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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인류학 연구실에서는 이렇게 지금 여기의 삶을 완전히 긍정하는 주인공들의 세계를 탐험합니다. 동화 속 주인공들은 정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자신을 만들어갑니다. 주인공의 삶이 어디로 이끌릴지는 아무도 모르고 정해진 것도 없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규정 지을 수 없는 존재들이 온갖 살 궁리로 복작거리는 숲에서 깔깔 웃고 떠들며 놀다 옵니다. 그리고 돌아온 그 자리에서 지금 여기의 삶에 감사하며 한 걸음 더 낯선 길을 나서봅니다. 필요한 것은 모든 우연을 수용하고 마음껏 상상하는 것 뿐!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2/12수업후기] 경작의 필수요소, 주술

작성자
오켜니
작성일
2025-02-23 02:25
조회
42

경작의 필수요소, 주술

 

영발약사

 

2025년 동화인류학 첫 시즌을 여는 책은 브로니슬로 말리노프스키의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Coral Gardens and Their Magic)이다. 책 제목의 ‘garden’은 우리나라 말로 경작지로 번역되었다. 뉴기니 트로브리안드 군도의 토착민에게 경작지는 먹거리가 생산되는 땅이자, 가꿔지고 장식된 정원의 의미가 들어가 있다. 실제로 그들은 경작지의 심미적 요소에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이 책에는 1910년대의 트로브리안드 군도의 모습이 흑백사진으로 인쇄되어 있는데 이 사진을 통해 그들 경작지의 풍성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해서 볼 점은 경작()’와 주술이라는 것이다. 먹거리를 내어주는 땅에 대한 주술이다. 농업과 주술이 아니라, 농토와 주술인 것이다.

 

공공적 주술, 사회조직화 주술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은 자신이 믿는 신에게 경제적 풍요를 빌어왔다. 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날씨 때문에 농사가 어려울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예상했던 것보다 수확량이 좋을 수도 있다. 인간의 능력이 가닿지 않는 부분에 대해 신에게 간청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트로브리안드인들의 주술은 공공적이며 비밀스럽지 않다. 경작지에서 주술은 주술사와 복사들만이 할 수 있지만 그 내용을 마을 사람들도 모두 외우고 있다. 이 주술들은 사적인 목적이 아닌 공동체의 풍년을 위한 주술이다. 주술사의 특권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주술사는 일반인보다 농사일을 더 잘해야 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주술사 바기도우는 기상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계절과 날씨를 고려해 땅을 두드려 깨우고 마을 부족민들을 깨운다. 주술사는 마을 부족민들이 계절의 리듬에 맞는 활동을 하도록 추동한다.

트로브리안드인들은 게으름을 피우며 주술에 기대어농사가 잘되길 바라는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잉여의 식량을 원하고, 더불어 잉여의 노동을 경작지에 쏟아 붓는다. 말리노프스키의 진술을 토대로 트로브리안드인들이 얼마나 땅에 노력을 들이는지 느껴보자.

 

당신은 산악지대의 숲이나 사고야자 습지, 혹은 랄랑 대초원 지대의 어느 곳에서보다 트로브리안드에서 땅이 훨씬 더 높이 평가될 뿐 아니라 매우 세심하게 나누어지며 더욱 효과적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첫눈에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심지어 트로브리안드 군도를 잠시 방문한 민족지학자조차 인구의 조밀도와 경작지의 면적, 그리고 경작의 다양성과 철저함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그는 또한 그 지역에서는 경작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자생적인 성장에 내맡겨진 땅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점을 발견할 것이다. (중략) 이곳 사람들이 결코 하루하루 근근이 먹고살지 않으며, 오히려 수확물에 의지해서 견실한 부의 토대를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매우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같은 책, p71, 강조는 인용자)

 

신화, 사회적 헌장

 

