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니슬라브 말리노프스키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에세이 개요 “타이투가 듣는다”
동화인류학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에세이 주제문 2025-4-29 김유리
오마라카나 경작지의 성장 주술
타이투가 듣는다
주제문
주술은 성장을 돕는다. 주술사는 식물의 “생장 과정을 밀접히 따라가면서 그 과정을 자극하고, 땅의 자연적 힘에 주술의 이로운 힘을 보태어준다.”(말리노프스키,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1권, 유기쁨 옮김, 아카넷, 325쪽)
취지
때는 바야흐로 본격적인 파종철이다. 이제 개시 주술을 지나 성장 주술의 단계로 넘어 가고 있다. 지금이 제철인 성장 주술에 대해 알아보자.
1
트로브리안드의 자부심 강한 농부들에게 올해의 경작주기가 시작되었다. 열대의 기후에 정글이 되어버린 밭을 정리하고 섬세하게 흙을 준비한 후 주요 식량 작물들의 파종까지 마쳤다. “경작자는 이제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했다.”(『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1권, 321쪽) 잠시 한숨 돌리는 틈에 마을 사람들은 카누 원정을 떠나고 스포츠를 즐긴다. 그런데 경작지 주술사는 계속해서 밭에 다니며 일하느라 바쁘다. 대체 혼자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작물이 싹 트는 것을 돕는다고 한다. 늦된 작물들이 성장하도록 자극한다고 한다. “그는 걸어서 둘러보고 주문을 읊”는다.(329)
파종 직후의 밭은 파종 직전의 밭과 다를 것이 없다. 농부들이 각자 분배받은 밭에 울타리를 치고 모퉁이마다 나무 기둥 구조물을 세워 주술의 벽을 표시해 두었을 뿐, 말끔하게 정리된 그대로다. 타이투는 심은 그대로 땅 밑에 누워 있다.
타이투의 입장을 상상해보자. 종자 창고에 저장되어 있다가 꺼내어져서 바구니에 담겨 모르는 곳으로 운반되었다. 그리고 땅 속에 매장되었다. 다음 날 밖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시 또다시 싹트네.”(330) 목소리는 반복해서 타이투에게 오랜 잠에서 깨어나라고 한다. 시골에서 덩이 식물의 싹트는 촉을 ‘눈’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주술사가 싹을 깨울 때 타이투는 감은 눈을 뜨고 촉을 틔운다. 신비로운 깨어남이다. 계속해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헤치고 나오라고 한다. 땅 밑에서 눈을 뜬 촉은 조금씩 자라나 땅을 뚫고 올라온다. 새싹이다.
타이투는 계속 듣는다. 주술사는 딱 맞춰 주문을 바꾼다. 가장 연약한 시기에 있는 신생아를 보호하기 위해 병과 벌레와 짐승을 쫓는 단호한 명령을 외친다. 쓸어버리고 수장시키겠다고 큰 소리로 위협한다. 목소리는 어린 싹이 줄기를 내고 조심스럽게 갈라지며 길을 찾아나가는 단계를 따라가며 성장을 격려하고 고무한다. “치솟아” 올라라. “녹색 앵무새가 나는 것처럼.”(338) 목소리는 땅속 줄기도 잊지 않는다. “쥐가 갉아내는 것처럼 뚫고 나가네.” “도둑이 다다르는 것처럼 다다르네.”(339) 그리고 덩이 줄기들이 둥글게 부풀어 오르도록 자극하며 지침을 준다. ‘덩이를 부풀리라고 어떻게?’ 다시 귀를 기울이는 타이투에게 주술사가 알려 준다. 여기, 이렇게, “덤불암탉의 둥지처럼”(338), “진흙 화덕처럼”, “뿌리 뽑힌 나무 주위의 흙무더기처럼”, “개미탑처럼”, “동굴처럼”, “둥근 산호석처럼.” 씩씩하게 성장하는 타이투를 웃겨주는 것도 주술사의 일이다. 그는 과장하고 엄살을 떨며 익살을 부린다. 얌 수확물을 운반하는 남자 시늉을 낸다. “‘얌의 무게가 내 머리를 내리누른다. 얌이 내 어깨를 짓누른다.’ 그는 신음하네. ‘야카카카카…….’”(339) “내 어머니는 과식으로 죽게 될 것이다. 나 자신도 너무 많이 먹어서 죽게 될 것이다.”(339) 지상의 연약한 새싹은 어느덧 덩굴지고 무성한 잎을 내어서 경작지를 덮는다. 주술사는 성장을 자극하고 장래를 낙관적으로 예측한다.
