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인류학 연구실에서는 이렇게 지금 여기의 삶을 완전히 긍정하는 주인공들의 세계를 탐험합니다. 동화 속 주인공들은 정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자신을 만들어갑니다. 주인공의 삶이 어디로 이끌릴지는 아무도 모르고 정해진 것도 없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규정 지을 수 없는 존재들이 온갖 살 궁리로 복작거리는 숲에서 깔깔 웃고 떠들며 놀다 옵니다. 그리고 돌아온 그 자리에서 지금 여기의 삶에 감사하며 한 걸음 더 낯선 길을 나서봅니다. 필요한 것은 모든 우연을 수용하고 마음껏 상상하는 것 뿐!
[까마귀 농부의 동화 읽기] 미야자와 겐지의 가난관
안녕하세요? 동화 따라 산 넘고 물 건너 날아온 까마귀 농부입니다. 지난 겨울, 화로에 구운 알밤처럼 하나씩 받아 먹었던 미야자와 겐지 님의 이야기들이 다시 생각나네요.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새어 나오는 초가집 마당에 땔나무도 해다 주고 밤도 따다 주는 산도깨비가 같이 사는 그런 산골짝 이야기가 참 좋더라고요. 어두운 밤 작은 화롯불처럼 따스하고 발갛게 마음을 덥혀 주고 입 안에 쏙쏙 들어가는 구운 산밤처럼 영혼의 양식이 되어 주었답니다.
미야자와 겐지의 가난관
미야자와 겐지의 「축제의 밤」에서 작가의 가난관을 살펴 보고자 한다. 이 동화는 축제장에서 돈을 못내 괴롭힘을 당하는 산도깨비를 본 꼬마 료지의 이야기다.
마을에 온 산도깨비
산에 사는 도깨비가 인간으로 둔갑해 마을의 산신 축제에 참가한다. 어줍잖은 변장을 하고 어설프게 행동하다가 낭패를 당하면서도 마을에 온다. 그런데 도깨비는 왜 사람의 마을에 내려올까? 마을은 산도깨비가 인간학을 탐구하는 참여 관찰장인 것일까? 인간의 마을을 다니는 발 넓은 도깨비는, 숲속 거주자이면서 동물과 인간 사이 지점에 있다. 「잔나비 걸상」에 등장하는 산도깨비는 원숭이 무리에 납치당해 곤욕을 치르게 된 소년을 마을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료지와 산도깨비의 조우
축제장에서 멀리 떨어진 집에 사는 료지도 축제 구경을 나왔다. 첫 번째 구경거리는 소 내장에 공기를 채워서 신기한 “공기짐승”이라고 선전하는 가짜 천막쇼였다. 예기치 못한 두 번째 구경거리는 산도깨비가 경단을 먹고 돈을 내지 못해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이었다. 료지가 보기에 산도깨비는 의도적으로 속이려고 한 것이 아니고, 돈 대신 땔감으로 갚겠다며 우는 정직한 사나이였다. 하지만 산도깨비는 말이 어눌하고 가게 주인은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면서 구경꾼들 앞에서 기고만장하여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료지는 자기가 가진 마지막 은전을 산도깨비의 커다란 짚신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고, 그 덕분에 도깨비는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때 산바람이 불어와 장사꾼들의 인공적인 램프와 희미한 제등을 꺼뜨린다.
꼬마 료지는 밤 축제의 어둠 속에서 가짜와 정직을 가려내는 총명한 아이다. 이 총명함은 어디서 왔을까? 마을 주변부에 산다는 설정이 료지의 균형감의 한 조건인지도 모르겠다. 그 자신이 중심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중심에서 본 차이에 대한 적대감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산의 은혜로 살아가는 인간들이 산신을 기리면서 연 축제 현장에서, 돈이 없으면 거래에 참여할 수 없고 가짜와 횡포가 만연하다. 하지만, 산에서는 돈이 유통되지 않는다. 산의 관계는 정직함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산에서는 돈이 얼마나 있는지, 옷이 낡았는지, 외지인인지, 세상의 규칙에 익숙한지가 평가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 정해진 척도는 없다. 하지만 도움을 주고 싶다면 주고, 과하게 받았다 싶으면 갚는다. 이것이 숲의 규칙일 것이다. 산도깨비가 도망간 직후, 료지는 축제의 무리에서 빠져나와 할아버지가 계신 집으로 향한다.
