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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인류학 연구실에서는 이렇게 지금 여기의 삶을 완전히 긍정하는 주인공들의 세계를 탐험합니다. 동화 속 주인공들은 정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자신을 만들어갑니다. 주인공의 삶이 어디로 이끌릴지는 아무도 모르고 정해진 것도 없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규정 지을 수 없는 존재들이 온갖 살 궁리로 복작거리는 숲에서 깔깔 웃고 떠들며 놀다 옵니다. 그리고 돌아온 그 자리에서 지금 여기의 삶에 감사하며 한 걸음 더 낯선 길을 나서봅니다. 필요한 것은 모든 우연을 수용하고 마음껏 상상하는 것 뿐!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_ 고구마랑 말할 수 없는 ‘사람’

작성자
최수정
작성일
2025-03-11 18:05
조회
26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고구마랑 말할 수 없는 사람

 

2025.3.10. 최수정

 

나는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을 읽으면서 트로브리안드인이 호모 사피엔스임을 자주 떠올렸다. 나와 다른 타자를 인식하고 그를 통해 나를 인식하고 우리로 종합하는 존재인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이 고스란히 트로브리안드인에게 보였다. 그들의 주술과 주물은 수많은 다른 것들의 연결과 종합을 필요로 하는 비유(比喩)를 무수히 사용하고 있다. 비유는 모든 사물들이 처음부터 함께 존재했고, 로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깃들어 있다.

주술은 토착민들의 사고 체계에서 비롯된 공감적 물질을 사용하는데, 사물들이 수행하는 역할이 항상 간접적이고 대리적이라는 사실이 인상적이다. 예를 들면, 경작지를 여성의 배처럼 부풀기를 바라고, 특정한 허브나 덤불암탉의 둥지에서 가져온 흙, 혹은 둥근 산호석에서 긁어낸 가루에 대고 주문을 읊는다. 주술에 사용되는 물건이 홀로 작용하는 경우가 없다.

이런 트로브리안드인의 사고는 인간의 사회체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토착민의 사회 구성은 주술의 형식을 닮았다. 친족관계와 사회적관계가 간접적이고 대리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남편은 아내의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 간접적이고 대리적인 경제활동의 모습만으로 내 창고가 채워지는 시스템이다.

트로브리안드인의 자기인식은 언제나 타자인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타자를 의식하며 경쟁하고 허영을 부리며 결국은 자기를 풍요롭게 한다. 트로브리안드 공동체는 호모 사피엔스가 경쟁을 불러 일으키는 심리적 동기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인간을 조작하고 조정한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타자. 타자에게 인정받고 싶은 공적욕망을 일으켜 공동체 전체의 풍요를 만든다. 트로브리안드인은 아닌 존재를 의식하며 그와 함께 자신의 생존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사회·문화를 구성했다. 그래서 타인이 나의 대리인으로서 나의 일부라는 사고 체계를 갖고 있는 트로브리안드인에게 타자의 평판이 매우 중요해 진다.



문화적 인간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은 인간이 문화를 만들어가는 형식을 보여준다. 트로브리안드인은 자연을 풍요의 원천으로 본다. 각각의 사물들이 다른 사물의 관계를 지시하며 연속된 관계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기근의 원천은 인간에게 있다. 다른 공동체의 주술 때문이고, 나쁜 주술을 못 막은 이쪽 주술사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풍요를 주술로 구현해야 하는 존재다. 말의 힘으로 자연의 풍요를 구체적인 사실로 나타나게 해야 한다. 자연을 조작하는 힘이 인간의 신체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태도는 지극히 인간중심주의고 문화적인 사고다.

달님은 트로브리안드인은 생물학적 모습으로 인간을 정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공동체의 공적 메시지를 체화한 사람만이 사람이다. 그 메시지는 기원을 알 수 없는 공동체의 신화에 들어 있다. 따라서 토착민에게 사람은 현대의 인간이 자신을 세계의 중심이라고 하는 인간중심주의인가과 다르다. 트로브리안드인에게 인간은 관계 맺는 존재다. 세계와의 관계를 무시하고 자기 본위 중심인 인간은 그들에게 사람이 아니다.