2
주술사가 읊는 주문의 청자는 누구인가? 경작 주기가 바뀌면서 청자가 변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경작을 개시할 때 주술사는 집앞 화톳불 가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연설을 했다. “좋다! 경작을 시작할 시간이 왔도다. 올해에 우리는 더욱 훌륭하게 경작지를 일굴 것이니라.”(227) 그는 족장과 함께 마을 사람들을 조직하고 경작지로 이끌었다. 밭이 준비되고 파종을 마칠 때까지 주술사의 주요 청자는 농부들이었다. 주술사는 마을 남자들을 농부로 활성화시켰다. 족장부터 평민까지 농부가 되어 “세심하고 정확하게”(84) “조심스럽게, 다정하게, 그리고 끈기 있게” 작업했다. 주술사가 이끄는 대로 순서에 맞게 의례를 준비하고 즐겁게 공동 노동하고, 밭을 아름답게 꾸몄다. 주술사는 경작에 뒤처지는 사람을 발견하거나, 울타리치기와 같은 공동의 임무를 게을리 하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 그 주범들을 책망하면서 그들이 다시 열정적으로 일하도록 설득한다. 장황한 연설을 통해서 공개적으로, 이러저러한 사람이 자기 몫의 울타리를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공동의 담에 넓은 틈이 생겼고, 그 틈을 통해 덤불돼지나 왈라비가 들어올 수 있게 되었고, 싹이 트면 야생 동물들이 흥미를 느끼게 될 테고, 그러면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되고, 하면서 들들 볶는다.(184-85) 그렇게 해서 다함께 파종까지 마쳤는데, 혼자 밭에 나가 읊는 주술사의 주문은 누가 듣는가?
성장 주술은 타이투가 듣는다. 팀 잉골드는 틀링깃 인디언들이 빙하가 듣는다고 말할 때 그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조응』, 김현우 옮김, 가망서사, 197쪽). 빙하에 귀가 달렸다고 생각할 만큼 틀링킷 부족이 어리석지는 않다. 사물이 인간의 말을 듣는다는 말은, 인간이 사물의 존재감을 의식한다는 뜻이다. 팀 잉골드는 빙하가 “경이로운 존재감으로 이 세계에, 우리에게 현존한다”고 표현했다. 저자는 인간이 사물에 주의를 기울이고, 알아차리고, 어우러진다는 뜻으로 “조응”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농부가 작물이 듣고 있음을 모르면, 틀링킷 족이 빙하가 듣고 있다는 것을 망각하면, 인간이 지구가 듣는다는 생각을 놓치면, 작물과 빙하와 지구는 존재감을 잃는다. 인간이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그들을 세계 속에, 우리 앞에 불러오는 것이다.
그것은 “진짜 세계”(『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3권, 462)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다. 진짜 세계에서 인간은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그리고 끈기 있게 사물에 다가가고, 세심하고 정확한 ‘몸짓’(말, “발성하는 몸짓의 흐름”(『조응』, 316)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물이 듣기 때문이다. 몸짓은 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경작지 주술사 바기도우는 말리노프스키에게 경작지 주술을 가르쳐 보였다. 말리노프스키를 “올바로 이해시키려고 대단히 애를 썼다.”(『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1권, 8쪽) 바기도우는 최고의 주술사였지만 병이 심해져서 머지 앉아 조상들의 세계로 옮겨가게 된다. 그는 사라져가는 “진짜 세계”와 주술의 소실을 짐작했던 것 같다. 백인의 때가 오고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주술이 소실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타이투에게 다가가 말하는 인간이 없는 경작지는 침묵 속에 남겨질 것이다. 그러면 기술이 주술의 빈 자리를 메우게 된다. 경작이 수월한 외래 작물을 들여오고, 물을 끌어오고, 약을 치고 비료를 뿌린준다. 자극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일은 자본주의가 대신한다. 경작자는 사적 이익과 화폐 가치를 위해 한 해 농경을 개시한다. 경작에 농부들, 흙, 영들, 여자들, 바다 생물과 숲의 허브들, 도구들이 말에 담긴 영력으로 이끌리고 고무되는 일이 더 이상 없을 것이다. 타이투 하나를 키우는 데 온 우주가 개입해야 했던 시절이 지나고, 세상 사람들은 각자 묵묵히 일한다.
백인의 개입으로 소실된 주술은 어떻게 됐을까? 온 세상의 경작 주술은 민중 문화와 대중 가요에 잔존하는 것 같다. 농민의 말과 속담에서는 작물과 동물들이 여전히 듣고 있다. 대중 가요는 “성장하게 하라 Let it Grow”, “비를 내려라 Let it Rain”라는 되풀이 주문을 읊고 있다.(에릭 클래튼과 데릭 앤 도미노스) 경작지에 주술사는 더 이상 없지만, 한담과 노래가 있다면 아직 말의 영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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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르는 일은 자라는 일을 돕는 일이다. 경작지 주술사는 경작지에서 작물 성장의 “여러 단계를 활성화”하면서 “자연의 작용을 도와야 한다.”(325). 그가 하는 일은 “그는 걸어서 둘러보고 주문을 읊”는 일이다.(329) “주술사는 경작지들을 가로질러서 천천히 걸어가면서, 하나하나의 발레코를 향해서 이 주문을 읊는다. 그는 뚜렷하게 울려 퍼지는 강한 목소리로 모든 경작지를 휩쓸면서 주문의 효력을 경작지의 흙속에 침투시킨다.”(331) 성장 주술은 주술의 벽 안으로 자연의 힘을 옮겨 온다. 밭의 작물은 인간이 심었지만 자연의 힘으로 성장한다. 기르는 것은 인간의 힘을 넘어선 일이다. 기르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주술이 필요하다.