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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인류학 연구실에서는 이렇게 지금 여기의 삶을 완전히 긍정하는 주인공들의 세계를 탐험합니다. 동화 속 주인공들은 정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자신을 만들어갑니다. 주인공의 삶이 어디로 이끌릴지는 아무도 모르고 정해진 것도 없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규정 지을 수 없는 존재들이 온갖 살 궁리로 복작거리는 숲에서 깔깔 웃고 떠들며 놀다 옵니다. 그리고 돌아온 그 자리에서 지금 여기의 삶에 감사하며 한 걸음 더 낯선 길을 나서봅니다. 필요한 것은 모든 우연을 수용하고 마음껏 상상하는 것 뿐!

[뚜벅이의 동화 읽기] 목격자

작성자
콩새
작성일
2024-08-05 12:52
조회
63



                                           뚜벅이의 동화 읽기


     팀 잉골드의 『라인스』 세미나 이후, 라인(선)이 만들어내는 세상, 새로운 세상 바라보기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흔적을 남기는 글씨 쓰기, 그리기, 걷기와 시각적 흔적을 남기지 않는 공중에서 벌어지는 행위와 날씨, 자연 그리고 사물들. 우주의 만물이 그려내는 선들에 대한 팀 잉골드의 연구는 제 삶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질문들을 던져주었습니다.

    팀 잉골드의 행려, 선, 흔적남기기 등은 행위로서의 의미와 함께 삶을 살아가는 순간과 여정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여러 가지 선에 대한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던 중 한 가지가 떠올랐다. 그것은 막대 점선( — — —)에 대한 것인데. 요즘 물류와 이동 수단을 통한 움직임은 ‘선’보다 막대 점선의 모양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블록, 덩어리로 묶여 흔적을 숨기는 존재도 어디선가 그 몸을 드러내기 마련인데. 그 흔적은 유령처럼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합니다. 그래서 그 모양이 막대 점선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걷기를 좋아하는 뚜벅이입니다. 장소를 이동할 때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걷기를 반복해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이런 과정은 길면 ‘여행’이라고 부르는 것이 되고 짧으면 ‘산책’, ‘운동’, ‘집에 가기’ 등의 과정이 됩니다. 조금 지루할 수도 있지만 복잡한 이동 과정을 좋아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기차, 버스를 타고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살았습니다. 버스나 기차에 타면 잠을 자기도 하고, 대부분 그렇지만, 밀린 과제, 생각, 상상, 걱정을 하면서 보냅니다. 

    저는 늘 길 위에 있습니다. 선로 위에, 도로 위에 가끔은 공기 위에. 움직이는 건 제가 아닌데 움직이는 바깥 풍경이 생각을 움직이는 것을 경험합니다. 수동과 능동, 의식하지 못했던 눈(시각)을 통해 생각과 몸이 움직이는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목격자


    신비로운 이야기 『나무의 신화』는 판타지 영화 같은 이미지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나무 꼭대기에 매어둔 말 ‘오딘의 준마’, 글쓰기의 신이 사는 키스카누, 출산과 창조를 위하여 남성 생식기를 포기하고 아이를 낳는 원래 양성인 신 등. 뒤죽박죽 알 수는 없는 내용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닙니다. 그 이야기들 중에는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금기라고 여겨진 근친상간, 불륜 행위 등을 거쳐 불사의 특권을 부여 받거나 정체성을 회복하는 신들의 이야기였습니다. 

    나무는 아주 먼 옛날 작은 초목으로 시작해 뿌리 깊은 나무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 지구의 주인이었을 것입니다. 인간은 나무 그늘 아래와 위에서 몸을 피하기도 하고 나무로부터 먹을 것을 얻기도 합니다. 인간이 탄생하기 전부터 뿌리를 내렸을 나무는 신성한 존재 ‘신’이 됩니다. 인간의 손이 감히 닿지 못하는 깊은 곳에서부터 뿌리를 내리고 높은 곳까지 가지를 뻗어 올리는 나무. 나무는 땅과 하늘을 연결하고, 땅에 물을 만들고 그 물을 하늘로 퍼 나르는 신통력을 한순간도 멈추지 않습니다. 심지어 신성한 나무는 유한한 존재들의 의문에 ‘신탁을 내리는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신탁이 내린다고 이해를 했을까요? 사람들은 나무로부터 들리는 소리를 해독함으로써 전달된다고 여기기도 했습니다. 사각거리는 나뭇잎 소리와 여러 개의 청동 물그릇이 서로 맞부딪칠 때 생기는 소리가 신탁이 됩니다. 이런 신탁의 공통점은 바람의 영향으로 발생하는 소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소리가 신탁이라면 지금까지 말과 소리의 경계를 언어와 비언어적인 것으로 구분해왔던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새의 지저귐을 듣고 신의 목소리라고 생각했다면 이방인의 낯선 언어로 듣는 소리도 신탁과 다르지 않았을지 모를 일이니까요. 

