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인류학 연구실에서는 이렇게 지금 여기의 삶을 완전히 긍정하는 주인공들의 세계를 탐험합니다. 동화 속 주인공들은 정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자신을 만들어갑니다. 주인공의 삶이 어디로 이끌릴지는 아무도 모르고 정해진 것도 없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규정 지을 수 없는 존재들이 온갖 살 궁리로 복작거리는 숲에서 깔깔 웃고 떠들며 놀다 옵니다. 그리고 돌아온 그 자리에서 지금 여기의 삶에 감사하며 한 걸음 더 낯선 길을 나서봅니다. 필요한 것은 모든 우연을 수용하고 마음껏 상상하는 것 뿐!
[까마귀 농부의 동화 읽기] 우주 나무 이야기
까마귀 농부의 동화 읽기
안녕하세요? 동화 인류학 연구회원 까마귀 농부입니다. 변신 마술을 익히기 위해 동화를 연구하는 팀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언제인가부터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고 화를 냈다 짜증을 냈다 후회했다 감정의 널을 뛰고 있습니다. 갱년기라 그렇다고 합니다. 갱년기가 뭔가 했더니 몸이 바뀌는 거라고 합니다. 몸이 바뀐다고? 변신? 그건 능력인데!
잘못을 저지른 벌로 몸이 바뀌는 경우도 있고, 변신술을 익혀 자유자재로 둔갑하는 마법사가 되는 경우도 있더군요. 이왕이면 내가 바뀌고 싶은 모습으로 바꿔 보자 싶습니다. 그러려면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아야겠죠? 하나하나 꼽아봅니다. 모습을 감추고 싶다. 가벼워지고 싶다. 이동 능력을 갖고 싶다. 시력을 높이고 싶다. 어느새, 자기가 하나하나 꽂아 놓은 기준들에 가로막혀 발이 묶인 여자 위로 까마귀 한 마리가 떠올라 내려다보고 있네요. 깍깍거리는데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제부터 잘 들어 보려고요.
연말까지 까마귀 농부가 되어 동화 인류학 연재 마법사 팀에 합류합니다. 내년에는 다른 몸으로 바뀔 수 있기를. 그런데 까마귀는 그렇다 치고 왜 까마귀 농부냐고요? 모두가 조금씩 농부인 세상을 꿈꾸며 농사를 시작했던 지난 시절을 기념하기 위해서 흔적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연말까지 저는 농부가 아니라 까마귀가 된 농부라고요.
우주 나무 이야기
–자크 브로스의 『나무의 신화』를 읽으며
왜 우주목인가
크고 오래된 나무들은 작은 것들의 세상이다. 나무는 하늘과 땅속을 잇는다. 우주의 중심축이 되어 신, 죽은 자, 그리고 살아 있는 자들을 연결한다. 당장은 낯설고 비현실적인 주장으로 들릴지라도 잠시 멈춰 서서 귀를 기울여 보자. 흩어진 조각들을 온 세상에서 끌어모아 우주 나무의 전체를 재구성하고자 시도한 자크 브로스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나무가 우주의 중심인 신화에서 우리는 가장 높은 신들이 나무에서 갓 태어나는 장면과 미숙한 젊은 신으로서 나무의 지혜를 갈구하는 모습을 간직한 옛날 옛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는 왜 나무의 신화를 살려내려는 것일까? 오늘날 가장 높은 위치에서 가장 지식이 높은 우주의 주인공으로 자처하는 인간에게 제자리를 찾아주고자 하는 저자의 예언자적 노력이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나무라는 우주 안에서 다시 작아질 수 있다. 이 모든 파괴 행위를 스스로 멈출 수 없다면 지금까지 언제나 그래 왔듯이 나무를 통해서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나무 신화는 우리를 고립에서 풀어 주고 균형과 조화를 되찾을 수 있도록 보호막을 드리워 줄 수 있다.