달님은 모든 사회는 다른 사회와 구별되는 형식으로 문화를 만든다고 했다. 문화는 의미보다 형식이 중요하다. 트로브리안드에서 사람도 형식적 개념이다. 우리는 이런 존재를 사람으로 부르겠어라는 형식을 만들어 문화의 기준으로 삼는다. 사람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로 문화를 만들고, 선악을 규정한다. 인간이라는 개념 안에 본질적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관계의 특별한 방식을 고민하는 존재로서의 사람이 있다. 현대의 인간중심주의처럼 척도로서의 인간개념이 아니다. 나는 무엇과 어떻게 관계 맺을지를 고민하는 사람인지 자기 정체성 확인하며 가는 일이 중요하다.

트로브리안드와 주변 섬들은 언어적 기원은 같지만 주술은 다르다. 주술을 떠받치는 것은 신화. 공동체는 자신들만의 신화를 만들면서 문화를 만들었다. 신화를 바탕으로 전승되는 주술은 끊임없이 개인과 집단을 최초 기원의 세계로 되돌리는 기능을 한다. 주술이 읊어지는 동안 그들은 기원과 마주하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실재하는 시간 속에 놓이게 된다. 트로브리안드의 주술은 많은 경우 명령과 완료된 시제로 끝난다. “조상들이여, 나의 할아버지 음와케누와, 그리고 당신, 나의 아버지 요와아”<문구 2>처럼 조상의 이름을 부르며, “~올라오네, ~ 자라네처럼 미래를 완료하는 듯한 주문을 읊조린다.

서태평양의 섬들은 신화적 구분으로 공동체를 구분한 다음 결혼과 교역의 형식으로 서로를 엮어 더욱 문화를 발달시킨다.

 

분리되지 않아야 할 것사람과 물건

트로브리안드의 경작물 대부분은 사적으로 소유되지 않고 주로 분배·재분배된다. 특히 타이투는 토착민들에게 최고의 채소 식량이다. ‘타이투는 번영의 수단이고, 풍요, 곧 말리아의 상징이며, 토착민에게 부의 주요 원천이다. 트로브리안드에서는 타이투를 통해 공동체 전체의 표상이 공유되고 있다. ‘타이투는 수많은 사업을 진행하는 수단이다. ‘타이투는 가치의 상징이자 매개이며, 미학적인 만족의 대상이다. ‘타이투는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한 매개물 역할을 하며 사회적 관계를 생산한다. 그들에게 타이투는 죽은 조상의 몸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죽은 조상이 땅에 묻혀 경작물로 재생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타이투를 경작하면서 전승되어온 주술은 조상의 되살리는 주술이고 그로 인해 공동체의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생산한다는 의미도 있다.

달님은 트로브리안드에서는 사람과 물건이 분리되지 않는다고 했다. 트로브리안드인들은 인정욕망을 물건으로 가져간다. 그들에게는 물질적 관계가 중요하다. ‘선물을 얼마나 받나, 얼마나 좋은 것을 받나가 중요하다. 물질을 자기의 간접적 대리자로 표현한다. 물질로 자기의 모든 것이 표현된다고 생각한다. 물질이 사람과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토착민에게 물질적 관계를 주고받는 것은 사회적 관계를 주고받는 것과 같다. 그들에게 인간 자체로 정의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공감적 관계로서만 개체를 말할 수 있다.

트로브리안드인은 죽음을 보상하기 위해 축제를 열기도 한다. 이때 타이투는 죽음을 보상할 수 있는 인간의 대체물로 기능한다. 죽은 자를 대체하고 죽음으로 약해진 결연을 강화하는 의미에서 음식을 포식한다. ‘타이투는 조상의 대리물로 신화의 기원을 듣고 자랐으며, 트로브리안드인의 관계를 연결할 수 있는 존재다.

그에 반해 백인이 들여온 외래종인 고구마는 토착민들에게 신화적 기원이 없는 물건이다. 달님은 고구마는 토착민들이 생각하는 우주적 근원에 못 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수준이 낮게 취급된다. 고구마를 키우는 것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고구마에 한해서 그들은 인간 중심적이지 않다. 고구마에 대해 어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고구마는 자신들의 신화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근원을 아는 존재, ‘(주술)’의 의미를 알아들어야 사람이다. 어떤 관계적 맥락 없이 뚝 떨어진 고구마는 사람과 관계 맺을 수 없다.

달님은 산호섬의 인간은 자연 발생적이 아닌 점에 주목하라 했다. 그들은 타자를 경유하도록 하는 이유는 모른다. 그러나 사적 이익(고구마)’을 취할 때 파국으로 간다는 것은 알고 있다. 절제하지 못할 때 위험에 처한다는 것을 그들의 선악관이다. 그들은 파국을 막기 위해 견고한 문화를 만들어 공동체를 조작하고 조정한다.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을 읽다 보면 도끼를 치유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나는 이 치유윤리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회복과 보존을 위한 어려운 절제의 문제를 달성하기 위해 도끼에 윤리를 부여한다. 도끼는 그들의 오랜 신화를 함께한 물건이기 때문에 절제의 윤리를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타자를 해칠 수 있는 도끼를 사용할 때마다 윤리적 의미를 되새기는 주술로 도끼의 원초적 성질을 치유한다.