    “크레타인들에게 제우스는 식물의 신이었으므로 그는 매년 태어나고 죽는 것을 반복한다.”(쟈크 브로스, 『나무의 신화』, 이학사, 2007, 99p)

    나무는 계절의 변화를 겪으며 죽고 살기를 반복합니다. 몸 안에 형성층을(나이테) 쌓아가며 매해 새로운 물관과 체관을 통해 물과 공기를 순환시킵니다. 혹독한 계절을 지나 나무가 재생하는 힘을 보며 인간 생명의 연약함과 유한함 안에서 자연의 힘, 특히 나무는 ‘신’으로 밖에 해석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온전히 자연 현상에 내맡겨진 삶은 자연과 소통하지 않는다면 죽은 것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나무는 인류의 여정에 많은 권위를 상징했고 희생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벼락을 맞고 하늘에서 불을 인간에게 전달한 나무는 자기희생과 더불어 신이 나누어준 힘으로 여겨졌습니다. 

   나무는 생명들의 안식처가 되기도 하고 인간을 먹여 살리는 식량을 제공 합니다. 그러나 나무 생명의 순환은 인간에게 위협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자연에 열매를 주는 계절이 있다면 수렴하는 계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채집이 사냥보다 우선시 되었고 사냥은 먹이 보다는 주로 제의의 제물로서 여겨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인간은 나무가 주는 것을 취하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어린 소년을 제물로 바치기도 하고, 동물을 제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식물의 부활과 성장을 기원하며 드리는 신을 위한 제의는 때로는 야만적이고 잔인한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과정은 생명과 죽음이 맞닿아 있기에 필수적인 행위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제물을 갈기갈기 찢어 자연으로 돌아가기 쉬운 상태로 만들고 심지어 나무를 뽑는 등의 제의를 치르기도 합니다. 이런 행위는 의미나 상징으로서만이 아니라 실제로 재생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개입하는 수행자로서 인간의 역할이기도 할 것입니다. 자연에서 인간의 역할은 추동입니다. 

    신화 속 나무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목격자로 신성한 신들의 세계와 빛과 어둠의 세계, 생명의 원천을 연결하고 있는 초자연적 존재로 다루어집니다. 그리스인 신비주의자들에게 종려나무는 늙지도 죽지도 않는 나무로,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에게는 ‘성욕’을 가진 나무로 놀라움을 주기도 합니다. 책 속의 예로 대추야자나무는 수그루와 암그루가 있어 수정이 이루어져야 열매를 맺는데. 나무의 ‘성욕’이라는 표현에서 좀 더 의인화 된 나무의 존재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나무는 움직입니다. 생존을 위해 위기를 벗어나고 더 좋은 환경 조건을 향해 이동합니다. 단지 그 속도가 사람이 움직이는 조건과는 시간적으로 차이가 많이 나지만 그런 시간의 차이로 우리는 오래된 신성한 나무들의 과거의 목격담을 마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목격자들은 점점 그 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나무의 신화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나무의 존재를 잊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길을 내기 위해, 집을 짓기 위해, 추위를 피하기 위해, 농산물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나무는 항상 양보를 강요당해 왔습니다. 그래도 나무는 불평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무는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듣는 법을 잊어버린 우리에게 나무는 장애물 혹은 장식품으로 취급되고 있을 뿐입니다. 

    지나치게 한쪽으로 기운 나무의 존재. 나무를 잃고, 그때는 우주의 대겨울 ‘라그나뢰크‘를 통해 다시 균형을 찾아가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무를 심은 사람(자막)

나무를 심은 사람(더빙)



                                                           

    

    

전체 3

  • 2024-08-05 13:56

    뚜벅뚜벅 내 발로 걸어가며 만나는 세상의 맛이 있지요. 뚜벅이가 들려주는 놀랍고 신비로운 동화의 세계를 기대하겠습니다~^^


  • 2024-08-05 15:23

    잘 읽었습니다!

    “당신이 이 세상을 사뿐사뿐 걸어갈 수 있기를.”
    May you walk gently through the world.
    (아파치 기도)


  • 2024-08-06 19:54

    땅을 느끼며 걷기를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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