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안데르센 자서전] 몸이 부서져라 노력하다
동화인류학/『안데르센 자서전』/24.12.19/최옥현
몸이 부서져라 노력하다
안데르센과 잉게만
『안데르센 자서전』 3부에서 안데르센은 (시인 잉게만이 죽은 후에 잉게만 부인이 챙겨준) 잉게만과 주고 받은 편지를 기초 자료로 하여 자신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 안데르센과 잉게만의 성정은 참으로 반대다. 안데르센이 여행을 통해 직접 찾아가 사회 발전상을 보고자 한다면 잉게만은 움직이지 않아도 자신의 주변이 점점 개발되는 것을 통해 사회 발전상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안데르센은 잉게만 부부에게 여행을 권하지만 잉게만은 주변의 자연에게 배우는 학생으로 있겠다고 한다. 안데르센이 자신의 작품에 대한 비판에 신경이 예민해져 있으면 잉게만은 원숭이, 앵무새, 수탉이 아무리 시끄럽게 굴어도 인간들이 신경 쓰지 않듯이 비평가의 소리를 동물들이 참견하는 소리로 여기라고 조언한다. 안데르센이 넓은 지역을 여행하고 불안도가 높아 칭찬과 비난의 소리 모두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면 잉게만은 별 움직임 없이 남 신경 쓰지 않으면서 단단히 자신의 내면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듯하다. 매일 저녁 잉게만의 집은 파티라는 형식 없이 여러 사람들이 모여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장소가 된다. 한 곳에 깊히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안데르센을 잉게만이 잡아주고 있는 모양새처럼 보인다.
죽음의 문턱까지 간 여행
스페인 마드리드에 간 안데르센은 그곳의 겨울 날씨가 혹독하여 프랑스를 거쳐 덴마크로 이동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무엇보다 건조하고 살을 에는 겨울 바람이 견디기 힘들었다. 이동하는 도중에 폭풍우가 기차 안으로 들이쳤고, 어떤 기차는 난방을 가동하지 않은 상태에서 몇 시간이고 꼼짝없이 서 있었다. 기차가 달리지 않는 곳에서는 마차로 갈아타야 한다. 차가운 눈이 마차 안으로 들이치고 좁은 마차에서 아이는 쉬지 않고 울어댄다. 궂은 날씨에 마차는 뒤집어질 듯 아슬아슬한 위기를 넘기면서 달려가는데 마차 안의 안데르센은 잠을 자거나 쉴 수가 없다.
이 여행 중 들어간 호텔에서 그는 불 붙은 석탄이 담긴 쇠주전자를 호텔로부터 제공받아 몸을 녹이고 쇠주전자를 문 밖에 놓고 잤는데 문이 덜 잠겼는지 석탄의 가스가 방으로 유입되어 요나스 콜린과 함께 가스 중독으로 사망할 뻔하였다. 악몽에 시달리던 안데르센이 가까스로 깨어나 더 심각한 가스 중독 상태에 있던 요나스 콜린을 깨워 추운 문밖에서 오래 서서 뇌에 산소를 공급하여 살아났다.
때로는 자유롭기도 하고 때로는 힘들기도 한 여행에서 만난 지역의 풍경은 안데르센 작품 속에 녹아든다. 『모래언덕에서 전하는 이야기』에는 유틀란트 스카겐 지역의 모래언덕이 그려져 있다. 이 작품 속에는 모래로 점점 덮혀가는 교회에서 신도들이 길을 내어 신부님과 예배를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실제 이야기였다. 이 교회는 1795년에 왕의 명령으로 폐쇄된 곳이다. 교회를 묻어버린 모래와 ‘높이 솓은 (교회) 탑이 아직도 삼분의 이를 모래 밖으로 드러내놓고 있는’ 풍경은 그대로 그의 작품 속에 들어 있다.
『나무 요정』에는 파리박람회 모습이 그려져 있다. 파리에 간 안데르센은 파리에서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하고 ‘꿀도 없이 복잡하고 소란스럽기만 한 커다란 벌통에 들어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홍등가 마비유를 방문하는데 이곳은 안데르센의 작품 속에 ‘마비유 무도회장’의 모습으로 들어 있다. 안데르센의 여행을 통한 직접 경험은 그곳의 실제 풍경을 전하기도 하고 그의 상상력을 극대화하는데 도움을 준다.
오덴세의 명예시민
1867년 12월 6일 안데르센은 자신이 태어난 고향 오덴세의 명예시민으로 임명된다. 그가 고향을 떠난 지 48년이 흐른 뒤다. 어느 여행에서 어떤 이가 50대 중반의 안데르센을 80대의 나이로 짐작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행 때문인지 삶의 고난 때문인지 안데르센은 실제 나이보다 많이 노화되어 보였던 것 같다. 그는 명예 시민증 수여와 시 낭독 등 여러 축하 행사 중에 치통과 가슴 통증이 심해져 고통 속에 있었다. 그는 고향 사람들의 찬사 속에서 천상의 기쁨을 누렸지만 참을 수 없는 신체적 고통 때문에 결국 인간은 덧없는 삶을 접고 이 세상을 떠나야 할 가여운 운명을 가진 자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자신의 영예를 위해 한평생을 바친 안데르센의 ‘최고의 순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느끼는 자리’가 되는 아이러니가 벌어진다.
안데르센 동화의 열렬한 독자로서 아이들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교장 선생인 뮐러는 안데르센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안데르센은 우리의 귀가 자연이 들려주는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안데르센은 일생을 통해 엄격한 사람이었는데 잘난 체하는 사람을 꾸짖고 어리석은 짓과 허영에 매질을 아끼지 않았으며 가난 속에도 고귀함이 깃들일 수 있음을 깨우쳐주었다고 뮐러 교장은 평가하였다.
뮐러의 평가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러하다. 안데르센 동화전집의 앞부분은 민담 유래의 동화나 여러 자연물이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들이 많은 반면 후반부로 갈수록 인간 중심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자연이 들려주는 음악 소리에서 인간 중심의 음악 소리로 변한 듯하다. 안데르센이 어리석음과 허영을 꾸짖는 것은 주로 죽음 이후의 심판과 함께 그려진다. 『요한나 할머니 이야기』에서 주인공 라스무스와 대비되는 요한나는 가난 속 고귀함을 보여주는 대표 캐릭터이다. 좀 의아한 것은 안데르센이 주인공들을 가난에서 구출하지는 않는 것이다. 특히 안데르센의 남자 주인공들은 고향을 떠나 외로움과 쓸쓸함 속에서 고향과 옛 여인을 그리워하다 홀로 죽는다. 안데르센이 자신 동화의 남자 주인공들에게 자신을 투사한 것일까? 그는 유럽여행을 하면서 그곳의 명사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하지만 그는 늘 허기져 있다.
이 행사 중 코이트 의원은 안데르센의 아내를 위해 축배를 들자고 제안한다. 안데르센이 결혼하지 않은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하지만 그에게는 여러 명의 아내가 있다. 그의 동화 속 아내들이다. 코이트 의원은 안데르센의 아내들은 ‘선한 사람이 하는 일은 늘 옳다’고 말하고 실천하는 자들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