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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인류학 연구실에서는 이렇게 지금 여기의 삶을 완전히 긍정하는 주인공들의 세계를 탐험합니다. 동화 속 주인공들은 정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자신을 만들어갑니다. 주인공의 삶이 어디로 이끌릴지는 아무도 모르고 정해진 것도 없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규정 지을 수 없는 존재들이 온갖 살 궁리로 복작거리는 숲에서 깔깔 웃고 떠들며 놀다 옵니다. 그리고 돌아온 그 자리에서 지금 여기의 삶에 감사하며 한 걸음 더 낯선 길을 나서봅니다. 필요한 것은 모든 우연을 수용하고 마음껏 상상하는 것 뿐!

[안데르센] 동화로서 영원을 꿈꾸다

작성자
오켜니
작성일
2024-12-21 23:53
조회
114

동화로서 영원을 꿈꾸다

 

영발약사

 

올해 9월부터 시작된 안데르센 동화인류학 수업이 1219일에 마감되었다. 우리는 안데르센 동화와 자서전을 읽으며 안데르센의 내면과 외형에 다가가려고 애썼다. 안데르센은 인간의 유한성을 넘어 영원을 꿈꿨고 이야기가 살아남아 전해지길 소망하였다. 그의 꿈은 안데르센 동화라는 장르로 성취되었다. 안데르센은 구두 수선공의 아들에서 왕의 마차에 탄 동화작가가 되었으며 남녀노소는 물론 가난한 이들의 사랑까지 받았다.

1800년대의 그는 지금의 나와 너무 닮은꼴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목적을 향해 달리라고 부추긴다. 늘 여행 중인 그는 뿌리 없이 부유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는 상류층과 대중에게 끊임없이 인정받기를 원한다. 나는 많이 먹고 많이 소비하며 바쁘게 일했지만 마음은 늘 허기져 있다. 안데르센 시절의 사람들은 농경에서 뿌리뽑혀 도시로 내몰렸고, 지금의 나는 자연에서 뿌리뽑혀 인간들만의 질서에 내몰려있다. 그래서인지 인간들만의 질서가 덜 보이는 안데르센의 초기 동화가 더 좋았다.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안데르센의 삶을 지켜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안데르센을 연구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지금의 나를 알기 위함일 것이다.

 

극복되어야 할 지금 여기

1805년 안데르센은 덴마크 오덴세에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가난하여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안데르센에게 아라비안 나이트와 홀베르트의 희곡을 읽어준다. 그리고 기독교적 통념을 거부할 정도로 선진적인 사람이었다. 빨래 일을 하던 엄마는 청소와 정리를 잘하는 분이었다. 자서전에 그려진 어린 시절 안데르센 가정의 모습은 가난하기보다는 예술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안데르센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과장하고 있나 싶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집안의 정서적 분위기가 중요하고 아이들은 절대적 가난을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11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는 집에서 홀로 연극을 하고 인형 옷을 만들며 논다. 아버지의 사망 후 그의 어머니는 젊은 수공업자와 재혼을 한다. 그 남자의 집안은 자기들보다 계급이 낮다는 이유로 안데르센과 안데르센 어머니의 인사를 받지 않는다. 평민들이 구두 수선공 집안을 무시할 정도인데 귀족들이나 관료직에 있던 사람들에게 안데르센은 얼마나 못나 보였을까? 사람들은 안데르센이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허영심이 많고 신분 상승을 위해 상류층만을 상대한다고 생각한다. 안데르센은 그들에게 놀림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

안데르센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 이후 자서전에서 사라졌다가 사망 소식에서 모습을 아주 짧게 드러낸다. 그는 출신 계급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어머니를 만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그녀의 재혼으로 어머니를 편하게 만날 수 없었던 것일까? 안데르센의 나이 28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가 아직 성공하기 전이다. 죽음이 그녀를 가난에서 구해주었기 때문에 죽음은 어머니에게 가장 잘된 일이라고 안데르센은 생각한다.

이 부분에서 안데르센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자서전에는 어머니뿐만 아니라 덴마크 자신의 집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결혼을 하지 않아 가정을 이루지 않은 안데르센은 늘 여행 중이었다. ‘어머니이 없는 안데르센은 돌아갈 곳이 없이 떠도는 외로운 나그네처럼 보인다. 가족 삼각형으로서의 집이 아닌, 마음속 뿌리로서의 어머니이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 사망 사건에서 안데르센의 죽음관을 엿볼 수 있었다. 동화 곳곳에서도 그의 죽음관은 비슷하게 출연한다. 가난은 현실에서 극복되지 않고 죽음에서 극복된다. 그에게 죽음은 현실의 고통이 끝나는 지점이다. 그의 죽음관은 그가 지금 여기를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보여준다. ‘지금 여기는 끝없이 극복해야 할 무엇이다. 그는 현실에서 끝없이 목적을 향해 달리고 죽음에 이르러야 쉴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늘 불안하다. 비평가와 대중으로부터 칭찬을 들어도 비난을 들어도 좌불안석이다.


