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니슬라브 말리노프스키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5장_즐겁고 아름답다, 그러나 어두운 감정이 생겨나면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제5장 수확기
2025.2.25. 김유리
즐겁고 아름답다, 그러나 어두운 감정이 생겨나면
제5장 수확기 요약
수확의 때는 즐겁고 아름답다. 수확과 관련된 관습과 예식들이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생동감이 넘치는 축제의 광경이 연출된다.
“트로브리안드인은 자신이 키운 덩이줄기들을 다루고, 세고, 그것들을 눈에 잘 띄는 멋진 모양의 더미들로 조심스럽게, 정교하게 배열하기를 좋아한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수확물에 대해 감탄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의 수확물과 비교하는 것을 좋아한다. 한마디로, 그는 자기가 성취한 작업에서 장인의, 혹은 예술가의 기쁨을 느낀다.”(365-66쪽)
1. 기근과 풍요
수확할 때 “경작자의 마음은 땅속에서 살아 있는 보물을 계속해서 발견하는 기쁨으로 채워진다.”(367쪽) 수확은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풍요”(157쪽)는 말리아라고 한다. “번영, 충만, 포만”(116쪽)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와 반대되는 말은 몰루다.
몰루란 “굶주림”(157쪽)을 뜻하는 말이다. 트로브리안드 농사력 4월부터 시작해서 9월 수확 직전까지는 몰루의 달들이다. 몰루의 해인 흉년에는 야생에서 먹을 것을 보충하고, 덜 익은 밭작물을 먹어 설사병을 앓는다. “보통의 몰루”의 해가 이어지면 “정말로 나쁜 몰루”인 기근이 발생한다. 피부병이 생기고 아사자가 속출하며 연명하고자 고기잡이 해안 마을로 잠입한 사람들이 학살당한다.
몰루는 식량 부족으로 몸과 마음이 불만족스러운 때다. “토착민의 신체적인 건강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히기 전에 먼저 그의 자존심에 영향을 미치며, 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실망하고 불만스러워하게 된다.”(375쪽)
2. 예비 경작
예식적인 첫 수확의 주술은 “이수나풀로” 주술과 터부이다. 절차는 (1)보름달처럼 타로를 키우려고 진주 조가비에 ‘둥글게 둥글게’ 주문을 건다. (2)진주 조가비로 타로 싹을 잘라 주술사의 집 서까래에 올린다. 큰 얌과 함께 조상에게 공물로 바친다. (3)다른 사람들도 첫 수확물을 모으고 전시하고 공물로 바친다.
진주 조가비의 주문(377쪽)
“보름달이여 여기에! 보름달이여 그때, 보름달이여 여기에 영원히.
북쪽에서 둥글게 하라, 남쪽에서 둥글게 하라.
남쪽에서 둥글게 하라, 북쪽에서 둥글게 하라.
타로를 둥글게 하라.“
중앙 공터에 매장지가 있었던 옛날에는 공터 한편에서 공물을 바치고 반대편에서 살아 있는 자들이 식량 분배 예식을 했다. 무덤들이 마을 밖에 조성되는 지금도 첫 수확 시기에 중앙 공터는 최근 사망한 자의 장례 연회와 식량 분배 장소가 된다. 수확물의 일부가 공공연히 전시되고, 장례에 도움을 준 인척이나 과부와 홀아비에게 분배된다. 주술사도 분배받은 식량을 요리해서 조상에게 바치면서 첫 수확물 금식 터부를 해제한다.
3. 주요 농작물의 수확 의례
타이투 수확 의례는 두 측면을 갖는다. 그것은 작물이 잘 여물도록 작물을 수신자로 하는 “성장 주술”이자, 인간의 수확 활동을 조직하고 조정하는 “시작 의례”이기도 하다.
오크왈라는 익게 놓아두는 의식이다. 노쿠 식물의 잎으로 경작지를 장식하고 터부를 걸어 인간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잘 익을 수 있게 고요히 두는 기간이다. 주술사는 돌고래 주문을 읊는다. “굽이치는 돌고래의 움직임이 꼬불거리며 감기고 또 휘감기는 덩굴의 모습을 신비하게 연상시킨다.”(388쪽)
돌고래 주문(386쪽)
“돌고래여 여기에 지금, 돌고래여 여기에 항상!
돌고래여 여기에 지금, 돌고래여 여기에 항상!
남동쪽의 돌고래여, 북서쪽의 돌고래여.