물푸레나무 우주, 이그드라실
거대한 한 그루의 나무가 있다. 이 나무가 세계의 시작이자 우주의 유지의 근본이다. 이 나무는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늘과 땅 밑으로 뻗어 있다. 땅속에서 물을 길어 올려 만든 수액이 뿌리 끝과 가지 끝으로 이동한다. 잎사귀들이 구름을 만들어 비를 내리게 하고 햇빛을 받아들여 형성한 열매와 뿌리 양분이 온 세상의 생명체를 양육한다. 그늘과 낙엽이 흙을 비옥하게 해준다. 나무가 하늘과 땅을 연결한 덕분에 세상은 재생된다. 신들이 물질을 창조하고 세계에 관여할 수 있는 것은 나무라는 통로 덕분이다.
브로스는 우주목의 신화가 지구상의 모든 곳과 모든 전승에서 발견된다고 우리에게 알려준다. 설령 그 자취가 사라졌다고 해도 그곳에도 한때는 우주목이 존재했을 거라고 한다. 자각하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사고와 삶 전체가 우주 나무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 사실을 깨달으면 우리는 다시 나무의 신화 속으로 돌아갈 수 있다. 상상할 수 있다면 세상은 흥미로워진다.
북구 신화의 우주목은 이그드라실이라는 물푸레나무다. 나무의 뿌리는 보이지 않는 세 개의 근원 세계를 연결하는데 각 뿌리 아래마다 샘이 하나씩 있다. 죽은 자의 세계에 있는 샘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대지를 적시고 모든 생명을 새로 태어나게 해준다. 인류 이전의 가혹한 자연의 힘을 상징하는 서리 거인의 세계의 샘물은, 심오한 지식을 담은 그 유명한 미미르의 샘이다. 신들의 지하 거처 부근에는 가장 신성한 샘이 있어 최초의 순수함으로 되돌리는 힘을 보유한다. 이 세 번째 샘을 지키는 세 명의 신성한 여성 존재는 운명을 관장하며 나무를 돌본다. 우주목의 밑동은 대지의 권능을 상징하는 뱀이 휘감고 있다. 꼭대기에는 그 뱀을 공격하는 또 하나의 권능인 독수리가 있다. 둘 사이를 이간질하며 다람쥐가 오르내리고, 네 마리의 사슴이 잎사귀를 뜯는다. 양육하는 젖을 내는 신성한 염소도 이곳을 은신처로 삼는다. 근원적인 뿌리에 이어진 줄기는 인간들의 세계를 가로지른다. 나무 꼭대기는 신들의 천상 거처에 닿아있다. 우주의 근본에 해당하는 삼세계(조상, 자연, 신)와 중간층인 인간 세계가 이그드라실이라는 우주목을 통로로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인류는 그 뿌리를 통해 자기의 거대한 근원에 닿고 자양을 받는다.
이그드라실은 북구 신화의 최초 신 오딘을 최고의 신으로 성숙하게 한다. 오딘은 나무 뿌리에 있는 샘지기 미미르에게 한쪽 눈을 뽑아 바치고 지혜를 얻는 샘물을 마신다. 그리고 스스로 희생제물이 되어 나뭇가지에 9일을 매달리는 시련을 겪은 뒤 최상의 지식을 획득한다. 눈을 포기함으로써 더 잘 보게 된다는 역설은 육체의 눈을 포기함으로써 정신을 눈을 획득하여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신성한 빛을 관조하는 능력’을 얻는다는 의미이다. 닥치는 대로 질문하며 헤매던 젊은 신이 시인 또는 현자의 면모를 띠는 성장 과정에 나무가 있다. 한편, 나무에 매달리는 시련은 샤머니즘의 입문 의식과 통한다. 상처 입고 물과 음식을 갈구하며 제의적이고 입문적인 죽음을 통과하면서 오딘은 마술적인 힘과 최상의 지식을 얻는다. 그는 자유자재로 변신하고, 죽은 자와 대화하는 힘을 얻는다. 여덟 개의 발굽을 가진 말을 타고 저승을 여행하고, 두 마리의 까마귀를 부리며 온 세상의 일들에 대해 ‘생각’하고 ‘기억’한다. 그리고 마법의 룬문자를 갖게 된다. 일개의 젊은 전쟁신이었던 오딘은 지혜와 지식을 갖춘 연장자, 현자, 시인, 샤먼의 능력을 나무로부터 얻어 최고신으로 등극한다.
