위의 이야기는 현실일까? 동화일까? 안데르센은 자기 자서전에 ‘내 인생의 동화’라는 부제목을 부쳤다. 안데르센 자신의 현실이 곧 동화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안데르센에게 동화는 무엇이었을까? 위의 일화를 읽으면서 나는 안데르센이 동화를 무엇이라고 생각했는지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안데르센은 동화를 결코 상상의 세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동화는 환상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현실에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현실 이야기였다.
안데르센은 자기가 인정받고 싶어 하는 계급과 정서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는 계급이 달랐다. 그리고 그 두 그룹 중에 자신이 친구가 되고 싶은 쪽은 상류층의 부자였다. 나는 안데르센을 읽으면서 원래 자기가 속한 하층 계급의 사람들을 연민의 눈으로 보면서도, 높은 상류층의 일원이 되지 못해 안달이 난 안데르센이 참으로 위선적으로 보였었다. 동화라기보다 온통 ‘자기’이야기로 가득 채운 것 같은 이야기들이 낯설고 이상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안데르센은 두 계급 사이를 오가며 서로의 계급이 현실로 느끼지 못하는 상대방의 실재 이야기를 동화처럼 들려주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상류층이 보지 못한 하류층의 이야기, 하류층에서 상상하지 못하는 상류층의 이야기가 서로에게는 너무도 낯설어서 마치 환상적 이야기처럼 들렸을 것이다. 안데르센은 두 세계를 모두 경험하며 그들 모두가 ‘자기’의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안데르센 동화, 자기 역할극
안데르센의 동화 주인공들은 주체를 주장하지 않는 옛이야기와 달리 강한 ‘자기’에 집중되어 있다. 그 ‘자기’는 나약함과 허영심뿐 아니라 영혼의 아름다움과 위대함까지 모두 가지고 있다. 때로는 미운 오리로, 인어 공주로, 성냥팔이 소녀로, 눈의 여왕으로 변신하는 ‘자기’는 안데르센의 분신이었다. 어떤 사물에나 자기 감정을 잘 이입하던 안데르센은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인형들에 자기 역할들을 나눠주었듯이 동화 속 주인공들에게 자기 역할을 하게 했다. 동화 속에서 시간과 공간, 인간과 비인간, 신분의 차이를 넘나들며 역할을 바꾸고 살아가는 주인공들은 모두 안데르센 자신이었다.
“말로 하는 구걸은 금지되어 있었다. 거지들은 남녀 할 것 없이 ‘배가 고파요! 자비를 베푸세요!’라고 쓴 판자를 가슴에 달고 있었다. 그들은 감히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다만 그림자처럼 우리 주변을 미끄러질 뿐이었다.”(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이경식 옮김, 『안데르센 자서전』, Human & Books, 482쪽)
안데르센 시대의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 목소리로 말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던 것일까? 자기 말 한마디 못하고 지배층의 이데올로기가 투영된 글로써만 자기를 표현하는 시대에서 안데르센은 동화를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낼 기회를 주고 싶었다.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자기’를 발견했다. 안데르센은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이 시인이 되고 싶다고 하는데, 시인은 위대한 영혼을 갖고 있다. 위대한 영혼은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 수많은 ‘자기’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기 영혼 앞에 펼쳐지는 환상적인 광경을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이다.
안데르센은 문자를 써야 한다면 그 문자가 누군가의 직접적 목소리처럼 진실되게 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데르센은 자신의 동화를 낭송하기 좋아했다. 그는 낭송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가 두 계급의 공동체적 집단성을 오갈 수 있기를 바랐다. 문자로 쓰여진 안데르센 동화가 낭송되면서 문자를 알지 못하는 계층과 문자를 알고 있는 계층 사이에서 공동 정서가 촉발되기를 기대했다.
오선민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안데르센이 동화를 쓴 이유는 ‘주관화된 목소리를 문자화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동화를 통해 안데르센은 자기의 주관적 정서를 드러내는 표현을 만들고 싶었다. 동화 속 주인공들의 말이 낭송하는 자의 입을 통해 재생될 때 듣는 사람들은 목소리가 주는 힘에 사로잡혀 공동의 진실을 확인하기를 바랐다. 안데르센이 쓰고 싶었던 동화는 다채롭고 다양한 개인적 진실이 드러나는 이야기였다. 안데르센은 그 집단성의 진실을 위해 동화 속 자아로 자기 배역을 수행하고 있었다.
현실의 그림자
안데르센 동화는 ‘그림자처럼 우리 주변을 미끄러진’ 이야기다. 그가 살던 도시의 어두침침한 뒷골목이나, 눈이 멀 정도로 화려한 궁정의 파티 장면이 같은 배경으로 이용된다. 안데르센에게 동화는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 어둠과 빛이 항상 같이 존재하듯 늘 함께 붙어있는 현실의 그림자이다.
안데르센은 우리 삶을 건강, 행복, 기쁨, 해악과 쓰디쓴 불행이 든 잔을 마시는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잔에 든 모든 것을 마시고 나면 죽는다. 그러나 안데르센은 죽기 전에 수많은 ‘자기’의 배역을 동화 속 주인공들에게 맡겨 놓았다.
안데르센이 그토록 좋아하는 ‘아름다움’이란 단어는 인간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다른 존재들의 눈으로 변신했다. 데이지 꽃, 야생 백조, 황새들, 장미, 전나무, 종, 옷깃, 아마 등은 안데르센의 다른 ‘자아’다.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자는 자기 주변에 어른거리는 자기 그림자들을 알아본다. 그리고 그림자에게 말을 거는 순간 정서적으로 연결된다.
안데르센은 그 연결의 이야기를 동화라고 불렀다. 그 세계에서 나의 다른 자아가 나의 또 다른 가능성의 세계를 살며 ‘자기’를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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