남동쪽에서 놀아라, 북서쪽에서 놀아라, 돌고래가 노는구나.
돌고래가 노는구나!“
툼은 수확을 개시하는 의식이다. 주술사는 전날 미리 마법을 걸어놓은 까뀌를 가지고 표준 소구획으로 간다. 타이투 줄기를 자르고 땅에 떨어진 줄기를 잡초로 덮고 돌로 누른다(툼은 누르고 압박한다는 뜻). 이 의식으로 타이투를 거둬들이는 대규모 수확이 일제히 개시된다.
주술사는 의례를 할 때 금식 터부를 스스로에게 건다. 이 터부를 해제하려면 주술사의 아내의 씨족 남자들이 가져온 수확물을 받아 아내가 불에 구운 것으로 주술사가 조상의 영들에게 바쳐야 한다. 이때부터 주술사도 햇 수확물을 먹는다.
4. 수확기의 작업과 오락
수확은 가족 단위로 진행된다. 사전에 (1)여물게 두는 주술과 (2)표준 경작지의 수확 예식의 절차를 거쳐야 사적인 수확이 개시될 수 있다.
수확의 과정은 타이투 뿌리 파내기, 다듬기, 정자로 옮기기로 요약할 수 있다. 경작자는 아내의 씨족 남자들에게 보낼 우리구부 선물 의무의 수대로 정자를 세운다. 정자에 수확물을 아름답게 전시한다.
경작지의 정자는 이 시기에 사회활동의 거점이 된다. 경작지 예의에 따라 마을 사람들을 정자를 방문하고 앉아서 전시물을 살펴본다. 농작물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고 감탄하는 예의를 지킨다. “관습적 아첨”이 실시되며 비판은 무례와 비도덕 행위로 금지된다.
수확기의 사람들의 마음은 이중적이다. 예법에 따르는 이면으로 질투, 시기, 미움의 감정도 일어나고, 뒷소문과 비방도 돈다. “훌륭한 경작지는 자체로서 미덕일 뿐 아니라 인척들을 향한 임무이나 족장에 대한 임무이기 때문에”(395) 나쁜 평판은 공동체에서의 입지에 영향을 미친다.
너무 훌륭한 경작지는 경작자의 죽음을 초래한다. 낮은 신분의 사람이 식량을 많이 비축하고 자랑하는 것은 위반 행위다. 훌륭한 경작자는 경작지를 자랑하거나 허영과 탐욕에 빠지지 않는다. 과시적인 탐식과 자랑은 요술에 의해 살해당하는 원인이 된다. 트로브리안드인은 “죽음은 항상 요술 때문”이라고 여긴다.(396쪽)
5 농작물 들여오기
경작지의 생산물을 마을로 옮기는 일은 축제의 성격을 띤다. 수확자는 운반할 사람들을 소집한다. 친척이나 아내의 친척들인 청춘 남녀들이 소집되어 나뭇잎과 허브로 몸을 장식하고 얼굴을 색칠한다. 요리된 음식으로 보수를 받는다.
운반 예식은 수일에 걸쳐 진행되는데 이 시기에는 어느 쪽을 보아도 운반하는 무리들을 볼 수 있다. 운반자들은 경작지 정자에 있는 더미를 헐어서 우리구부(모계 친척에게 식량을 양도하는 임무) 선물을 받을 사람의 창고 앞에 똑같은 모양의 더미로 쌓는다. 남자들은 장대에 바구니를 꿰어 어깨에 메고, 여자들은 둥근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운반한다. 받을 사람의 마을에 이르면 메기고 받는 형식의 “활기차고 폭발적인 외침”을 하며 돌진해 들어간다. 마을에 따라 하루에 다섯에서 스무 번 무리들이 소리치며 뛰어 들어온다.
인계 예식은 법적 양도의 절차다. 증여자가 “그대의 더미요, 오 아무개여. 이것은 아무개의 우리구부 선물이오” 하면서 수령자에게 인계한다. 여기서 수령자의 아내 이름이 말해진다. 더미 전시 기간 후에 같은 운반자들이 식량을 수령자의 창고 안으로 옮겨준다.
6. 부리틸라울로–경쟁적인 수확물 경연
부리틸라울로란 “적대적이고 경쟁적인 식량 교환”(398쪽)이다. 아름답고 즐거운 수확의 계절에 어두운 감정이 생겨나면 하는 떠들썩한 예식 행위다.