나무는 인간을 낳고 부양한다. 이그드라실은 신들의 황혼에 벌어진 세계의 종말을 겪고도 살아남아 대지를 다시 초록으로 덮는다. 재생된 물푸레나무숲에서 남녀가 태어나 새 인류가 시작된다. 인도 유럽 어족 전통사회에서는 인간이 나무에서 태어났다는 생각이 광범위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인간이 유래한 근원목 신화는 인간이 살아가는 장소들이 나무를 중심으로 설정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사람들은 나무숲이 있는 곳에 거처를 정해왔다. 또한, 살고자 하는 터에 중심이 되는 나무를 심거나 기둥이나 장대를 세운다. 이동 중에 임시 천막집을 세울 때도 먼저 기둥을 우주의 축으로 세우고 하늘을 상징하는 지붕으로 덮는다. 이로써 집은 소우주이자 신성한 장소가 된다.
우주목 신화의 보편성
우주목은 우주의 구조와 인간의 위치를 설명하는 여러 신화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양식이다. 북구와 게르만 지역의 물푸레나무는 시베리아의 자작나무, 켈트와 크레타의 참나무와 같은 우주목이다. 이들은 기후대와 식생에 따라 인간의 삶과 밀접한 수종들이다. 숲이 드문 이집트에서는 성스러운 무화과나무가 신들의 거처이자 죽은 자들의 피난처이다. 수메르 전승의 키스카누 나무는 모든 생명의 나무 상징의 원형이다. 인더스 문명의 근원목 무화과나무는 아리아족 침입 이전의 문명에서부터 유래했다. 창세기의 유명한 사과나무도 에덴에 물을 대는 네 개의 강의 발원지이자, 신과 인간과 뱀이 만나는 세계수이다. 중국 신화에 나오는 ‘건목’(建木)은 대지의 한 가운데에서 하늘로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상승목이다. 목(木) 기운은 중국에서 우주를 구성하는 다섯 역동적인 요소의 하나이다. 나무의 기운은 진동하는 힘으로 죽은 것을 살리고 막힌 것을 뚫으며 끝난 것을 다시 시작하게 한다. 고대 멕시코의 우주목은 여러 색을 띠고 사방 방위와 상하가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다.
우주목 신화의 보편성을 확인하는 한편, 왜 하필 나무인가 하는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브로스는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입장을 따라, 우주목은 세계에 대한 ‘확실한 인식 양식’을 가정한다고 말한다. 나무가 곧 우주라고까지 생각하게 될 때는 그 사이를 잇는 인간의 정신 작용이 필요하다. 인간은 연결하는 정신의 힘으로 나무의 생명이 “탄생과 죽음의 순환”임을 통찰한다. 이는 주기성을 갖고 부활하는 생명 리듬이다. 인간은 나무의 리듬을 음미하고 “재생의 관념, 영원한 젊음, 건강, 불멸성” 같은 새로운 의미들을 해독해낸다.
사람을 포함한 만물이 대지로부터 멀리는 망자의 땅과 신들의 거처를 망라하는 전 우주에서 언제나 생과 사의 행로를 이어왔고 언제까지나 이어간다는 깨달음은 나무 아래서 이루어졌다. 나무를 통해 인간이 꾸는 꿈은, 일상에서 신성을, 세속에서 성스러움을 생성한다. 근원과 너머를 몽상하는 인간에게 나무는 위대한 스승, 조상, 인류의 기원 자체로 다가온다.
우주목을 찾아서
자크 브로스의 『나무의 신화』를 읽으며 우주목 신화가 보편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언제나 중심에 나무가 있다. 어떤 나무가 나의 세계를 떠받치고 있었을까? 글을 쓰는 중에 나의 세계의 우주목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1) 천연기념물
우리 지역 천연기념물부터 조사했다. 소나무, 푸조나무, 후박나무였다. 자주 가던 식당 근처에 나뭇가지들이 용의 몸뚱이처럼 수평으로 뻗은 소나무가 있다. 일명 효자송이라고 해서 1836년에 태어난 이 지역 토박이 성을 가진 분이 어머니를 위해 심었다고 전해진다. 쇠나 돌로 된 기둥으로 가지를 받쳤는데 나무가 받침 상단을 먹어가고 있다. 무속 행위 금지 경고판이 눈에 띈다. 제단 차림, 술, 음식 및 징, 북, 꽹과리, 고성을 금지한다. 이 문구들을 통해 이 나무가 숭배 대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고 제의의 형태도 어느 정도 떠올릴 수 있다.