료지가 주고 싶어 하는 것
료지는 집에 계신 할아버지에게 산도깨비 만난 이야기를 얼른 들려주고 싶어서 뛰어간다. 예상대로 할아버지는 료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즐거워한다. 료지는 “주기”를 잘 하는 아이다. 도깨비에게 동전을 주었듯이 할아버지에게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산도깨비도 료지처럼 잘 준다. 산도깨비는 료지의 은혜를 갚으려고 산에 돌아가자마자 땔감 백 단과 산밤 여덟 말을 해다가 료지의 집 앞에 산처럼 쌓아놓았다. 산도깨비의 방문에 료지는 얼마나 기뻤을까? 산신의 가을 축제에 어울리는 결말이다. 산신의 두 아이들인 소년과 산도깨비의 마음이 만났기 때문이다.
료지의 할아버지는 과하게 받았다고 갚아야겠다고 하시면서 정직한 마음이 마을에도 있음을 료지에게 본을 보인다. 할아버지에게서 정직을 보아왔기에 료지는 축제장의 산도깨비에게서도 정직함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이것이 할아버지의 존재 이유이다. 그리고 아이는 무언가를 더 줄 수 있음에 기뻐한다.
“훨씬 훨씬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어요. 산도깨비가 기뻐하며 울고 펄쩍펄쩍 뛰어다니고, 그리고 하늘로 날아갈 듯 좋아하는 그런 것을 주고 싶어요.” (『미야자와 겐지 전집 3』 231-32쪽)
그런 좋은 것이 무엇일지는 료지도 아직 모른다. 하지만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과 받는 사람이 좋아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마음이 글의 마지막 장면인 달을 말없이 바라보는 모습에서 비친다. 아이의 마음이 넓어지는 장면이다. 이 순간에 산바람이 다시 불어온다. 작품에 등장하는 산바람을, 아이를 키우고 산도깨비를 지켜보는 산신의 마음으로 해석하고 싶다.
가을 밤 산도깨비가 해다 준 땔감과 산밤은 료지네 식구가 겨울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좋은 선물이다. 료지 집에서 산으로 보낼 선물은 옷과 음식이다. 도깨비의 철 지난 낡은 홑옷과 전 재산 10전은 마을의 기준으로는 가난의 징표일 수 있다. 축제에 참여하려는 열망에 이끌릴수록 도깨비의 가난은 더 안타까운 것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산에서 돈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 산도깨비는 힘이 세고 애초에 자의식도 없을 것이다. 한동안 생각하다가도 갑자기 하품 한 번 크게 하고 말 것이다.(「산도깨비의 4월」) 그래도 료지네서 보내는 경단과 솜이불에 담긴 마음이 도깨비에게도 좋은 음식과 따뜻한 옷이 되어 줄 수 있다. 산의 관점에서 볼 때 가난은 기쁨을 생성하는 자양분과 연료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산도깨비의 정직함을 가여워하는 마음, 타인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어떻게 가난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좋은 것이 있다면
겐지의 가난관은 그의 이야기론이기도 하다. 역자 후기에 따르면 겐지는 생전에 출간한 단편집의 서문에서 달빛에게서 이야기를 받았고 가을 산에서 바람에 떨면서 그런 생각들을 일으켰다고 전한다. 산밤과 땔감 같은 산의 은혜를 받아 살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얻게 된 료지의 경우처럼 이야기는 가난한 마음에 양식이 되고 기쁨을 일으킨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가진 가장 좋은 점들을 알아보게 해주는 이야기 세상 속에서, 가난의 괴로움은 산바람을 타고 기쁨으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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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와 겐지는 돈이 없는 곳에는 가난도 없다고 하는 것일까요? 따지고보면 가난은 부자에 상대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이네요. 숲에서는 가난이 오히려 많은 감사를 느끼게 하는 일이 되기도 하지요. 작은 경단 한 알에 감사하는 부자의 마음이 되고 싶네요.
“산밤과 땔감 같은 산의 은혜를 받아 살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얻게 된 료지의 경우처럼 이야기는 가난한 마음에 양식이 되고 기쁨을 일으킨다.”
돈으로 환산 가능, 대체 가능하다는 일상 속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다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오늘도 잘나가는 집, 동화 인류학회의 재미있는 이야기 잘 얻어갑니다.
음식 사진 보고, 이 밤에 꿀꺽 침이 넘어갑니다. 충분함에 대해서도 생각해봅니다.
‘가난은 기쁨을 생성하는 자양분과 연료가 되기도 하는 것’이라는 말이 인상 깊습니다.
가난은 나쁜 것, 어떻게든 피하고 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요.
그러고 보니 지금 우리는 그 어느때보다 풍족하고 부유한 삶을 살고 있지만 삶에서 충만한 기쁨을 발견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미야자와 겐지의 ‘가난관’이 그의 동화와 겹쳐지며 ‘가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주네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소 저는 돈도 없고 정말 그지 같아!!! 외치며 사는데 그 와중에 내심 은밀한 기쁨을 맛보게 한 겐지의 가난관이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