오선민 선생님은 이번 시즌이 인간은 이야기를 왜 하게 되었을까?’라는 의문을 풀어가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선생님에 따르면 신화는 만물의 기원담이며 동화는 신화의 찌꺼기이다. 트로브리안드 군도에서 주술사가 모든 예식을 주관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주술 내용을 알고 있고 읊조린다. 그들은 신화를 품은 주술 속에서 하나의 테두리 안에 있다. 말리노프스키는 신화가 현재의 관습과 태도와 행위를 정당화하고 합법화하는 기능을 하며 사회적 헌장의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즉 신화는 현재의 권위나 제도를 정당화하고 합법화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불러내고 참조하는 헌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진주를 캐서 팔라고 유혹하는 유럽 상인들에게 트로브리안드인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그들은 부족 신화에 대한 믿음으로 자신들의 전통과 관습을 엄격하게 고수한다. 유럽인들이 갖가지 유인책으로 진주 채취를 요청해도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프랑스의 귀부인이 남태평양 부족의 장식품에 반응하지 않듯이, 트로브리안드인들은 유럽인들의 제조 생산물(유럽인들은 부족민들이 좋아하는 장식품을 만들어서 진주와 교환하려고 시도한다)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유일하게 담배가 그들을 유혹하지만, 진주 채취는 특정 공동체가 하도록 옛날부터 정해져 있기에 그들은 이웃 마을의 권리를 침범하지 않는다. 그리고 진주를 채취하는 마을이더라도 농경이 가장 중요하고 부족 간 계약에 따라 고기잡이 원정을 떠나야 할 때가 되면 고기를 잡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전통에 대한 복종과 부족의 명예심을 지키는 것이다. 명예는 관계에서 나온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툴라와 캄코콜라

 

그들은 경작지에 예술을 하고 주술을 행한다. 화전으로 깨끗하게 치워진 경작지에 고르게 생긴 나뭇가지를 사각형으로 배치한다. 이 나무를 툴라라고 부르는데 경작지의 소구획을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툴라가 만든 사각형들은 일의 소요시간을 추측하게 해주고, 각 구획마다 같은 양의 모종을 분배하는 것에 쓰인다. 경작지 소구획의 네 모퉁이에 캄코콜라가 세워지면 평면적이던 밭은 3차원의 밭으로 변신한다. 캄코콜라는 수직으로 올라간 장대와 이 장대에 기댄 두 개의 장대로 이루어진다(수직으로 올라간 장대는 부족민들이 정글에서 힘들게 가져온 것으로 높이는 3-6m에 이른다). 평평한 땅에 놓인 툴라와 수직의 캄코콜라는 서로 연결된다.

캄코콜라는 경작지에서 제일 중요한 주술적 벽(삼각형 모양의 장대지만 그들은 벽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이다. 타이투의 덩굴줄기는 캄코콜라를 의지해 튼튼하게 기어오를 것이다. 그에 따라 타이투의 뿌리가 땅속에 깊이 닻을 내릴 것이다. 하늘로 올라가는 줄기와 땅 속으로 향하는 뿌리 사이에서 타이투의 덩이줄기는 점점 흙 속에서 부풀어 갈 것이다. 캄코콜라는 하늘로 땅으로 향하는 생명의 징표이고 주술사는 캄코콜라에 대고 주술을 행한다. “그는 자신의 숨이 경작지 소구획에 거침없이 퍼져나갈 수 있도록 큰 목소리로 주문을 읊는다. (중간 생략) 그는 자신의 목소리와 그 속에 담긴 주술적 효력이 밭 위에 넘쳐흐르고 땅을 관통하도록 한다.”(같은 책, p307)

이들의 농사에 경작지 주술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경작지 주술과 경작 작업은 하나의 연속적인 이야기로 엮여 진행된다. 토착민들은 주술을 농작물의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천연 비료로 여긴다. 주술이라 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다고, 될 수 있다고, 그대 믿는다면.”이란 가사의 말하는 대로’(유재석과 이적)이다.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트로브리안드인들인 것 같다. 이들은 말과 이야기의 힘을 믿는 것인가? 초자연적인 힘을 말을 통해 구현하는 것일까?

트로브리안드인들이 농사짓는 이야기가 이리 재미있을 줄은 진정 몰랐다. 1910년대의 트로브리안드 군도는 먹고 사는 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 초자연적인 힘을 믿는 일이 하나로 통합된 곳이었다. 자신의 경작지와 농업 생산물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전시하는 그들의 정신적 포만감이 제일 부러웠다. 동화인류학 연구팀은 이 책을 통해 말리노프스키와 주술사 바기도우를 연구하고 이 책의 신화와 주술을 따로 정리하여 해석해보려고 한다. 오선민 선생님의 지도 아래 닻은 올라갔다. 잘할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있다고 말하고 믿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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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25 17:31

    드디어 2025년 동화인류연구실이 열렸군요. 새로 연구회 회장님이 되신 옥현샘 축하드립니다!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을 읽으면서 이 책이 동화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던 제가 부끄럽습니다. 경작지에 직접 자기 숨을 들이며 땅속에서 싹을 틔우기를 염원하는 주술사를 보면서 그것 자체가 신화, 이야기의 전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작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경작과 주술, 인간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는 것 같아서 알 수 없는 기대감이 들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세미나도 잘 부탁드립니다 반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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