읍내로 이어지는 대로변에 거대한 푸조나무가 있다(수령 400년 추정). 그동안 왜 몰랐는지는 귀신도 모를 일이다. 봄에 나뭇잎이 고르게 나는지 보고 한해 재난이나 질병을 점쳤다고 한다. 나무의 몸통은 용암의 흐름이 굳은 듯 울룩불룩하다. 덩굴식물이 밑동을 타고 오른다. 이렇게 타고 오르는 덩굴식물의 형태로부터 우주목을 수호하는 뱀, 대지를 울리며 약동하는 힘으로 상승하는 말 발굽, 수액의 신 디오니소스의 상징 등이 생겨났다. 나무를 사이에 두고 돌이 하나씩 세워져 있다. 글자도 형상도 새기지 않은 오래된 표지석이다. 고대 신앙에서 나무와 바위의 쌍은 생명의 동적인 측면과 정태적인 측면을 상징한다는 브로스의 말이 떠오른다. 마을 앞 한 쌍의 돌은 문턱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우주의 중심 개념과 이어지는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이곳에 마을이 있다는 사실을 표지하고 재난이나 질병을 일으키는 해로운 영을 막는 역할을 해온 돌들이다.
1580년경 어느 씨족집단이 이주하면서 거주 예정지를 둘러싼 네 방위에 후박나무를 심었다. 지금은 남쪽에 심은 것만 살아남아 세 그루가 거대한 하나의 수관을 이루고 있다. 이 나무는 해안가 산기슭에 자생한다고 알려진 난대수종이다. 새터를 닦은 분들이 어떤 인연으로 이 나무를 선정했을지 궁금하다. 마침 까마귀 한 마리가 가지에 앉아 있다. 가까운 곳에 둥지도 보인다. 나무 아래엔 까만 열매가 무수하게 떨어져 있다. 나무 그늘이 짙은데 떨어지는 열매 때문에 드러눕긴 좀 어렵겠다.
(2) 당산나무
내친김에 나무 그늘이 좋기로 알려진 인근 마을에 오랜만에 가봤다. 이곳 느티나무는 당산목이라고 해서 대보름에 마을에서 제를 올린다. 당산목은 할머니라고 불리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찾아가 비는 나무다. 이 마을에는 할머니 나무가 두 군데에 있어서 여자 쉼터와 남자 쉼터로 나뉜다고 한다. 나무 아래 평상에서 쉬던 할아버지의 말씀에 따르면 여기선 느티나무를 ‘귀목나무’라고 부른다고 한다(전라도 말로 느티나무를 귀목나무 또는 기목나무라고 한다는 기록이 있다. 한자로 나무 목 좌변에 거북 귀 자를 써서 느티나무 귀(櫷)라고 쓰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한자라고 한다. 한편, 이규보의 『동국이상국후집』에 꽃이 쥐의 귀 모양으로 생겼다고도 나온다.) 나무가 바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대단해서 여름에 그늘에 있으면 나가기가 싫어 농사를 망친다고 한다. 나무 ‘구경’하러 왔다는 말을 감히 꺼내지 못한다. 할머니를 구경하다니. 누군가 묻기에 나무에 인사드리러 왔다고 하니 그러냐고 하신다.
이 나무들은 450년쯤 된 것으로 추정되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어서 군에서 관리를 해준다고 한다. 보호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볼 일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신화가 인간의 보호색이라고 한다. 어째서인가? 자기 한계를 자각하고 완벽한 균형을 지향하는 신화 속 인간은 자신을 보호해달라고 요청할 대상을 언제 어디서나 얻는다. 마을 나무에 제를 올리고, 나무 그늘에서 쉬고, 마을을 지날 때 인사하는 것은 나무 신화를 살아있게 함으로써 나무를 보호하는 행위이자 나무의 보호를 받는 것이다.