구어체로 만든 이야기

그의 첫 소설인 즉흥 시인1835년에 출간되었고 덴마크가 아닌 스웨덴, 영국 등에서 먼저 호평을 받았다. 그는 같은 해에 어린이들에게 들려주는 놀라운 이야기들을 내놓는다. 이것이 안데르센 동화의 시작이었다. 그는 동화를 놀라운 이야기’, ‘작은 이야기로 표현하고 있다.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의 음조가 그의 귀에 아주 생생하게 남아 있었기에 옛날이야기를 자신의 방식으로 새롭게 엮어 나간다. 그는 할머니가 말하듯이 구어체로 이야기를 만든다. 아이들의 품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해로운 이야기다, 유치하고 상스럽다 등의 냉혹한 비판에도 안데르센은 밀고 나아갔다.

처음 내놓은 놀라운 이야기는 아이들과 성인 모두를 대상으로 하였지만 단지 제목에 어린이를 넣은 것이다. 제목에 넣은 어린이라는 표현은 안데르센을 창작의 세계로 밀어 넣는다. 안데르센은 이야기를 읽는 사람이 감정 표현을 보다 잘 할 수 있게끔 구어체를 다듬어 간다. 안데르센의 놀라운 이야기는 희극 무대에도 변화를 만든다. 희극 무대에는 연설조의 대사가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 거기에 구어체의 발성법이 도입된 것이다. 연극을 연설조로 했다니 우리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는 매년 크리스마스 무렵에 놀라운 이야기들을 발표한다. 작고 놀라운 이야기를 통해 안데르센은 덴마크에서 인정받는 작가로, 문학계에서 그만의 뚜렷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리얼리티보다 판타지

안데르센 자서전에 그의 성정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그는 일생의 많은 시간을 여행에 쏟아붓고 다른 나라의 문물과 명사들을 만나고 다닌다. 글감과 상상력을 자극할 풍경을 찾아다닌 것이다. 1857년 디킨스의 집에서 몇 주간 머무른 안데르센이 자신의 작품에 대한 혹평에 우울해하자 디킨스는 그의 마음을 풀어주고자 애쓴다. 디킨스는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안데르센과 함께한 시간이 너무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때로 안데르센은 자기중심적인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었던 것 같다. 내 주변에도 위로가 필요한 50대가 넘쳐난다.

1863년 그의 조국은 독일과 전쟁을 하게 된다. 그는 덴마크 병사를 응원할 수도, 친구들로 가득한 독일을 응원할 수도 없다. 그는 전쟁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작품에 전념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보다 그저 누군가 이 상황을 끝내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는 오로지 신에게 의지한다. 그는 혼란을 견디지 못하는 결벽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대중의 시선 때문인지 자신이 이룬 사회적 위치 때문인지, 그는 전쟁을 반대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전쟁에 대해 깊은 사유를 하는 것도 아니다. 상상보다 현실이 더 위력적인 힘으로 다가올 때 그는 나약하다. 그는 바다를 건너는 것이 무서워 바다 여행은 되도록 피한다. 전쟁과 바다, 현실의 거대한 힘을 보여주는 테마 앞에 그는 무력하다.

구연의 맛

안데르센 자서전의 곳곳에서 그는 동화 구연자로서 무대에 선다. 그는 왕과 왕비, 노동자, 대학생, 아이들에게 자신의 동화를 읽어준다. 그의 동화 구연을 들은 사람들은 감동하여 그의 숙소에 깃발을 들고 찾아온다. 안데르센은 자신의 동화를 읽는 구연자가 감정 표현을 더 잘할 수 있게 썼다. 그래서 우리는 안데르센 동화를 눈으로 읽기보다는 입으로 읽어야 한다. 눈으로 읽으면 줄거리를 찾고 교훈을 찾으면서 내용을 종합하기에 급급한데, 입으로 읽어보니 동화의 구석구석까지도 주의를 기울일 수 있었다. 우리가 동화를 읽는 것은 내 눈에 잘 보이지 않던 세상의 구석구석을 더 잘 살피기 위함일 것이다.

 

안데르센을 만났던 3개월의 여정을 마감한다. 안데르센 동화를 한참 읽을 무렵, 하늘을 나는 새떼들을 한동안 넋을 놓고 쳐다보았다. 동화를 읽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새의 이동이 눈에 들어왔다. 안데르센의 불안,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망, 목적추구, 자살 충동은 요즘 현대인의 정신 병리적 현상이기도 하다. 안데르센의 자연물에 대한 묘사는 나에게 새로운 눈을 장착해주었지만 그의 인간적 모습은 현대인들을 너무 닮아 마주하기 힘들었다. 더 많은 세상에 대한 이해가 자라나서 안데르센을 다른 모습으로 발견할 그날을 고대하며 애증의 안데르센을 떠나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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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24 00:15

    자기 나라 덴마크를 떠나 자주 먼 나라로 여행하기를 좋아했던 안데르센이 어쩌면 자기 내면으로부터 도피하는 방법으로 외국을 선택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근대의 시작점에 서 있었던 안데르센에게 ‘자기’란 가늠할 수 없는 ‘심연’같은 것일 수도 있었겠어요. 자기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이 무서워 자꾸 자기 바깥을 보는 것으로 불안을 달랬던 것 같아요. 그가 마치 출렁이는 바다의 깊고 검푸른 깊이를 두려워했던 것처럼요. 안데르센 동화 읽기가 끝났지만, ‘자기’를 자각하기 시작하는 인간의 혼란스러운 정서를 떠올릴때마다 안데르센이 생각날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안데르센을 함께 읽은 옥현샘과 나눌 이야기가 늘어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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