 

분리되어야 할 것감정과 욕망

달님은 자연이란 내 육신의 평온과 근친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문화는 이 자연을 끊어내는 능력이다. 트로브리안드인도 근친적 가족관계의 결속을 끊어내는 것을 문화적으로 고민한다.

트로브리안드인은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 모계제(母系制)와 부거계(父居制)를 함께 선택했다. 부계제보다 집단의 실제적 연속성을 따지기 쉬운 모계제를 채택하고 아내의 거주를 남편의 집으로 정하는 제도를 따랐다. 트로브리안드에서 친족관계가 모계 중심으로 아버지는 자신의 처가를 위해 경작을 하지만 곡식 창고는 아버지의 소유다. 이는 트로브리안드의 공동체가 친족 감정과 욕망을 분리하기 위한 고도의 문화적 환경을 조성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 사적 이익은 악마성이고 열등한 인간의 표지다. 사회를 조직할 때 친족 관계로 시작한다. 모계제와 부거제의 양가성으로 강력한 중심이 생기는 것에 반대장치를 걸었다.

아버지는 비록 자기 가구의 우두머리이지만, 트로브리안드의 법적인 의미에서는 친족 집단의 외부에 있다.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감정과 재산을 따로 분리하면서 사회적 균형 관계를 유지한다. 감정과 재산이 유착되지 않기 때문에 근친적 관계의 거리 조절을 할 수 있다. 아버지는 자기 자식에 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여동생의 아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나눠야 한다. 아버지는 아마 자기 감정을 억제하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관계를 무너뜨리지 않는 범위에서 몰래 자기 자식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에 비하면 현대의 절대적 근친적 핵가족 사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정에 기대는 비문화적인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창고의 신성

트로브리안드 마을은 대체로 풍요롭다. 마을 전체는 부자다. 그런데 추장은 자기 창고가 없다. 그의 창고는 처가의 인척관계에 의해 1년에 한 번만 채워진다. 창고에서 식량을 뺄 때는 큰 행사가 치러질 때다. 트로브리안드인의 창고는 주택보다 크고 튼튼하게 짓고 눈에 잘 띄는 곳에 있다. 창고를 채우는 선물하기 우리구부는 토착민의 사회생활과 경제생활 모두에서 핵심적인 원칙이다. 이는 토착민의 혼인과 친족관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창고는 개방형에만 주술을 한다. 실제는 창고에 하지만, 인간 유기체, 좀 더 특별하게는 인간의 배에 혹은 식욕에 영향을 미친다. 주술은 먹히는 식량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먹는 입과 삼키는 식도에 작용해서 그것이 나태해지고 음식을 내켜 하지 않게끔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식욕에 영향을 미치는 곳이 위()가 아니고 입과 목구멍일까. 이는 주술이 목구멍을 통해 나오고, 그곳에 인간의 마음 혹은 지성이 위치해 있다는 토착민들의 사고와 연관이 있어 보인다. 입과 목구멍의 삼킴을 절제하고 목소리를 뱉어 풍요를 만드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토착민들에게 풍요는 주술이 흘러넘치는 경작지의 풍경이다. 그 풍경은 간접적으로 공동체의 모습을 대리한다. 그래서 트로브리안드인은 경작지에서 심미적 안정감을 느끼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달님은 문화란 개체적 이익에서 멀어지게 하는 장치를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그중 경쟁은 공동체의 보장된 배팅이라고 했다. 반드시 비워놓고 다시 되돌아오길 바란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가장 훌륭한 것을 남에게 주는 경쟁은 가장 훌륭한 것이 돌고 돌아 내가 점점 더 좋은 것을 갖게 되는 법칙이 지배한다. 서로가 경쟁을 통해 좋은 것을 생산하면 좋은 것은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 경쟁심 유발은 타자를 경유하며 사고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본질을 이용한 장치다. 경작물 재배와 수확을 타자를 경유하여 간접적으로 나에게 오게 문화를 설계함으로써 절제와 답례를 배운다. 트로브리안드인에게 절제는 다시 돌아올 풍요를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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