“식량을 전시하고 겉으로는 칭찬하거나 감탄을 표시하더라도, 이면에는 악의와 의심, 그리고 질투가 깔려 있을 수 있다. 이면의 어두운 감정에서 쓰디쓴 개인적인 원한이 생겨날 수도 있는데, 이 경우 트로브리안드인들은 보통 해코지 주술로 상대방을 살해하려고 시도하게 된다.”(408쪽)
서로 다른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다툼이 번지면 걷잡을 수 없는 대립과 적대가 일어날 수 있다. 이때 공동체 우두머리는 부리틸라울로라고 불리는 “물자의 경연, 곧 각각 수확한 농작물의 비교”(408쪽)의 판결을 내릴 수 있다. 부리틸라울로는 공동체간 경연이고 두 집단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부리틸라울로는 선물 교환으로 일어나는 감정을 표출한다. 주는 쪽에서는 “계산적으로 관대한척 하면서” 생색을 낸다. 받는 쪽에서는 “여차하면 선물이 빈약하다고 불평할 태세를 갖추고서, 방심하지 않고 인색하게 따져가면서” 받는다. 선물의 외양을 띠고 있으나 “대립하는 양쪽이 서로 자기들이 더 부유하고 더 우월하며 더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평가받기 위해서 경제적 자원을 앞다투어 내어놓는”다. 선물을 받는 즉시 똑같은 양과 질로 되갚아져야 한다. (408-9쪽) 답례가 부족하면 모욕을 받을 것이나 과도해도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
(1) 측정과 기록
마을의 모든 남자는 창고에서 얌을 모조리 꺼내 기부한다. 그러면서 돌려받을 때를 생각해 주의 깊게 수를 세고 크기를 꼼꼼하게 측정해서 기록을 보관한다. 동일한 길이의 막대기로 얌의 길이를 잰다. 둥근 얌은 둥근 얌은 끈으로 측정하고 매듭으로 크기를 표시한다.
중앙 공터에 나무틀을 설치해 얌으로 채운다. 나무틀을 해체해 상대 마을 중앙 공터에 다시 설치한다. 상대 마을 남자들은 자기들의 얌으로 그 틀을 채워 받은 선물의 “등가물”을 만든다.
(2) 대결
양측이 남의 마을에 들어가 나무틀과 얌을 옮기는 동안 마을 사람들이 둘러싸고 위협하고 비난한다. 감정이 격해진 가운데, 운반자들은 “나무틀과 얌을 힘겹게 옮기느라 숨이 차서 실신할 것 같은 상태에서도 작업에 열중”한다.(420쪽)
사실, 트로브리안드인들은 “싸움이 일어날 것을 염려하며”, 우두머리들은 “일어날 수 있는 결과들을 염려해서 자제”한다.(421쪽) 우두머리부터 평민들까지 합세해 공동체간에 “말다툼과 위협”이 난무하지만, 측정, 토론, 다툼의 퍼포먼스는 종국에는 마무리된다. 딱 맞게 등가물을 교환할 수도 있고, 부유하고 강력한 쪽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식량을 더 주어 승리하기도 한다. 끝으로 다른 마을에서 온 구경꾼에게까지 소규모 식량분배가 이루어지고 경연이 종료된다.
〇어휘
몰루 : 배고픔/ 말리아 : 포만, 충만, 만족, 번영, 풍요
타이투 : 얌의 일종, 주요 식량
부이틸라울로 : 경쟁적이고 과시적인 수확물 경연
우리구부 : 친족에 대한 수확물 제공 의무
〇코멘트
(1)농경 의례를 통해 경작지와 마음이 잘 가꾸어진다. 그 덕분에 모두에게 풍요가 전달되고 충만하게 된다.
(2)경작 주술 문구는 사람과 사물을 부르고 때와 장소를 지정한다. 경작 주술은 풍요의 흐름이 경작지와 마을을 기쁨으로 채우고 지나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좌표 설정과 송수신 작업이다.
(3)부리틸라울로는 수확기에만, 식량에 한정해서 벌어지는 소동이다. 이와 같은 떠들썩함과 다툼도 “삶을 살아갈만하게 만드는”(157쪽) 풍요의 일면으로서 “만족과 축제”와 같은 선상에 있다. 적대하는 그룹 사이에서도 “끊임없는 주고받기, 부의 이동,” “임자 바꾸기”(122쪽)가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