(2) 학교나무
곧 백 년이 되는 면 소재 초등학교 담 너머로 큰 나무가 눈에 띈다. 가까이 가보니 히말라야 삼나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다. 정확한 정보인지는 모르지만 히말라야 삼나무는 일제 강점기인 30년대에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 1928년에 개교한 이 학교의 교목인 히말라야 삼나무도 그즈음 들여왔다면 나무 나이는 100살쯤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거주의 터에 나무를 세우듯 배움의 터에도 나무가 중심이다. 브로스는 신전과 재판정이 건축물이기 전에 숲속의 빈터와 나무 그늘이었다고 한다. 배움이 발생하고 깨달음이 일어나며 스승의 목소리를 듣는 장소인 학교도 건축물이 아니라 나무 아래였다. 삼나무와 대각선으로 마주 보이는 팽나무도 그늘이 넓다. 오래된 시골 초등학교에는 큰 나무가 많다. 읍에 있는 한 학교에는 전쟁 때 총알받이가 된 나무 이야기가 전해온다고 들었다. 문득, 솔방울 모양으로 크고 하얀 삼나무 열매들이 망자의 영혼처럼 옹기종기 앉아 있는 듯하다.
그동안 안 보이던 나무들이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것도 신기하고, 나무들을 중심으로 마을과 사람들의 지나온 이야기를 만나는 것도 비일상적인 경험이다. 피상적일 수밖에 없는 짧은 방문이었지만, 자크 브로스의 우주목 이야기를 내 안에 담고 보니 주변의 어른 나무들의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기댈 곳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다. 나무의 신화는 낯선 것이 아니다. 잊고 있다면 고요히 떠올리기만 하면 될 것이고, 몰랐다면 듣기만 하면 된다. 차단되었다고 여겨진 그 모든 통로들이 다시 열리는 순간들을 기다리며 부족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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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농부님은 정말 멋진 곳에 사시는군요! 넓고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이 햇빛과 바람과 수런거리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절로 시인이 될 것 같아요~ 일상을 나무에 기대며 사는 일은 어떤 것일까요? 나무가 바람을 끌어들이는 힘으로 까마귀농부님의 마음도 끌어들어들이나요? 글에서 선생님의 편안함이 느껴겨요. 나무 그늘의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올라 더욱 깊아질 까마귀농부님의 다음 글이 기다려집니다 ^^
어머나!! 사진으로만 봐도 압도적인 나무의 힘이 느껴져요. ‘그동안 왜 몰랐는지 귀신도 모를일이다’라는 말이 전래동화스럽네요!! ㅎㅎ 이런 우주목들에 둘러싸인 까마귀 농부님의 터전이 궁금합니다! ‘보호’라는 것이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보호해달라는 요청사항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네요! 까마귀 농부님의 변신도 또 동화도 너무 기대됩니다!
삼나무 열매가 저런 흰색이군요! 나무가 인간을 보호해주었는데, 이제는 인간이 나무를 보호한다고 생각하는 주객전도의 시대입니다. 잊고 있었다면 떠올리고 몰랐다면 들어서 모든 통로가 열리게 하자! 저도 까마귀농부님처럼 지역 천연기념물부터 조사해서 할머니 할아버지께 인사드리러 가보겠습니다. 구경이 아닌 인사! 인류학적이네요 ^^
인근 유사 지역까지 나무 대탐험에 나서서 ‘그동안 안보이던 나무들이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신기한 경험.
저도 나무 할머니, 할아버지 구경 아니고 인사드려야겠어요.
푸조나무의 소재지는 전남 장흥군 용산면 어산리 289-2번지. 카카오맵으로 보니 바로 앞 어산 교차로가 있는데 위치상 23번 국도가 푸조나무를 우회해서 직선화 공사를 했네요. 푸조나무가 계속 어산리 일대를 지켜주실 것 같습니다.
동화 인류학 정말 욕심나는 과목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으앙 읽어주셔서 모두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